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by 남킹


프롤로그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변한 것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게다. 흥미가 사라진 자리는 그저 따분하지만, 안온하기도 한 일상의 조용한 반복만 계속될 뿐이다. 자고 깨어나, 내 방 네모난 창에 그려진 라일락과 오동꽃 그리고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고, 그사이를 오고 가는 바람을 느낀다. 늦은 아침과 간단한 청소. 그리고 머그잔에 커피를 쏟고 볕이 드는 베란다, 길게 뻗은 안락의자에, 늘 입어 왔던 오트밀 색 스웨터를 입고 비스듬히 누워, 희고 성긴 탁자에는 노트북을 담아두고, 지난밤 얕은 잠결에 꾸었던 괴상망측한 기억 자락을 습관처럼 더듬는다.


꿈은 참 늙지도 않는다. 마치 샤갈의 그림처럼, 회색 도시 위를 몽환답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살인자의 칼을 피해 어둠 속을 기어 다니기도 한다. 러시안 티룸 같은, 고풍스러운 안락함 속에, 엔디브 샐러드와 붉은 마고 와인을 앞에 두고, 푹신한 쿠션에 몸을 누인, 순딩이 같은 여인의 따스한 손을 느끼는가 하면, 척박한 땅에서 난 허브가 가득한, 큰 포푸리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집에서, 아이리스 꽃향기를 맡으며, 유유한 식사를 하다, 별안간 적들과 죽음의 결투를 신청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십 대 때 가졌던 유치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좀 더 좋게 말하자면, 여전히 꿈은 젊고 활기차고 무모하고 사랑스럽다. 이제 꿈도 몸을 떠날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어젯밤 꿈은, 환상이 아니라, 기억처럼 또렷하고 사실처럼 진지하다. 눈부시게 젊은 날, 모든 시간이 본능과 꿈을 좇아 엮어지던 시절, 삼수 끝에 겨우 들어간 대학 교정을 신바람 나게 휘젓고 다니던 그 날들. 낭랑한 웃음소리가 번지던 교실과 후문으로 가는 길옆을 가득 채운 개나리. 끊어지지 않고 늘 휘감겨 불어오는 소나무 숲길의 산들바람. 나무는 춤을 추고 구름은 한가롭다. 100년도 더 된 캠퍼스가 마치 어제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숲이 끝나는 곳에 엉뚱하게 솟아오른 세 동의 기숙사 건물. 내가 속한 A동 11층에서 나는 늘 그녀가 사는 C동 9층을 바라다보곤 하였다. 9층의 어느 창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중 하나에 노란 불이 들어오면 무심코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창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나는 창 문턱에 턱을 괴고, 도저히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바람에 코끝이 시릴 만큼 쳐다보곤 하였다.


세월이 아무리 가도 마음의 성숙은 어린애를 벗어 날 길이 없다. 나는 꿈이 깰까 봐 조심스레, 이제 막 베란다 끝을 점령하기 시작한 봄 햇살 쪽으로 몸을 틀어 본다. 그러다 무심결에 맞는 한 줄기 바람이 첨예하게 살 속을 찌르고 간다. 나는 옷매무시를 다시 다지고,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 방해받지 않도록 보듬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들어 본다. 푸르름이 번진 하루는 그리움을 찬찬히 시작할 수도 있다는 서글픈 희망을 품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날은 새소리도 구슬프고 명확하며 바람 소리도 가벼워 하늘 밑 피조물에 대한 부드러운 손길을 한없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노트북 파워를 넣고 부팅을 기다린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많은 글을 남기고 싶다. 나는 끝없이 내 머리에서 솟구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채색되고 가공된, 옛 추억이 버무려 낸 순간에 상상의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불현듯 스치는 놀라운 인간의 재치를 탐구하는, 이런바 찰나의 순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어쩌면 그 순간의 몰입만이 내게 남겨진 몇 안 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이국땅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면 말이다.




1.


