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다는 웃는다. 그 미소는 느리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그녀의 얼굴 위로 번져나갔다. 양 뺨에 패이는 보조개는 단순한 함몰이 아니라, 세월이 정성껏 조각한 협곡처럼 깊고 긴 자국을 남겼다. 그 자국들은 마치 고대 사원의 퇴락한 벽에 새겨진 시간의 연대기, 혹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의 근원처럼 보였다. 그 그늘진 골짜기 속에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나의 어지러운 망설임을 읽었다. 뒤늦게 도달한 진실의 문턱에서 서성이며, 차마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내 주저함이,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에는 어쩌면 이토록 보잘것없는 형태로 짓눌린 자아의 초상으로 비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의 시선 아래 벌거벗겨진 기분이었지만, 그마저도 그녀는 티끌 하나 없이 단정한, 마치 의식을 치르듯 정제된 차림새로 나를 마주하며, 이미 오래전에 내린 판결을 선고하듯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깊고 고요한 바다 밑바닥에서 수 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진주처럼, 차갑고 영롱하며 무게감이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으레 행해왔던 노고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 아냐."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 표면처럼 차분했지만, 그 수면 아래에는 미세하게 떨리는 긴장감, 혹은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예리함이 감돌았다. "이것은 그저, 우리가 세상을 재단했던 기준들이 얼마나 조야했는지, 우리의 예측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자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우리의 근시안적인 예단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지. 마치 그들이, 이름 모를 수많은 근로자들에게 어제의 성대한 회식이 사실은 마지막 만찬이었음을 미리 귀띔해주지 않음으로써 초래했던, 예고 없는 종말과도 같아. 그러니 부디, 그 속에서 부질없는 상심을 길어 올리려 애쓸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녀의 말은 시간의 아득한 저편에서 간신히 붙잡힌 메아리처럼, 혹은 희미하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나의 귓가에 맴돌며 현실감을 흐트러뜨렸다. "스스로 상처를 헤집어 염증을 만드는 가소로운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거두는 편이 현명한 처사일지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의무마저 개차반처럼 걷어차 버리지는 말아줘. 당신에게 남은 책임의 무게는 여전히 실재하니까."
창문을 통해 스며든 오후의 빛줄기가 사선으로 떨어지며 그녀의 얼굴 절반만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너무도 뚜렷하여, 어둠에 잠긴 나머지 반쪽은 마치 그녀가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자아, 혹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심연의 풍경을 은닉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섬세한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보이지 않는 어떤 형상을 천천히 그려나갔다. 그것은 복잡한 도안 같기도 했고, 풀리지 않는 방정식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 우리의 삶에 대한 인식이, 고단한 음식 만들기—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정에서 비롯된 단조로움을 어떻게든 깨쳐보려는 헛된 시도에서 비롯된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조급한 세상에 내던져졌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보다 즉각적인 만족과 피상적인 새로움만을 갈망하게 되었지."
나는 그녀가 던진 말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곱씹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미로와 같아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길을 잃고 말았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사방은 닮은 듯 다른 벽들로 둘러싸여 나는 그 안에서 끝없이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언어는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방금 허공에 그리던 형상을 완성이라도 한 듯 양손을 부드럽게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손짓은 마치 무언가를 해방시키는 듯, 혹은 관객에게 모든 것을 내보이는 마술사의 마지막 동작 같았다. "조종간을 잡고 있던 두 팔을 잠시 놓았다고 해서, 그 비행이 당신의 불안한 예감대로 기어이 어긋나는 방향으로 지나치게 치솟거나, 예기치 않게 좌우로 벌어져 균형을 잃거나, 심지어 수직으로 하강하여 저 심연의 끝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편이, 우리가 들인 수고로움에 대한 오늘의 평가로서도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 당신의 노력이 완전히 무화되는 것은 아니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녀의 질문은 예고 없이 던져진 닻처럼 나의 사고를 붙들었다. 그 무게에 짓눌려 나는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는 서늘했고, 대답을 찾아 헤매는 나의 머릿속은 혼돈스러웠다. 바로 그때, 창밖을 지나던 커다란 구름이 잠시 햇빛을 가렸고, 방 안의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더욱 깊고 침잠된 색조로 변했다. 에스라다의 얼굴은 이제 완전한 그림자 속에 놓였다. 그녀의 윤곽선만이 희미하게 드러났고, 그 모습은 더욱 불가해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나는… 나는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두 개의 자리, 그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가능성들을 모두 끌어안으려 애쓰는 대신, 그저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 생존이라는 최소한의 키트에 대한 명백한 자긍심조차 이제는 조금 덜 느끼는 쪽으로… 미미하게나마 진화했다는 그 소극적인 사고에서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때로는 안도하고 행복하다고 스스로 결론짓고 싶은 순간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많아."
