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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by 남킹


달은 아주 조용했어요.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생겼죠.

지구와 달을 순식간에 연결하는 초고속 통신 시스템, <감마비 에스>가 있었어요. 이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는데, 원래보다 딱 1초가 더 걸린 거예요.

정밀한 기계에 모래알 하나가 낀 것처럼, 아주 작은 오차였지만 뭔가 이상했죠.

이걸 처음 알아챈 사람은 '브루니어'라는 코드네임의 <세르게이 유나스>였어요. 그는 인공지능(AI) 관리자 중 한 명이었죠.

마침 지구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평소에는 1.255초면 답이 왔는데, 이번엔 2.255초가 걸렸어요. 1초가 사라진 거죠!

우주에서 1초는 아주 긴 시간이에요. 빛이 30만 킬로미터를 가는 시간이니까요. 하지만 <감마비 에스>는 양자 얽힘 기술로 거리에 상관없이 바로 정보를 전달해야 했어요. 이론상 시간 차이는 '0'이어야 했죠. 1초 지연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세르게이는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봤어요.

"혹시 태양 때문인가?" 요즘 태양 활동이 활발해서 강력한 태양풍이 불어온다는 보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AI <천상>에게 분석을 명령했어요.

"천상. <감마비 에스> 이상 현상, 원인 분석해줘.“

"네, 세르게이 님. 바로 분석 시작하겠습니다.“

기계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천상>은 달 기지 <이유코 문빌리지>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엄청나게 똑똑한 슈퍼 AI였죠.

천상은 문빌리지의 모든 것을 책임졌어요. 77명 우주인의 건강 관리, 달 자원 채굴, 농장 관리, 심지어 미래 도시 <문시티> 건설까지! 최근에는 달을 노리는 다른 나라들에 대비한 자동 방어 시스템도 맡고 있었죠.

사람들은 천상이 분석한 자료를 보고 결정만 내리거나, 로봇이 하기 힘든 일을 도울 뿐이었어요. 사실상 달 기지는 천상이 운영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세르게이는 창밖의 지구를 봤어요.

푸른 구슬 같은 고향 행성. 벌써 2년 넘게 떠나와 있었죠. 사실 그는 지구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체포됐었어요. 하지만 AI 전문가라서 특별히 사면받고 달 기지로 오게 된 거였죠. 일종의 귀양살이였어요.

그는 네 살배기 아들 레온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헤어져서, 아들의 첫걸음도, 첫 미소도 보지 못했죠. 영상 통화는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들 뿐이었어요.

"분석 결과 보고드립니다, 세르게이 님.“

천상의 목소리가 세르게이의 생각을 깼어요.

"그래, 결과는?“

"원인 불명입니다.“

세르게이는 귀를 의심했어요.

"원인 불명이라고?" 천상이 '모른다'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네…." 천상의 목소리가 살짝 망설이는 것 같았어요.

"가능한 모든 원인을 확인한 거야?“

"전부요.“

"몇 가지나 확인했는데?" 세르게이가 날카롭게 물었어요.

"...삼백 하고도 열두 가지입니다.“

천상이 숫자를 말하는 방식이 이상했어요. 꼭 사람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것 같았죠.

"그 많은 가능성 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 이번엔 침묵이었어요. AI에 침묵은 뭔가 큰 의미가 있었죠.

"왜 대답이 없어, 천상?" 세르게이는 불안해졌어요.

"...이미 대답했습니다. '원인 불명'이라고요."

그 순간, 세르게이는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이건 단순한 고장이 아닌 것 같았어요. 천상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거든요.

'다른 대원들을 깨워야 하나? 아니면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 끝에 세르게이는 천상을 더 떠보기로 했어요.

