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잿빛 도시의 시시포스, 혹은 구원의 서곡
2025년의 어느 가을, 엔트로피의 법칙이 대기권의 질서를 무참히 유린하던 날이었다. 회색빛 미립자 먼지의 군단이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불투과성의 장막을 드리웠고, 대기는 포화 상태를 넘어선 수증기를 잉태한 채 차가운 신열과도 같은 비를 게워내고 있었다. 중금속과 화학적 오염물질을 탐욕스럽게 머금은 산성비는, 키메라적 욕망의 불빛을 발산하는 네온사인이 번들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흘렀다. 그 물줄기는 현대 문명이 배설해낸 온갖 유기물 및 무기물의 찌꺼기들과 뒤섞여, 혼돈 이론가들이나 판독할 법한 카오스적 프랙탈 문양을 무한히 그려내고 있었다. 바로 이날은, 서울이라는 거대 유기체의 모세혈관을 누비며 생명을 연장하는 플랫폼 배달 라이더, 김씨에게 있어, 마치 우주적 카르마의 알고리즘에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한 듯한, 지독하리만치 운수 좋은 날로 기록될 터였다. 그의 실존은 이 하루라는 지극히 짧은 시퀀스 안에서 희망의 아포게이(apogee)와 절망의 페리게이(perigee) 사이를 격렬하게 오가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그 모든 확률적 가능성은 결국 예측된 파국이라는 단일한 고전적 결말로 수렴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다.
그의 노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논했던 부조리의 극단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 현대판 시시포스의 형벌과 다름없었다. 검게 얼룩진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네모난 판옵티콘에 점멸하는 호출 신호, 즉 ‘콜’을 수락하고, 익명의 타인이 욕망하는 음식을 픽업하여, 알고리즘이 산출한 최적 경로와 제한 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하는 무한의 루프.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묻는 행위 자체가 사치인, 오직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명령값에 종속된 기계적 움직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가 짊어진 배달통의 무게는 기이할 정도로 가벼웠고, 그의 스마트폰은 마치 대천사가 전하는 복음처럼, 연신 구원의 메시지를 울려댔다. 첫 번째 축복은 강남의 한 오피스텔, 인간의 욕망이 가장 세련된 형태로 응축된 그 바벨탑의 한 칸에서 주문한 샐러드 배달이었다. ‘배달 완료’라는 차가운 텍스트를 터치하여 디지털 낙인을 찍는 순간, 그의 텅 빈 계좌로 입금된 8천 원의 배달료는, 마치 단테가 지옥의 문턱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영접을 받은 것과도 같은, 구원의 장엄한 서곡이었다. 뒤이어, 지체할 틈도 없이 터져 나온 1만 5천 원짜리 파스타 배달 콜은, 그 미약했던 서곡을 한층 웅장하고 격정적인 교향곡으로 변주했다. 지난 열흘간, 그의 텅 빈 계좌를 스쳐 지나간 것은 오직 자본의 냉혹한 무관심과 시스템의 비정한 계산뿐이었거늘, 이제 그의 스마트폰 액정 위에는 차가운 숫자의 형태로 변환된 희망이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2만 3천 원.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화폐 단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항암치료의 독한 화학물질이 세포 단위로 파괴해버린 아내의 육신, 앙상하게 말라붙어 마치 해부학 실습용 표본처럼 변해버린 그녀의 몸에 한 줌의 온기를 더해줄 설렁탕의 디지털적 현신(epiphany)이었고, 매연과 절망으로 타는 듯한 그의 목구멍을 적실 희석된 알코올, 즉 소주 한 병의 구체적 약속이었으며, 영양실조 직전의 세 살배기 아이의 굶주린 구강 속으로 들어갈 편의점 죽 한 그릇의 가능성이었다.
제 2장: 병든 아내, 균열된 세계의 카산드라
아내. 그 두 음절의 단어는 그의 의식의 심연을 무자비하게 할퀴는, 날카롭고 녹슨 기억의 파편이었다. 몇 달 전부터, 그녀의 폐부는 마른기침이라는 불길한 드러밍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생명의 에너지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무질서하게 흩어지며 내는 소리였고, 죽음이라는 최종적 채권자가 존재의 문을 집요하게 두드리는 소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병원이라는 시스템에 한번 발을 들이면, 온갖 검사를 핑계로 돈만 빨아먹는다’는, 현대 의료 시스템의 합리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불신과 하층계급 특유의 냉소주의가 기묘하게 뒤섞인 자신만의 신조에 투철했다. 그는 병원을 자본주의가 가장 교묘한 형태로 인간을 착취하는 제도적 장치라 여겼고, 의사들의 진단은 객관적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언어 유희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그 결과, 그녀의 병명은 미지의 영역, 즉 'x'라는 미지수로 남겨졌고, 그녀의 육신은 마치 극단적인 금욕과 고행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순례자처럼, 뼈대만 남아 침상이라는 위태로운 제단 위에 위태롭게 뉘어 있었다.