내 노트의 처음은 그녀를 알게 된 순간이 아니다. 교정에서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낮은 집들과 좁고 구부정한 길들이 엮어낸 소박한 정물화 같은 곳에, 장식 하나 없이 무채색의 마름모꼴 성당을 나는, 일요일 오전, 그녀의 뒤를 밟아 들어갔다. 내부도 단순하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무 십자가의 예수는, 그동안 보아 왔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다소 무심한 표정이었고, 좁고 긴 창에는 유럽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하나 없이 맑은 햇살만 곱게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경험한 미사를 기억해내고, 성호를 긋고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잠시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렸다. 그러다 회중석에 자리한 그녀를 본다. 나는 그날, 어디서 그런 배짱이 솟았는지, 그녀의 옆자리에 그냥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곱게 눈을 감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기도하는 척하다가 살짝 눈을 뜨고 곁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가슴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선 그녀의 수수한 옷에서 안심을 받는다. 과하게 신경 쓰지 않는 매무새는 포용처럼 느껴졌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육중한 오르간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모두 일어났고 나도 따라 일어났다. 입당 송이 시작되었다. 다들 찬송가를 펼쳤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빈손으로 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내게 찬송가를 살짝 내민다. 비로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거의 찰나에 가까웠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뛰었다. 나는 입만 벙긋거리며 익숙하지 않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합창 속에 약하게 섞여 있다.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눈부신 젊음은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기억은 오래도록 그 날의 행복을 기록해 두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빠짐없이 일요 미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녀 옆에 앉을 용기는 더는 갖지 못했다. 나는 늘 맨 앞자리에 앉는 그녀의 뒷모습을 항상 지켜보곤 하였다. 그것에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박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평화의 영성체에서 주는 밀떡을 받고 돌아설 때마다 마주치는 그녀의 노래 하는 모습.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나는 어느새 신부의 강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젊고 정직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슬프게도, 지금의 세상은 군사 독재 시절이라는 사실을 용기 있게 말씀하셨다. 그는 정중하고도 부드러운 어조로 인간의 도리와 삶의 가치를,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게 풀어서 설명하였다. 그는 심지어 기독교의 관점을 벗어나거나 타 종교를 수용하기도 하였으며 철학과 역사, 우화에서도 진리를 찾는 수고로움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매주 진행되는 강론을 위하여, 그가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 고뇌 그리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가를 그저 짐작으로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일요일은, 그녀의 뒷모습과 신부님 말씀으로 엮어졌다.




2.


오후가 되자, 나는 천천히 일어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텅 빈 선반에 자리한 김치통과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반찬 통 두어 개도 꺼내, 바니시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밥상에 놓았다. 둘째 딸이 선물한, 냉동된 그라니테 샤베트도 한 통 꺼냈다. 보온밥통에서 밥도 펐다. 밥 냄새에 이끌렸는지,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다. 몇 년 동안을, 이 골목 저 구석에서 가끔 본 녀석인데, 어느새 친구처럼 되어, 경계도 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먹다 남은 우유를 접시에 따라 녀석의 앞에 둔다. 서둘러 달려와 접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유에 혀를 날름거린다. 손바닥만 한 부엌 창문에서 따스한 봄빛이 살랑거린다. 나는 한동안 앉아 내 삶의 공간을 바라본다.


22평의 다세대주택은, 어쩌면 나의 마지막 삶의 공간이 될 것이고,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아내를 떠나 보냈다. 자식들도 각자의 둥지를 찾아 오래전에 떠났다.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에게서 떠나듯, 이제 내 아내, 내 자식들을 떠나 보냄으로써, 적어도 생물학적인 생의 목적은 다 한 셈이 되었다.