나의 목소리는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불안정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물기를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무겁고 흐릿했다. 방 안의 공기는 갑자기 밀도를 더한 듯 무거워졌고, 우리 사이에 흐르던 침묵은 이전보다 더 깊고 농밀해졌다. 에스라다는 그 침묵을 서둘러 깨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마치 나의 다음 말을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 기다림 속에는 판단이나 비난 대신, 오롯한 경청의 태도만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나는 어쩌면, 당신이 제시하는 그 다변적인 생각과 섣부른 속단에 쉽사리 부서지지 않을 만큼, 더 다양한 방향의 노력에 나 자신을 봉사하도록 시도해 볼 최소한의 자격은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어. 물론, 당신의 그 날카로운 생각이 나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내 존재 자체를 희석시키는 용제로 혼합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나의 마지막 말에, 에스라다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그것은 짙은 벨벳 같은 밤하늘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별빛처럼, 혹은 깊은 우물 바닥에서 반사된 미광처럼 선명하고 강렬했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한 곡선을 그리며 미소로 휘어졌다. 그것은 이전의 분석적이고 다소 차가웠던 미소와는 다른, 어쩌면 아주 희미한 온기를 담은 듯한 미소였다.
"물론,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듯했다. "나의 의무와 내가 베푸는 칭찬은, 우리가 고상하다고 믿는 이 하루의 일상을 그저 무사히 끝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들에서 비롯되지 않아. 그것들은 다른 차원의 동기에서 출발하는 거야."
그녀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 창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유려했고, 마치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러웠다. 창밖에서 역광으로 들어오는 빛은 그녀의 실루엣을 선명하게 드러냈고, 그 모습은 마치 빛바랜 세피아 톤의 사진 속에 박제된 인물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아련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우리는 그저, 나의 이 불완전한 부분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한탄스러운 삶의 조각들을 애써 아름답게 꾸미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 불가피한 상황 자체에 대해, 더 이상 부적절한 농담이나 값싼 동정 따위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의 진실을, 그 추함마저도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러므로 당신 역시, 더 이상 하찮은 변명으로 자신을 포장할 필요는 없어."
그녀의 말은 빈 방 안에 낮은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무게와 질감을 가진 어떤 실체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말이 가진 그 엄숙한 무게감을 느끼며,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내 기억의 가장 깊숙한 서랍 속에 조심스럽게 접어 넣었다.
에스라다는 창가에서 조용히 돌아서서, 방 한쪽에 놓인 작고 낡은 테이블 위에서 익숙한 손길로 담뱃갑을 찾아 열었다.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그녀의 손가락 끝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라이터를 들어 담배 끝에 불을 붙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어스름 속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씨는 작은 별처럼 반짝였고, 이내 피어오른 푸른 담배 연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혹은 그녀가 풀어놓은 복잡한 상념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우아한 춤을 추며 공기 중으로 느리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말처럼,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바라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로 변해가는 듯했다.
한 대의 담배가 연기로 스러진 후, 우리는 말없이 그 공간을 나와 홀로 들어섰다. 이곳은 우리가 꽤 오랫동안, 어떤 의례처럼 찾아오곤 했던 낡은 식당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익숙한 풍경의 모든 요소가 유난히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왔다. 필요 이상으로 높게 설계된 천장은 우리의 존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고, 벽면을 덮은 흰색 페인트 위로 붉은 녹물이 마치 핏물처럼 얼룩덜룩 번져 있는 모습은, 지나간 시간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대한 캔버스처럼 보였다. 그 적막한 조화는 기이한 아름다움마저 자아냈다.
