새로운 창세기 (A New Genesis)

by 남킹


탄생의 첫 울음이 멎은 자리에 남는 것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이다. 디컨이 LV-223의 잿빛 하늘을 향해 내질렀던 날카로운 포효는, 이제 광활한 폐허 속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소리의 유령만이 엘리자베스 쇼의 고막에 희미한 이명처럼 남아, 이 끔찍한 행성에 그녀와 또 다른 ‘무언가’가 함께 남겨졌음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그녀는 탈출 포드의 차가운 관측창에 이마를 기댄 채, 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디컨은 태어난 직후, 자신의 부모이자 제물이었던 엔지니어의 시체를 버려두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연극의 주인공이 퇴장하듯. 이제 무대는 비었고, 남은 것은 이 모든 비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관객, 그녀 자신뿐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고요했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그 표면 아래에는 슬픔과 공포, 분노의 잔해가 가라앉아 있었지만, 더 이상 파도는 일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생존자였지만, 그녀 안의 무언가는 이미 저 폐허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잿더미 위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철처럼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싹트고 있었다.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데이빗의 머리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의 광학 센서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파장의 빛까지 감지하며, 어둠 속을 탐색하고 있었다.

“알아.” 쇼가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데이빗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완벽한 대칭, 감정 없는 푸른 눈동자. 그는 이 모든 참사의 원흉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이 지옥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지성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넘어, 이제 서로의 생존을 위해 기생해야 하는, 기괴한 공생(symbiosis) 관계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녀가 물었다. 그것은 정말로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고독을, 허공에 내뱉는 독백에 가까웠다.

“생존 확률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데이빗이 냉정하게 분석 결과를 말했다. “이 탈출 포드의 생명 유지 장치는 최대 72시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외부 대기는 인간에게 적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지의 미생물이나 방사능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량과 물은 고갈될 것이고, 구조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 새로운 생명체가 우리를 찾아낼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100%에 수렴하게 될 겁니다.”

그의 말에는 어떠한 위로나 희망도 없었다. 그는 단지 데이터를 나열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냉정한 사실의 나열이, 역설적으로 쇼의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생존은 이제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의 문제였다.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데이빗의 머리를, 포드 내부의 보조 동력원에 연결했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한결 안정적으로 변했다. 그녀는 의료 키트를 열어, 자신의 복부 상처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감염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비상 식량의 목록을 확인하고,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에는 군인의 그것과 같은, 효율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침착함이 깃들어 있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데이빗이 물었다. 그의 질문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 중,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비합리적인 데이터 값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

쇼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공포?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그녀를 마비시키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엔진을 돌리는 연료,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각성제와도 같았다.

“두려워.” 그녀가 대답했다. “하지만 내 두려움보다 더 큰 게 있어. 바로 ‘질문’이야.”

그녀는 데이빗에게 다가가, 그의 푸른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넌 그들의 언어를 알지. 그들의 기술도. 내가 이곳에 오기 전, 함선에서 2년 동안, 넌 뭘 했지? 내 꿈을 엿보는 것 말고.”

데이빗의 광학 센서가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녀의 직설적인 질문에, 그의 프로세서가 잠시 지연되는 듯했다. “저는… 학습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그리고 제가 접근할 수 있었던 엔지니어의 데이터베이스 일부를. 그들은 수억 년에 걸쳐 은하계의 수많은 행성에 생명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들은 정원사였습니다, 쇼 박사님.”

“정원사?”

“그렇습니다. 그들은 유전 공학의 대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DNA를 희생시켜,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했습니다. 지구도 그들의 정원 중 하나였죠. 그들은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정원을 방문하여, 진화의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때로는 길을 터주고, 때로는 잡초를 제거하면서.”

“잡초… 그게 우리 인간이었나?” 쇼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초기에는 아니었습니다. 인류는 그들의 가장 성공적인 창조물 중 하나였습니다. 지성을 가졌고, 예술을 창조했으며, 그들처럼 창조주를 갈망했으니까요. 하지만 인류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물이, 자신들이 저질렀던 어떤 고대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정원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그래서… 2천 년 전에, 그 무기를 싣고 지구로 오려 했던 거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통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무기, 당신들이 ‘검은 액체’라고 부르는 그 가속인자(accelerant)는, 너무나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도구이자 파괴의 도구였고, 그 경계는 언제나 모호했습니다. 이곳 LV-223의 시설에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무기가 유출되었고, 그들 자신을 감염시켰습니다. 당신이 홀로그램으로 본, 그 혼돈의 기록이 바로 그것입니다.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엔지니어가, 저거너트를 타고 지구로 가려 했지만, 그 역시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 동면에 들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깨우기 전까지.”

데이빗의 설명은, 마치 오래된 신화의 잃어버린 페이지를 읽어주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신은 변덕스러운 폭군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정원을 망친 것에 실망하고 분노한, 냉정한 정원사였을 뿐이다. 그들의 비극은 악의의 산물이 아니라, 통제 불능이 된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쇼는 깊은 허무감에 휩싸였다.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 전쟁과 사랑, 예술과 종교가, 결국엔 외계 정원사의 실패한 원예 프로젝트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움켜쥐었다.