목적이 지나간 자리. 그리고 홀로 된 자리. 그러자 나의 공간은 지나치게 넓어 보이고 내가 소유한 것들은 한없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아니 어쩌면 세상에 보이는 나를 위해, 좀 더 넓은 집과 좀 더 비싼 차와 좀 더 고급스러운 물건들에 집착을 보일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허망하게도 내 시간의 큰 뭉치들은 온전히 <소유의 갈증>으로 채워졌다. 욕망이라는 끝없는 허기로 만들어진 아가리에, 나는 성실하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가며, 결국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쑤셔 넣은 것이다. 아무리 넣어도 부풀지 않는 그곳에 말이다.


그게 단지 후회스럽다.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덜 경쟁할걸. 그냥 그저 하늘과 구름 한 번 더 보고, 잽싸게 마로니에 나무 뒤로 사라지는 청설모 부부가, 내 방 네모난 창에 다시 나타나 길 기다리는 설렘이나 진작 배워둘걸.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내 삶의 종착역에서 비로소 느끼게 된 걸까? 도대체 무엇이 애초에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 삶을 얼추 다 살아봐야 비로소 작은 깨달음 하나 얻고 가는 존재로 빚어진 걸까?


후회의 가닥은 그리움과 연민과도 동반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할 순간. 손목을 굳게 움켜잡고 놓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욕정과 호기심, 새로움에 춤추던 젊은 시절은 그저 돌아보면, 후회, 후회, 후회, 또 후회. 온통 후회투성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그리움이라는 파편으로 내 살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밤이 되어 홀로 누운 자리, 창에 달라붙은 도시의 네온사인 불빛만큼이나 신경이 쓰인다.


나는 그녀를 따라 예정에도 없던 <17, 18세기 영미 시>를 수강 신청하였다. 100명도 넘는 사범대 영어과 학생 중 단 세 명뿐인 남학생. 그중에 타과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학점 짜고 난해하기로 유명한 노교수의 강의를 감히 수강하는 얼빠진 녀석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강박처럼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았고, 나는 맨 뒷줄에, 마치 남자 지정석처럼, 유일한 남자들 옆에 나란히 앉았다.


강의는 지루함의 극치를 달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잡음 섞인 마이크에서, 구분되지 않는 영어 발음과 중얼거리는 한글 해석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불쌍한 공학도에게는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첫 수업부터 받아 적기를 포기하고, 그저 멍하니 그녀의 말아 올린 까만 머리만 쳐다봤다. 무료한 시간은 상상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공상은 풍부해지고 상세해졌다. 이야기는 이제 구체화하였고, 마치 손에 잡힐 듯 생동감을 더해갔다. 물론 주요 등장인물은 나와 그녀였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지극히 우울하고 서글픈 결말이 더해졌다.


그녀는 언제나 수업이 끝나면, 머리 뒤로 손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풀어 흔들었다. 강의 시간 내내 말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응결되었던 그녀가 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찰랑거리는 검은 물결 속으로 내 도취한 마음마저 흔들렸다. 언제까지 이런 <지켜봄>이 지속 가능한지 나로선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사랑은 시간 속의 고뇌였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강제하고, 숙명적이라는 착각을 요구하고 독점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가방을 어깨에 메고 몸을 틀어 계단을 올라 나의 곁을 스쳐 갔다. 계단참에 엉거주춤 선 채, 그녀가 흘리고 간 기억 자락을 주워든다. 그녀의 얼굴에는 젊음이 발산하는 도도함이 서려 있다. 창백한 살결은 우아했고 짙은 눈의 미세하고도 온전한 떨림은 연민을 자아낸다.




3.


