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 들어서자 금박의 천장이 얼음처럼 반짝거린다.
제니아는 황홀한 듯, 나의 팔을 끌며 조심스레 푹신한 카펫을 밟고 나간다. 레스토랑은 북적였고, 소음이 Niles Cooper의 피아노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테이블의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크게 곡선을 그린 노란 조명 속에, 여자는 실크 슬립 원피스로 나를 응시한다. 그녀의 짙은 인조 속눈썹이 욕망을 자극한다. 테이블을 부드럽게 감싼 천에서, 늦은 밤 그녀의 잠꼬대를 듣는 은밀한 의심이 묻어있다.
적포도주.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메뉴에 적힌 영어를 조심스레 읽는다.
나는 메뉴에 적힌 수십 가지의 포도주 이름 중, 눈에 잡히는 대로 하나를 집어 주문을 넣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두려워하는 일들이 무엇이며, 그런 일들이 언젠가는 우리가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어찌 보면 슬픈 예견 같을 것을 제시하며 얘기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사랑해. 이 한마디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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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보르도 와인 위로, 행복을 들여다보듯, 눈망울이 반짝인다.
공간에서 샤브리에의 장중하고 이국적인 화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조용히 포도주를 홀짝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다가, 다시 주위를 천천히 살피며 잔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주위를 살필 때면,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 가득한 데, 결국 시선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와 같이 담배를 피울 때도, 몇 초간의 눈 맞춤과 키스 외에는 우리는 줄곧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는 영어를 모르고, 나는 러시아어를 모른다.
나는 여인의 향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애초에 적고 넘침만 있었을 뿐, 사랑이 사라진 메마른 대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랑에 휘둘리는 그런 삶을 원한 것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녀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말하기를 좋아했다. 어찌 보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특징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이 떠들고 느긋하며, 경쾌한 음악만 들으며, 남녀 상관없이 술과 담배를 즐기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제니아가 좀 영악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녀는 주방에서 씻고 닦고 자르고 훔치는 단순한 일을 끊임없이 찾아, 그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일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일부러 쉐프 눈에 들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곳곳에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고 정돈된 식탁과 조리실이 눈에 띄게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내가 윙크를 하면 그녀는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며 밝은 표정을 짓곤 하였는데 대부분은 일에 대해서 너무도 진지하여 나를 알아채고도 못 본 척 넘어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절로 한숨을 내뱉곤 하였는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쓸쓸한 것처럼 느껴졌다.
빨리빨리. 내가 가장 혐오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가장 빨리 배웠다. 당연히 매일 듣는 말이니 귀에 익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지나치게 열이 많았고 나는 추위에 민감했다. 그녀는 늘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잤으며, 이마저도 한 번씩 벗고 잤다. 아침에 그녀를 깨우러 가보면, 늘 허벅지 한쪽은 이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할 때면 생기발랄함으로 폴짝거렸다. 항상 긴 통화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호텔에서 잠들기 전까지 전화만 하였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 그녀는 잠든 나를 깨우며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항상 그녀가 기억할 만한 멋진 사랑 표현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지나간 멋진 순간들을 아우르고 다가올 행복을 암시할 수 있는 그런 문장들 말이다. 하지만 내가 결국 제시하는 것들은….
<사랑해>
<당신이 좋아>
<당신과 섹스하고 싶어>
이 정도뿐이었다.
내가 보내고자 하는 뜻이, 번역기 앱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롭고 지치고 우울과 환상이 교차하고, 지나치게 민감하다가 더없이 너그러이 그녀를 감싸는 날카로운 감정들의 뭉치 속에서 헤매기 시작한다.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하였다. 막힌 곳을 뚫고, 훤히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은, 늘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지속하였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신경을 써준다는 일종의 행복감에 물든 상태였다면, 지금은 알 수 없는 미궁에서 보내는 얄팍한 신호에 민감하게 감정을 앉혀 놓고는, 그 불안감에 휘둘리는 왜소한 자신을 바라다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당황스러운 사랑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랑으로 변장한 편협함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이건 고통이다. 하지만 행복이다.
여자는 울지 않고 나는 눈물이 잦았다. 그녀는 자신의 표정과 태도, 미소와 화냄이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를 이해하는 노력은 그다지 하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는 오히려 시간의 치유에 맡겨버리는 식이었다.
그저 나는, 삶을 지배했던 고요에서 뛰쳐나와, 불안하고 격정적이며 단순한 것에 휘둘리고 작은 일에 편협함을 나타내는, 소위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에 다시 종속되었다는 사실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돈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쓸데없이 극과 극의 판단을 놓고 괴로워한다. 그래.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돈이 필요하기에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무엇으로도 방해할 수 없는 욕망. 쭉 늘어선 도로에 삐져나온 들풀. 바람을 이고 서성거리는 곳으로, 사각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제니아는 늘 내게 다가와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볼을 꼬집곤 하였다. 나는, 돌아서면 낯선 존재로 변하는, 그저 한때의 열병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