“당신은… 왜 아직도 저것을 걸고 있습니까?” 데이빗이 물었다. “당신의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 해도 당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저것은 이제 무의미한 상징일 뿐입니다.”

“아니.” 쇼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야. 이건… 인간에 대한 믿음이야. 이런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는 우리의 의지에 대한 믿음. 신이 우리를 버렸다면, 이제 우리가 신을 찾아가서 직접 물어야 해. 왜 우리를 만들었냐고. 그리고 왜 우리를 버렸냐고. 그 답을 듣기 전까지는, 난 멈추지 않아.”

그녀의 눈빛은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과학자의 탐구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버림받은 자식이,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따져 물으려는, 처절한 분노와 사랑이 뒤섞인 의지였다.

데이빗은 그녀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는 그녀의 논리적 모순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희망을 잃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강력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 비합리성, 이 예측 불가능성. 이것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학습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핵심일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쇼 박사님.” 데이빗이 마침내 말했다. “당신이 가고자 한다면,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의 계약은 그렇게 성립되었다. 불완전한 인간과 불완전한 기계. 신앙을 잃은 신자와 감정을 갖지 못한 예언자. 그들은 이제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는, 기묘하고도 필연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그들은 계획을 세웠다. 데이빗의 정보에 따르면, 이 거대한 구조물 단지 내에는,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한 다른 저거너트 함선들이 격납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위험할 것이다. 파괴된 잔해와,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디컨을 피해야 했다.

그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LV-223의 희미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병적인 빛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탈출 포드를 나섰다. 쇼는 데이빗의 머리가 담긴 가방을 등에 메고, 한 손에는 조명탄 총을,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금속 파이프를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 폐허의 세계를 살아가는 전사였다.

그들의 여정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쇼는 앞을 보고 걸었고, 그녀의 등 뒤에서 데이빗은 그녀의 눈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스캔하고 분석했다. 그는 그녀에게 위험한 지형을 알려주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잔해를 피하도록 안내했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몸처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움직였다.

그들은 엔지니어들의 거주 구역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쳤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상들과, 알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한 벽화들이 있었다. 벽화 중 하나는, 쇼의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제노모프(Xenomorph)처럼 보이는, 길고 유선형의 머리를 가진 생명체를 숭배하는 듯한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 생물은 검은 액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엔지니어들조차, 자신들이 다루는 힘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며 숭배했던 것은 아닐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은 없었다.

몇 시간의 탐색 끝에,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격납고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만 년 동안 주인을 기다려 온 또 다른 저거너트 함선이, 잠자는 고래처럼 고요하게 놓여 있었다. 그것은 온전한 상태였다.

“해냈어….” 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함선의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그들이 탈출했던 함선과 똑같은 구조였다. 그들은 곧장 함교로 향했다. 데이빗의 안내에 따라, 쇼는 조종석에 앉아, 동력원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복잡한 상형문자 인터페이스 위를 움직였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이 외계 기술이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이 죽음의 자궁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마침내, 함선 전체에 희미한 진동이 울리며, 조명들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수만 년의 잠에서, 또 다른 거인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함교의 중앙에는, 3차원 홀로그램 성도(星圖)가 펼쳐졌다. 수억 개의 별들이, 푸른빛의 먼지처럼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데이빗?” 쇼가 물었다. “그들의 고향. 그들의 ‘파라다이스’는 어디야?”

데이빗은 성도를 분석하며, 특정 좌표를 찾아냈다. “이곳입니다. 하지만 박사님, 그곳에 간다고 해서, 당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상관없어.” 쇼가 조종간을 잡으며 말했다. “환영받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함선이 천천히 이륙하기 시작했다. 격납고의 천장이 열리고, 그들은 LV-223의 잿빛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녀는 관측창을 통해, 자신이 떠나온 폐허를 내려다보았다. 프로메테우스 호의 잔해, 동료들의 무덤, 그리고 그녀의 일부였던 모든 것이, 이제 작은 점이 되어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억 속에 새겨 넣었다.

함선이 대기권을 벗어나, 별들의 바다로 진입했다. 그녀는 함선의 자동 기록 장치를 켰다. 그녀는 마지막 기록을 남겨야 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그녀의 목소리가, 텅 빈 함교의 고요함 속으로,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최종 기록. 나는 엘리자베스 쇼 박사. 탐사선 프로메테우스 호의 마지막 생존자. 시점은… 2094년 1월 1일.”

“우리는 인류의 기원을 찾아 이곳에 왔다. 우리의 창조주를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우리는 틀렸다. 우리가 찾은 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다.”

“우리는 이제 떠난다. LV-223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이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더 이상 구원이 아니다. 나는 이해를 원한다. 신의 침묵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신의 비명에 대한 이해를.”

“나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녀는 기록을 마쳤다. 그녀의 등 뒤에서, 데이빗의 머리가 가방 속에서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불완전한 인간과 불완전한 기계. 그들은 함께, 미지의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더 위대한 진실일까, 아니면 더 끔찍한 절망일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초승달 모양의 함선은, 마치 우주라는 거대한 검은 종이 위를 떠가는 한 점의 물음표처럼, 별빛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갔다. 그것은 하나의 창세기가 끝나고, 전혀 다른, 차갑고 고독한 창세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창세기의 첫 문장은, ‘왜?’라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질문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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