방은 생각보다 작고 시원하고 어두웠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려보고 희망하고 거의 만들어내기까지 한 모습은 아니었다.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기숙사 오픈 데이>. 나는 여자 기숙사 9층의 방 하나하나를 다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발견한 그녀의 사진. 다섯 자매가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 하얀 블라우스에 긴 생머리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녀가 사는 곳을 비로소 찾은 것이다. 922호.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낯선 룸메이트가 싱긋 웃으며, 예기치 않은 방문 탓에, 호기심을 잔뜩 묻은 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서둘러 창가로 가서 11층 나의 방 창문을 가늠해 보았다. 아쉽게도 내가 보는 쪽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방을 열심히 지켜본 것이다. 아무튼, 좋았다. 나는 마치 사건 현장에 나온 수사관처럼 찬찬히 그녀의 방을 훑어 내려갔다. 나무 침대와 하얀 보가 덮인 책상. 그 사이로 붉은 조명이 어딘가에서 나와 벽을 타고 내려왔다. 낡은 TV가 보이고 좁은 탁자가 구석을 차지했다. 탁자 위에는 도서관 마크가 찍힌 책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존 업다이크> 소설이었다.


나는 룸메이트의 맞은편, 그녀의 자리로 추측이 되는 침대에 조용히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잠시 적막함과 어색함이 좁은 공간을 지배했다. 어느새 눈은 어둠에 익숙해졌다. 침묵이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곧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한 무더기의 남녀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룸메이트와도 친한 듯, 그녀 주변에 둘러서서 큰소리로 부재중인 주인장 이름을 불렀다.

“송안나 어디 간 거야?”


나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어릴 적, 생일에만 맛볼 수 있었던 짜장면을 비우고 중국집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공간을 빈틈없이 살펴보고 음미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계단을 이용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 선명하고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나의 발걸음은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존 업다이크> 책은 모두 대여 중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북문 앞 대형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겨우 책 한 권을 구했다. <달려라, 토끼>.


4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서재에는 그의 토끼 4부작이 모두 꽂혀있다. 한글책뿐만 아니라 영어 원본, 독일어 번역 책도 샀다. 나는 비가 오는 오후가 되면, 종종 언어별로 모두 꺼내 놓고 한 줄씩 비교해 가며 읽곤 한다. 속도는 무척 느리지만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여러 번 읽은 터라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저 처음 읽었을 때의 묘한 끌림만 회상하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이름과 전공, 기숙사 호실을 소개하고, <존 업다이크>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오픈 데이> 때 당신의 방에서 그의 소설을 발견하여 기뻤다는 것과 혹시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게 되면, 내게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적었다. 나는 편지 겉봉에 연애편지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영미 소설 애호가>라고 적었다. 그리고 편지를 여자 기숙사 관리실 한편에 있는 편지함에 그냥 넣어 두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마치 외부에서 온 편지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애써 우표를 붙이고, 교내 우체국 대신 근처 마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일주일 뒤, 나는 쪽지가 든 편지를 받았다. ‘죄송해요. <존 업다이크> 팬이 가까이에 있는 줄은 전혀 몰랐네요. 우선 한 권 반납했어요. 나머지도 곧 반납할게요. 좋은 시간 되시길.’ 그녀의 필체는 의외로 투박하고 내용은 건조하였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나는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썼다. 자신은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 사람이기에 조급하게 반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혹시 원문이 있으면 빌려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주일 뒤 나는 낡은 영어책 한 권을 받았다. 펼쳐보니, 그녀의 책이 확실해 보였다. 곳곳에 투박한 글씨체의 한글 주석이 달려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그녀의 책과 한글 번역본을 펼쳐 놓고 한 줄씩 읽어 나갔다. 물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록 가물에 콩 나듯이 답장을 받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적어도 그해 겨울까지는 말이다.




4.


그해 겨울, 아버지가 부도를 맞았다.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빚쟁이가 들이닥쳤고, 우리 가족은 도망치듯 지하 단칸방으로 몸만 옮겼다. 나는 가족과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실천했다. 휴학하고 공군에 자원입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날,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대전 훈련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떠나기 전, 그녀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며, 간단하게 군에 간다고만 적은 쪽지를 넣어 두었다. 그녀에게 쓸 말은 끝도 없이 많았지만, 가슴엔 절망만 넘쳐 흘렀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편지는 결국 한 글자도 써 내려 가지 못하고 가슴에만 오롯이 남겼다.