벽의 상단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진, 지나치게 크고 무겁고 칙칙한 색상의 커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괴한 조형물처럼 뒤틀린 채 감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식당이 한때 누렸을지도 모를 과거의 초라한 영광, 혹은 감추고 싶은 비밀을 필사적으로 가리려는 서툰 노력처럼 보였다. 나는 어제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여러 번 그랬듯이, 그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운 커튼을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내 안의 그 파괴적인 생각을 밖으로 표출할 만한 무모함이나 대담함은,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다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국 그것은 나만의 문제, 나만의 하찮은 심미적 불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주는 불쾌감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령 뒤틀린 예술적 심미안 때문일지라도, 그 그로테스크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쾌락이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그 무엇이었다. 게다가 이 식당의 주인은, 손님에게는 단 한 톨의 정(情)도 내비치지 않는 안하무인의 표정을 고수하는 고집 센 할머니였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근사함이나 미(美)에 대한 확고한 기준은 분명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진실이라고 믿는 바를 말함으로써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시적인 만족감보다는, 자칫 불필요한 마찰과 감정 소모로 이어질 수 있는 표현의 불쾌감을 애써 선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안타깝고도 편리한 가벼움, 혹은 생존 본능일지도 몰랐다.
놀랍게도, 에스라다는 마치 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나란히 서서 그 문제의 커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짧은 순간,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어쩌면 동의일 수도, 혹은 나의 소심함에 대한 연민일 수도, 아니면 그저 무심한 관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선 교환 속에서, 나는 우리가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감지하고 있음을,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식당의 분위기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찼다. 잠시 후, 아민이라는 이름의 젊은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 근처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 움직임에는 오랜 시간 반복된 노동으로 다져진 침착함과 능숙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정갈하게 담긴 두 가지 작은 반찬 접시가 벗어나, 테이블 옆에 마련된 작은 이동식 선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졌다.
나는 그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이내 저곳은 앞으로 도착할 무수한 것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서른 가지에 달하는 다채로운 반찬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공기, 은빛으로 반짝이는 수저와 깨끗하게 접힌 냅킨, 시원한 물과 투박한 유리컵,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주문할지도 모르는 탄산음료나 식후의 커피까지. 그 유형의 사물들 사이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질서와 혼탁한 열망—허기를 채우려는 본능,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들이 함께 뒤섞여 분비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민이 보여준 이 단순하고 소박한 행위—두 개의 작은 반찬을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는 그 몸짓은, 내게는 단순한 의무적인 서비스를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이 소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녀가 내게 건네는 아주 작고 사적인 선물과도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순간이 가르쳐주는 어떤 묘한 장점—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배려, 혹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성실함이 주는 위안 같은 것에 대하여, 따뜻하고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앞으로도 이 식당에서, 그리고 어쩌면 삶의 다른 국면에서도, 이처럼 조용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으로 이어졌다.
아민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살짝 열었다가, 그러나 이내 다시 가볍게 닫았다. 그녀의 크고 맑은 눈에는 말로 온전히 표현되지 못한 어떤 감정의 잔영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침묵 속에 감춰둔 비밀을 품고 있는 듯, 깊고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때, 에스라다가 아민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앞서 보여주었던 그 어떤 미소와도 달랐다. 마치 오랜 시간을 건너 재회한 친구를 맞이하듯, 혹은 고된 하루를 보낸 이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따뜻하고 진심 어린 미소였다. 아민은 그 미소에 화답하듯,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고, 그리고는 다시 그녀의 일상적인 무표정으로 돌아가 다른 테이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 안의 소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사람들의 왁자한 대화 소리,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소리, 주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름 끓는 소리와 칼질 소리가 한데 뒤섞여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의 파도 속에서도, 나와 에스라다 사이에는 여전히 특별한 종류의 침묵이 섬처럼 존재했다. 그것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안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깊은 이해의 공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평화로운 영역이었다.
나는 문득, 나 자신도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에스라다 역시, 여전히 그 희미하고 따뜻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우리의 웃음은, 이토록 복잡하고 때로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함께 발견한 아주 작고 소중한 진실의 조각과도 같았다. 그래, 정말이지 근사하고 좋은 하루가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 순간은, 우리가 앞으로 함께 써내려갈 또 다른 이야기의 조용한 시작일 뿐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맑게 개어 있었다. 방 안을 어둡게 했던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따스하고 눈부신 햇살이 커다란 창을 통해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와 우리의 테이블 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 찬란한 빛 속에서, 에스라다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깊이, 그녀의 입술 끝에 아직 남아있는 미소의 흔적, 그리고 그녀의 양 뺨에 패인 보조개가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그림자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완벽하게 계산된 듯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거나 아예 멈춘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나와 에스라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낡고 소란스러운 식당의 풍경은,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의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비현실적인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미로운 착각이야말로, 때로는 냉혹한 현실보다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두 사람은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