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이 다시 눈을 뜬 곳은 남쪽 바다 어딘가에 떠 있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외딴 인공 섬, 일종의 유토피아적 고립계(isolated system)였다. 상어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긴 후, 그녀는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지만, 의식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코기토(Cogito)의 첫 섬광이 뇌리를 스쳤을 때,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여 다시 일어서게 되기까지는 또다시 몇 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의 모든 움직임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처음 걷는 법을 배우는 아기처럼, 자신의 새로운 육체, 이 낯선 기계적 신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몇 주, 아니 몇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는 단계입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한 사람은 <란젠 박사>였다. 그는 가우타 로터스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생체 공학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었다. 그의 흰 가운과 차분한 말투는 그녀에게 약간의 안정감을 주었다.
“제가… 제가 어떤 상태였던 거죠? 박사님.” 제인은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을,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혀를 힘겹게 굴려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마지막 기억은 차가운 밤바다와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상어 떼였다.
“간단히 말해, 죽었었습니다.” 란젠 박사는 짓궂게 살짝 윙크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발견되었을 당시, 목 아랫부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각조각 난 상태였습니다. 즉, 의학적으로는 건질 만한 것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를 왜 살리신 거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저를…” 그녀는 눈을 뜬 순간부터 줄곧 품어왔던 근본적인 의문,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를 표시했다.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 부분은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박사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 연구소를 설립하신 가우타 로터스 님의 강력한 뜻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신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아주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산산조각 났고, 뇌도 손상되었을 텐데… 어떻게 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거죠? 이건… 기적이거나 혹은…”
“저희는 소위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 기술이라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박사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했다. “인포모프(Infomorph)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데, 뭐,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당신의 뇌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억과 의식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새롭게 제작된 로봇의 신체, 즉 인공 두뇌에 이식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 저는… 저는 이제 로봇인가요?” 제인은 충격과 혼란 속에서 되물었다. 자신의 손과 발, 몸을 내려다보았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 아래 느껴지는 감각은 미묘하게 달랐다.
“굳이 분류하자면… <인조인간(Android)>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의 외형은 당신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게 복원되었습니다. 하지만 내부 시스템은 최첨단 생체 기계로 이루어져 있죠.”
“그분… 가우타 로터스라는 분을… 만나고 싶군요.”
“곧 만나시게 될 겁니다. 그분도 당신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셨으니까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셔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박사는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 무엇인가요?”
“지금은 1067년입니다.”
“1067년이라고요?” 제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죽었던 해는 1038년이었다. 무려 29년의 시간이, 리프 밴 윙클처럼 흘러버린 것이었다.
“네. 그리고 당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이, 작년에 <대전쟁>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곳 지하 연구소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바깥세상은 이제 당신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벌어졌던 이 모든 끔찍하고 불편한 진실들을, 당신은 이제부터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너무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온전히 당신의 새로운 육체에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입니다. 가우타님께서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계십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준비되었을 때,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 직접 당신을 방문하실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십시오….” 란젠 박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제인은 텅 빈 병실에 홀로 남아,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가우타 로터스가 실제로 그녀를 방문한 것은 해가 바뀐 1068년 1월이었다. 그동안 제인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녀는 강한 여자였다. 태생부터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불굴의 의지는, 그녀가 인조인간으로 재탄생한 이후의 삶에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이 왜 다시 살아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고 싶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제인… 아니, 이제 당신을 <아난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가우타는 그녀의 침대 곁에 앉아, 기계적인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깊이 마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과 함께 어떤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왜… 제가 필요하신 거죠? 저 같은 죄인이…” 아난다는 여전히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깊은 절망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가우타는 말을 잠시 멈추고 아난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연구팀은 그녀가 죽기 직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그는 만족감을 느꼈다. “…당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이 벌어진 이 끔찍한 전쟁으로 인해, 이제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아마 당신은 본능적으로 이 모든 참극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한 건가요?” 아난다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표면적으로는 <파더스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뒤틀린 의지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전쟁을 멈추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바로 당신, 아난다가 필요합니다.” 가우타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왜… 왜 하필 저인가요? 저보다 훨씬 출중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세상에는 많을 텐데요.”
“단순히 능력만을 비교한다면, 물론 다른 이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젊은 시절, 한 예언가의 딸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남긴 비밀스러운 일곱 권의 일기장을 물려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는… 바로 당신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가우타는 자신의 가방에서 낡고 해진 공책 한 권을 꺼내, 표시해 둔 부분을 펼쳐서 그녀에게 내보였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금발에, 깊은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투명에 가까운 눈빛을 한 여인이 보인다. 그녀의 삶은 늘 날카로운 가시덤불 길이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집착은 죽음마저 이겨내고 생명을 다시 불어넣으며, 그녀의 본능은 오직 한 곳, 구원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는 마침내 <구원자>의 눈과 귀가 되어, 그가 걸어갈 험난한 길 위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평탄한 길을 예비하리라….’