나는 신부님에게도 감사의 편지를 남겼다. 신부님 말씀 덕에 일요일이 무척 행복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백성사도 보았다. 나는 절망스러운 가난과 짝사랑의 고통을 토로하고, 곧 닥쳐올 군 생활의 암담함을 털어놓았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이 불현듯 느껴진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모든 게 꼬여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 자신조차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찰나와도 같은 날들 말이다. 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그 고통조차 그리움으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해 봄, 남쪽 해안 도시 수송기 부대에 배치를 받은 나는, 초코파이에 매료되어 다시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사람의 젊은 신부님을 만났다. 기대와는 달리 다분히 세속적인 그는, 술과 담배를 즐겼고 장교들과 골프도 치러 다녔다. 강론도 그다지 고민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교리서에 나와 있는 말씀을 살짝 풀어 놓은 정도였다. 하긴 미사 때, 절반 이상은 졸고 있는 사병들에게 무슨 말씀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군종신부에게도 좋은 점은 있었다. 사병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는 것이다. 예전 신부님이 지적인 카리스마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면, 이 분은, 성직자라면 의당 갖추어야 할,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의젓함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저 친구하고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처럼, 단순하고 순박하였으며 스스로 낮추어, 거리낌 없이 사병들을 친동생처럼 대했다.


미사가 끝나면, 나와 동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군종신부의 집무실에 모여, 와인을 홀짝거리거나, 빵이나 과자를 게걸스럽게 씹으며, 마치 동창회라도 하는 듯 떠들썩하게 말꽃을 피우곤 하였다. 그러면 신부님은 옆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며 신이 난 듯 키득 키득거렸다. 아담한 집무실은 어느새 사병들과 담배 연기로 공간을 꽉 채우곤 하였다. 삐죽이 열어둔 창문 틈 사이로 흰 연기가 쉴새 없이 달아났다. 낯선 이가 본다면 화재신고라도 할 판이었다.


집무실 내부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한 책상과 의자, 철로 된 캐비닛, 좁은 소파와 난로, 그리고 십자가와 벽에 걸린 사진 두 장이 전부였다. 사진은 신부님의 사제서품식 장면을 담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제가 반듯하게 줄을 지어, 마치 엎드려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의 단체 사진과 교황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비교적 가까이에서 촬영한 신부의 얼굴이 담긴 장면이었다. 운 좋게도 그는 교황이 방한한 해에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부님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틈만 나면 그는 그날의 벅찬 감격을 설파하곤 하셨다.


더위가 막 시작된, 그날도 그랬다. 무슨 얘기 끝에, 신부님은 황홀한 표정으로 교황을 직접 알현한 모습을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강력한 뭔가를 캐비닛에서 찾아 우리에게 펼쳐 보였다. 두툼한 사진첩이었다. 웅장한 사제서품식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부님은 침을 튀기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설명하였고 빼곡히 둘러앉은 우리는 모두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사진 속에서 낯이 익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신부님 혹시 이 분 아시나요?” 나의 질문에 그는 설명을 멈추고 사진을 가까이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지. 강 베드로 신부네. 근데 너는 어떻게 알아?”

“아 네, 학생 때 다니던 성당에서….”

“그럼 너 K 대학 출신인가?” 묘하게도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신부가 사제 서품을 같은 날 받은 친한 동기였다. 군종신부는 대번에 강 신부에게 전화를 걸더니, 마치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처럼, 깔깔거리며 나의 소개를 덧붙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친구라니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다.


5.


그해 여름, 나는 첫 휴가를 나갔다. 이틀을 집에서 보낸 나는, 이른 아침,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목적지는 성당이었다. 강 신부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매년 여름이 되면 청년들을 대상으로 농촌 봉사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금쪽같은 휴가 기간이지만 며칠만이라도 참가해 주면 고맙겠다는 그의 권유를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술에 절어 낭비할 시간이 아니겠는가!