열흘 전, 그가 길거리에서 사 온 상한 김밥이 그녀의 쇠약해진 위장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고통은 마침내 임계점을 돌파했다. 상한 음식물이 그녀의 장기 속에서 부패하며 일으킨 화학반응은 그녀의 온몸을 뒤트는 경련과 구토, 그리고 지독한 설사를 유발했다. 아내의 공허하게 풀린, 초점 없는 눈은 그 자체로 존재론적 고통의 절규였으나, 그는 그것을 나약한 정신력과 의지박약의 탓으로 치부했다. 그는 고통에 대한 주관적 감수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강인함(혹은 무뎌짐)을 기준으로 그녀의 신음을 평가절하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가장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언어, 즉 폭력으로 그녀의 고통에 응답했다. 그의 거칠고 두꺼운 손바닥이 그녀의 핼쑥한 뺨에 가해진 순간, 그들의 세계에는 돌이킬 수 없는 형이상학적 균열이 발생했다. 그 균열의 틈새로 스며든 것은 그녀의 소리 없는 눈물과,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발화되지 못한 채 썩어가던 죄책감의 독성 포자였다.
“오늘만… 나가지 마. 나 너무 무서워….”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그 지옥 같은 공간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그녀가 뱉어낸 말은 단순한 애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델포이의 신탁처럼 불길하고 모호한 예언이었으며, 트로이의 멸망을 예견했으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카산드라의 절규처럼, 결국 외면당할 운명의 진실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스마트폰이 악마의 계시처럼 울렸다. S스테이션까지 가는 긴급 퀵서비스 요청, 그리고 그 대가로 제시된 ‘15만 원’이라는, 거의 비현실적인 액수는 그녀의 예언을 무시하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달콤한 속삭임과도 같았다. 그 돈은 파우스트 박사에게 영혼을 팔라고 유혹했던 바로 그 계약서의 현대적 버전이었다. 병든 아내에 대한 불안과 연민, 그리고 희미하게 남은 윤리적 책임감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중력장 앞에서 맥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었다. 그는 스쿠터의 스로틀을 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남은 양심을 비틀어 짜내며 미래를 향해, 아니, 이미 예견된 파국을 향해 맹렬히 질주했다.
제 3장: 파우스트의 질주와 레테의 강
그의 낡고 헐거운 스쿠터는 운명의 방추처럼, 도시의 젖은 혈관 위를 맹렬히 회전했다. 빗물과 매연, 그리고 이름 모를 타인의 욕망이 뒤섞여 범벅이 된 그의 육체는 하나의 기계 부품이 되어, 도시라는 거대한 회로 위를 내달렸다. 그의 사지가 이토록 기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그의 정신은 아내의 유달리 크고 움푹 팬,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그 눈동자라는 블랙홀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다. 그 눈동자는 그의 태만과 비겁함을 고발하는 전지적 시점의 감시 카메라였고, 버림받은 존재의 원망과 저주가 서늘하게 새겨진 거울이었다. 그는 속도를 높임으로써, 그 거울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가속을 통해 발생하는 물리적 진동과 풍압이 그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의 목소리를 지워주기를 바랐다.
목적지에 도착해 스마트폰 앱의 인터페이스 위에서 송금 완료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그는 잠시나마 원시적인 승리감에 도취했다. 그러나 헬멧을 벗자마자, 식어버린 땀과 함께 밀려온 텅 빈 해방감은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와 정확히 반비례했다. 차가운 한기가 빗물에 젖은 옷을 뚫고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15만 원이라는 숫자가 안겨준 찰나의 환희는, 이제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지불한 대가—아내를 향한 존재론적 의무의 방기—의 끔찍한 무게감으로 서서히 전이되기 시작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며, 마치 유령처럼 정류장 근처를 배회했다. 또 다른 행운의 콜을 기다리는 행위는, 이제 합리적 기대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주술적 행위, 일종의 부두 의식과도 같았다. 명품 쇼핑백을 든 젊은 여성이 그에게 던진, 벌레를 보는 듯한 경멸의 눈초리는 잠시 그의 기세를 꺾었으나, 운명의 신, 혹은 악마는 그에게 마지막 선물이자 최후의 유혹을 던져주듯 새로운 콜을 울렸다. 폭우로 인해 택시라는 문명의 이기가 마비되자, 발을 동동 구르던, 커다란 캐리어를 끈 한 남자. 목적지는 공교롭게도 그의 집 근처였다. 3만 원의 흥정 끝에 그는 다시 스쿠터의 시동을 걸었다. 무거운 캐리어의 무게로 스쿠터의 뒷부분이 안정되자 그의 몸은 역설적으로 다시 가벼워졌으나, 이제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져, 납덩이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엑셀을 밟는 발은, 마치 단두대로 향하는 사형수의 발걸음처럼 질척거렸다. 그는 다가올 진실과의 대면을 단 1초라도 늦추기 위해, 자신의 불행이 확정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유예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때, 구원처럼, 혹은 최후의 유혹처럼 친구 치삼이 나타났다. 돼지부속을 구워 파는 허름한 실내포차의 훈훈한 공기, 단백질과 지방이 타며 내는 원초적인 냄새와 소주의 에틸알코올 향은 그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강, 레테(Lethe)의 물과도 같았다. 