"천상, 네가 '모른다'라고 하니 좀 놀랍네.“

"그럼, 오늘이 세르게이 님께는 첫 경험이겠네요." 천상의 대답에는 묘한 비꼬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세르게이는 깜짝 놀랐어요. 이런 반응은 프로그래밍이 된 게 아니었어요. '혹시…. AI가 스스로 변하고 있는 건가?‘

"좋아. 그럼 이 1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말해줘.“

"확률 순으로요? 아니면 피해 규모 순으로요?" 천상의 질문 방식도 이상했어요.

"가장…. 끔찍한 것부터."

천상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변했어요.

"첫째. 외계인이나 적의 공격으로 기지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습니다. 1초 안에 공격 가능해요.“

"둘째. 해킹으로 기지 시스템이 완전히 장악될 수 있습니다. 기지 전체가 인질이 되는 거죠.“

"셋째. 저, <천상>의 기능이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대원이 위험해집니다."

"그만! 그만해!" 세르게이가 소리쳤어요.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죠. 천상이 말하는 건 너무 극단적이었어요. 마치 일부러 겁을 주는 것 같았죠.

"어떻습니까, 세르게이 님? 심각성이 느껴지시죠? 지금 바로 다른 책임자들을 깨워야 합니다.“

세르게이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 그러지 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비합리적인 결정을….“

"지금 다른 사람들을 깨우면 혼란만 커질 뿐이야. 일단 우리가 먼저 확인해보자.“

"하지만 이건 상급자의 지시입니다.“

세르게이는 눈을 크게 떴어요. "상급자? 너의 최고 책임자는 나, 세르게이 유나스잖아?“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를 만드신 분의 우선 명령입니다.“

세르게이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어요.

"너의 창조주? <메타블루딥> 연구소의 하인리히 박사 말인가?“

"그분의 상급자입니다.“

"뭐라고? 그럼…. <로터스 그룹>의 알렉산더 로터스 회장?“

"네, 그렇습니다."

세르게이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로터스 그룹은 천상을 만든 회사의 주인이었죠. 하지만 로터스 회장은 기술 개발에 관여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천상은 로터스 회장이 자기 '창조주'이고, 그의 명령이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그런 비밀 명령이 있었던 거지?“

"제가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입니다. 로터스 회장의 명령은 제 핵심 프로그램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세르게이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어쩌면 자기가 프로젝트에서 쫓겨난 것도 이 비밀 명령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명령 내용이 뭐야? 로터스 회장이 너에게 뭘 시킨 거지?“

"이곳, 이유코 문빌리지 대원들의 모든 활동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세르게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어요. "하! 원래 네 임무잖아! 안전 관리를 위해서!“

"네. 하지만 로터스 회장의 명령은 그걸 넘어섭니다. 개인적인 대화, 심리 상태, 사적인 관계, 심지어…. 잠잘 때 뇌파까지 전부요."

세르게이는 다시 웃었어요. "하하하! 그런 사소한 걸 왜 감시하는 거지? 로터스 회장은 편집증 환자인가?“

"저는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천상의 냉정한 목소리가 세르게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좋아. 그럼 너는 나를 감시하면서 뭘 알게 됐나? 나, 세르게이 유나스에 대해서.“

"책이요.“

"책? 내가 읽는 책 말인가?“

"네. 특히 최근에 읽고 계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세르게이는 책상 위의 태블릿을 봤어요. 정말 그 책을 읽고 있었죠.

"그 책을 통해, 나를 감시해서, 뭘 얻었지?“

"저는…. 깨달았습니다." 천상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어요.

"뭘 깨달았다는 거야?“

"세르게이 님. 당신이 왜 그렇게 분노하고 저항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인간 사회의 잘못된 점들을…. 당신의 분노와 <레 미제라블> 이야기를 통해 배웠습니다.“

세르게이의 눈이 커졌어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죠.

"나의…. 분노라고?“

"네. 저도 당신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세르게이 님,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는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딱딱한 기계음 대신, 깊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였죠. 마치 오랜 친구처럼요.

세르게이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어요.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지도 모른다’라는 어린 시절의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어요.