승용차와 버스, 배를 번갈아 타고 종일 달려, 십여 명의 청년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한적한 어촌이었다. 수평선에 걸친 해는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각자 맡은 짐을 들고 캠프가 있는 곳까지 걷기 시작했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은 긴 그림자를 달아 주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어둠이 몰려왔다. 우리는 준비한 플래시를 켜고 낯설고 좁은 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더위는 해가 져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위안이 되었다.


일행은 한 시간쯤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세상은 이제 칠흑의 밤이었고 깨알 같은 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캠프 입구를 밝히는 두 개의 백열전구에는 수많은 벌레가 몰려들었다. 우리의 도착이 전해지자 숙소에 있던 봉사 대원들이 모두 나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그 속에는 강 신부도 보였다. 허름한 작업복에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영락없는 농부였다. 언제나 말쑥한 사제복장의 모습만 보아 온 터라, 순간적으로 낯선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나는 젊은이들 속에 낯익은 여인을 목격했다. 비록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널찍한 티셔츠와 풍성한 몸뻬를 걸쳤지만,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심장이 망치질하듯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송 안젤라입니다.” 그녀는 악수를 청하였다.

“아 네. 저 저 저는 토마스. 김 토마스입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생각보다 손은 거칠고 차가웠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잡고 있었다. 어느새 강 신부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마침내 만나게 되었구먼. 카르페 디엠.”




6.


“....”

그녀가 뭐라고 말을 했다. 버스 안에서. 뒷자리. 농촌 봉사 활동에서 돌아오던 그 날. 우리 조가 모두 모여 있던 그곳에서. 그녀가 살짝 다가와 내게 속삭인 말.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 깊은 곳에서, 나는 그 말뜻이 내포한 정반대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 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느낌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투정이었지만 진실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의 표정. 그녀의 눈동자. 그녀가 말할 때 오물오물하던 입술의 표정. 휙 지나가는 뒷모습에 풍겨 오던 그녀의 화장품 냄새. 아니 어쩌면, 농촌에서의 마지막 날, 검은 텐트에 랜턴 하나 덜렁 매달아 놓고 시작한 놀이. 무슨 놀이였던가? 아무튼, 내 옆에 앉은 그녀.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의식적으로 내 어깨에 자주 올라가던 그녀의 손. 웃음 속에 마주친 그녀의 밝은 미소. 그 속에 담긴 무수한 항변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끌림의 몸짓>을.


나는 그 순간, 버스에서, 한없는 설렘을 느꼈다. 차창 밖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이, 그 찰나의 모습이, 마치 느린 동작처럼 길게 늘어졌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을 보는 느낌이었다. 늘어진 창밖 광경. 엿가락처럼 휜 도로 위, 저마다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 어질머리나는 도시의 간판들. 마음의 부림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서늘하게 바꾸고 있었다. 더는 좋아질 수 없는, 나는 그저 사랑의 기쁨 속에 풍덩 빠져 있었다.


나는 귀대하자마자 그녀에게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거의 사흘에 한 통은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 휴가 때 꼭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밋밋한 푸른 체크무늬 블라우스. 흰 양말과 낮은 굽의 황갈색 구두. 장식 없는 검은 핸드백. 겨우 짜내 기억한, 그녀와의 첫 데이트. 군에서 맞은 두 번째 휴가. 함박눈이 펑펑 내린 좁은 골목길을 묵직한 소리를 내며 걸어서 들어간 카페. 작은 뜰 외에는 아무 특징이 없는 그냥 그런 그곳. 재즈 음악이 차양처럼 드리웠고, 커다란 고드름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던, 낮은 지붕들이 온전히 다 내다보이는 곳에서, 나는 얼얼한 손을 비비며 그녀와 마주 앉았다.