그는 며칠을 굶은 짐승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탐하고, 갈증에 시달리던 사막의 나그네처럼 소주를 들이켰다. 알코올 분자는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대뇌피질에 위치한 이성의 방어벽을 체계적으로 허물어뜨렸다. 그는 주머니 속의 돈다발을 꺼내 흔들며 자신의 비범한 행운을 과시했고, 오늘 겪었던 불쾌한 고객 경험들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각색하여 떠벌렸다. 그것은 자신의 비참함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자기기만(self-deception)이었다. 그렇게 광대처럼 웃고 떠들던 그는, 아무런 전조 없이, 돌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내, 죽었어.” 그 한마디는 단순한 술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이, 억압되었던 불길한 예감이, 마침내 이성의 검열을 뚫고 화산처럼 터져 나온, 끔찍한 진실의 파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 진실을 게걸스럽게 삼켜버리고는, 가면을 바꿔 쓴 배우처럼 자세를 고쳤다. “죽기는 누가 죽어. 이 새끼야, 술 취했냐?” 그는 희극 배우처럼 과장되게 웃으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그의 아내가 살아있다는 믿음은, 이제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관찰되기 전까지는 생과 사의 확률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해야만 하는, 그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와, 살아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의 양자적 스펙트럼 위에서,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제 4장: 침묵의 방, 붕괴하는 세계
마침내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이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운명의 문 앞에 섰다. 반지하 셋방으로 이어지는, 곰팡이와 습기로 축축한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를 맞이한 것은 완전한 정적(靜寂)이었다. 그것은 평온함에서 오는 고요가 아니라, 모든 소리가 증발해버린 진공의 침묵, 태풍의 눈과 같은 불길하고 불온한 고요함이었다. 아내의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도, 가쁘게 몰아쉬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갓난아이가 빈 젖을 빠는 ‘쪽, 쪽’ 소리만이 그 섬뜩한 침묵을 더욱 깊고 불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생명의 포만감을 알리는 흡족한 소리가 아니라, 생명이 이미 고갈된 근원을 향해 부질없이 매달리는 갈구, 공허를 향해 울리는 메아리였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허장성세의 고함을 지르며 녹슨 철문을 열었다. 곰팡이 냄새, 젖은 빨래의 시큼한 냄새, 갓난아이의 똥오줌이 뒤섞인 암모니아 냄새, 땀과 질병과 죽음이 뒤엉켜 발효된 부패의 냄새가 후각 신경을 폭력적으로 강타했다. “이 빌어먹을 년! 또 자빠져 자고 있어!” 그는 방 안에 누워있는 아내의 형체를 향해 비난을 퍼부으며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나 그의 발끝에 닿은 것은 온기가 남아있는 살의 감촉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운영체제(OS)가 영구히 삭제된 하드웨어, 나무등걸처럼 단단하고 차갑게 굳어버린 물질의 질감이었다.
그 순간, 그의 의식 속에 양자 중첩 상태로 존재하던 모든 가능성은 단 하나의 끔찍한 현실로 붕괴(collapse)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말을 해, 말을! 이년아, 말을 하라고!” 그의 절규는 눅눅한 방 안의 공기를 맴돌 뿐, 아무런 응답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아내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를 향하지 않고, 곰팡이가 검은 꽃처럼 피어난 천장의 어느 한 점, 아마도 이 지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가 소멸하는 특이점(singularity)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닭똥 같은, 뜨겁고 끈적이는 눈물이 그의 더러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이미 사후강직이 시작된 아내의 뻣뻣한 얼굴 위로 떨어져 얼룩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아내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얼굴에 비볐다. 그 행위는 사랑도, 애도도, 슬픔도 아닌, 자신의 우주가 붕괴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절망의 몸짓이었다. 젖을 빨던 아이가 어미의 품에서 떨어져, 낯선 소음과 움직임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새로운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처럼, 죽음의 침묵을 갈랐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유독, 운수가 좋더니만…….”
그의 넋두리는 흐느낌으로 변하고, 흐느낌은 마침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잿빛 도시의 반지하 방, 붕괴된 세계의 폐허 속에서 그의 울음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부패의 냄새와 뒤섞여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