“이것이… 저를 지칭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을 텐데요….” 아난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가우타는 말없이 공책의 다음 몇 장을 넘기더니, 또 다른 표시된 대목을 그녀에게 다시 가리켰다.
‘…그 여인은 <죽음의 도시>에서 태어나, 역설적이게도 절망 속에서 <삶의 세상>을 창조하고 일구어 나갈 것이다…’
“죽음의 도시…?”
“네, 기록에 따르면 당신은 서쪽 정령의 땅, <묘지의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곳을 ‘죽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버려진 묘지와 폐허만이 가득한 곳이니까요.”
“하지만… 묘지의 도시에도 사람이 살고, 다른 도시에도 묘지는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다음 구절을 보시죠…” 그는 일기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 다시 보여주었다.
‘그녀가 태어난 해의 시작은 하늘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였다.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하늘을 날아다니던 거대한 구조물이 뿌연 먼지가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 해, 한때 평화로웠던 도시가 끔찍한 재앙으로 인해 아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순식간에 변하였다.’
“이 모든 예언은 정확히 1001년의 사건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우타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해 1월, <세르노(Cerno) 우주정거장>이 원인 모를 사고로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예상치 못한 거대 쓰나미가 닥쳐 당신이 태어난 <묘지의 도시>에 있던 낡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은 저조차도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어떻게…?”
“당신의 친어머니는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묘지의 도시에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몰래 숨어 들어와 살던 소수의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1004년이었고, 태어난 직후 당국에 발각되어 당신의 어머니는 강제로 추방당했으며, 당신은 위탁 시설에 보내진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이름 ‘제인’ 역시 위탁자가 임의로 지어낸 것이었고요.”
“하지만… 어떻게 당신은 제가 모르는 사실까지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신 거죠?” 아난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cker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 <사피엔티아>가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출생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출생 서류 복사본입니다.” 그는 작은 단말기 화면에 그녀의 출생 신고서 이미지를 띄웠다.
‘출생지: 정령의 땅, 묘지의 도시 제7구역. 특이사항: 불법 거주민 자녀, 당국에 의한 강제 이주 조치. 이름: 제인 단테스 (가명 추정). 위탁인: 에르난데스 단테스.’
“하지만… 단지 오래된 예언가의 말을 근거로… 이 모든 것을 믿으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난다는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죠. 어찌 보면 이것은 그저 한 노인의 개인적인 환영을 기록해 놓은 낡은 일기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애매모호한 부분도 많고, 명백히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본래 과학자이자 냉철한 사업가였습니다. 불확실한 것에는 늘 의심하고 투자를 망설이는 것이 저의 본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되살리는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깊은 회의감에서 비롯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만큼은… 정말이지 이 예언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가우타의 목소리가 슬픔으로 잠겼다.
“그럼… 예언서에는 이번 전쟁에 대해서도…?”
“네, 그렇습니다. 예언가 니콜라스는 비교적 자세하고 명확하게, 1066년에 발발할 <대전쟁>의 시작과 그 참혹한 과정을 기록해 놓았더군요. 그리고 그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가우타는 천천히 아난다의 파란 눈동자를 깊이 응시하며,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예언서는… 1069년 9월 9일까지의 일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날에는… 뭐라고 적혀 있나요?” 아난다가 고개를 들며 가우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붓다의 마지막 유언>이 적혀 있습니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며,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내가 항상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놀랍게도, 예언서 전체에서 당신은 줄곧 <아난다>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우타는 예언이 적힌 공책 한 권을 그녀의 손에 조심스럽게 쥐여 주었다.
“아난다…? 제가… 예언서에서 아난다로 불린다는 말씀이신가요?” 제인, 아니 이제 아난다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이 새겨진 공책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고 이리저리 펼쳐보며 중얼거렸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당신을 아난다라고 부르겠습니다. 물론 당신께서 기꺼이 받아들이신다면 말입니다.” 가우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흩어져 있는 우리 사피엔티아 13명의 형제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정신적인 버팀목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서, 동쪽 <신의 땅>에 정착하여 새로운 사명을 감당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 예언가 니콜라스의 선한 뜻이자,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일 것입니다… 아난다님.”
“아난다….” 아난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경건하게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슬픔과 함께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깃든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과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제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아난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