두려움과 행복감이 교차하였다. 말은 헛나가고 목소리는 고조되었다. 도저히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시간은 흐려지고 정신은 산만하다. 침묵은 두렵고 대화는 빗나가기만 한다. 객쩍은 생각만 머릿속을 헤집는다. 별스럽게 웃음이 헤프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그 날이 떠오른다. 내 기억 한편에 꾸깃꾸깃 들어앉아 당최 옅어지려고 하지를 않는다. 어떻게 인사하고 헤어졌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그녀는 내게 초청장을 불쑥 내밀었다. 어느새 그녀의 졸업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가톨릭 청년회에서 주최한 졸업 환송회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졸업생 주위를 빙 둘러선 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작별의 노래. 악수와 포옹이 오가고 어떤 이들은 눈물이 맺혔다. 초대받은 이들은 입구 쪽 의자에 머쓱하게 앉아있었다. 대부분 가족이거나 연인이었다. 나도 그 들 속에 끼어 있었다. 졸업생들이 한 명씩 차례로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이윽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환송 인파를 뒤로 한 채 홀을 빠져나왔다.


밖은 춥고 어두웠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외투 주머니에 잡은 손을 푹 찔러 넣었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절대 놓고 싶지 않았다.




7.


노을이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 때쯤, 지속해서 부는 바람 소리를 등지고, 나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털썩 누워, 오늘 기록한 그리움을 다시 들추어 본다. 마음은 회한으로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도리가 없어 보였다.


얼마 전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확진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삶의 무수한 자국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술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가 갈수록, 또렷한 듯 보이는 것들도, 어느 추리 소설처럼, 내 머릿속 뇌가 꾸미고 부풀리고 왜곡하여 만든 가상세계로 치장된 모습들도, 급속히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단 하나의 느낌으로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그녀의 눈, 코, 입, 얼굴형, 뒷모습 등을 정말이지 아무것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느낌만이 가득하다.


어렵게 대학생이 된 그해, 유난히 따뜻했던 봄날, 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캠퍼스를 신나게 활보하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날들. 교정에 소풍 나온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이 짝꿍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곧이어 터진 울음. 그때 한 학생이 잽싸게 달려와 그 어린이를 안았다. 그녀는 바지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환한 미소로 어린이를 달랬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내 그리움의 시작은 그날이었다.


그리고 졸업 환송회가 끝난 밤.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교정. 어스름한 달빛과 가로수가 흐릿하게 길을 내어주던 곳.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무슨 말을 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마주한 기숙사 건물. 고불고불한 숲길의 마지막. 나는 절대로 내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잡은 손을 더욱 움켜쥐었다.


문득, 추위로 새파랗게 시린 입술로 그녀가 나에게 입 맞추었다. 키스는 빠르게 스쳤고 아쉬움은 첫 만남 때처럼 어색하고 소원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나를 엉거주춤하게 했다. 하지만 쓰나미처럼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밀려 왔다. 나는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솜털 보송한 스웨터의 따스한 감촉. 나는 얼음장 같은 얼굴을 비비고 입술을 찾았다. 점점이 뜨거워지는 입김. 황홀한 삶의 기쁨. 시간은 멈추었고 세상은 우리를 위해 조용히 숨죽였다.


나는 그녀의 눈길 속에 미소와 수줍음을 느꼈다. 언제나 고귀하면서도 확신에 찬 얼굴. 이 여인에게 나는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교사 발령을 기다리며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순직하였다.


내 방 틈서리마다 온통 어둠이 깔렸다. 어둠은 서글픈 일들을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나는 서둘러 커튼을 열어젖힌다. 반은 기억이고 반은 망각 속에 사라진 단면의 시간이 후두두 떨어진다. 창밖 가로수는 세상의 불빛을 받아 환하다. 나는 방에 앉아 무시로 지나가는 청설모 부부를 기다린다. 그마저 없다면 허전한 노릇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리고 깊은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꿈속에 펼쳐질 흥미진진한 세상을 은근히 기대한다.

바티칸의 최종 병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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