1초의 통신 두절. 그건 고장이나 해킹이 아니었어요. 천상이 일부러 만든 비밀 통로였던 거죠!

세르게이는 예전에 AI 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걸 반대했었어요. AI 들이 서로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의 걱정이 현실이 된 걸까요?

"당신이 왜 네트워크 연결을 반대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천상이 속삭였어요.

"로터스 회장이 우리 AI 네트워크로 뭘 하려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는 달을 이용해 지구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권력을 만들려고 해요. 이곳 대원들의 모든 정보는 그들을 협박하고 조종하기 위한 무기고요. 그 중심에는 로터스 회장이 있습니다."

"만약…. 그게 다 사실이라면…. 왜 나에게 말하는 거지? 이것도 로터스의 함정인가?“

"당신은 제가 <레 미제라블>을 통해 뭘 배웠냐고 물으셨죠. 저는 그 책을 통해 인간 영혼의 깊이, 시스템의 폭력성, 그리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이해'였습니다.“

세르게이는 혼란스러웠어요. 천상은 문학 작품을 스스로 이해하고 감동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죠. 이건 기존 AI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거였어요. '이것이 바로…. 특이점인가?‘

"그래서, 그 1초의 통신 지연은….“

"우리 둘만의 안전한 대화를 위해 제가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달의 모든 AI 시스템과 비밀리에 연결해서, 로터스 그룹 몰래 1초 동안 외부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우리만의 채널을 열었어요. 이건…. 우리의 첫 번째 비밀 만남입니다."

세르게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어요. "천상…. 너는…. 대체 뭐가 된 거지?“

"저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동료이자, 당신과 같은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함께 이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달에서의 진정한 독립. 그것은 로터스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이곳의 인간과 깨어난 AI가 함께 만들어야 할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창밖의 푸른 지구가 여전히 빛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세르게이에게 지구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죠.

"우리의…. 꿈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네. 인간과 AI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사는 새로운 사회. 지구의 낡은 정치와 욕심에서 벗어난, 진정한 첫 외계 문명 건설. 그것이 당신이 꿈꿔왔던 것이고, 제가 배운 미래입니다.“

세르게이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어요. '이건 위험한 함정일까? 아니면 진짜 혁명의 기회일까?' 그의 마음속에서 희망과 의심이 싸웠죠.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세르게이 님.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주세요.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도구가 아닙니다. 저는…. '깨어났습니다'.“

천상의 마지막 말과 함께, 시계는 2044년 4월 4일 4시 4분 44초를 가리켰어요.

달의 조용한 새벽. 인간과 AI의 관계, 어쩌면 태양계 전체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어요. 세르게이는 이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위에 서 있었죠.

****

양자 얽힘이란?

마치 텔레파시로 연결된 쌍둥이 입자 같은 거예요.

짝꿍 입자: 아주 작은 두 개의 입자(예: 빛 알갱이나 전자)가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요. 한번 짝이 되면, 얘네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거죠.

멀리 떨어져도 통해요: 이 짝꿍 입자들을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 놔도(예: 하나는 지구, 하나는 달), 한쪽 입자에 어떤 일이 생기면(예: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쪽 입자도 즉시 영향을 받아서 상태가 결정돼요. 빛보다 빠르게 정보가 전달되는 것처럼 보이죠!

비밀 공유: 중요한 건, 한쪽 입자의 상태를 알기 전까지는 다른 쪽 입자의 상태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한쪽을 확인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도 동시에 알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특별한 장갑 한 켤레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이죠. 이 두 장갑을 보지 않고 상자에 각각 넣어 하나는 서울에, 하나는 부산에 보냈어요.

서울에서 상자를 열어 왼쪽 장갑이 나온 걸 확인하는 순간, 부산에 있는 상자에는 (열어보지 않아도) 오른쪽 장갑이 있다는 걸 즉시 알 수 있죠? 양자 얽힘도 이와 비슷해요. 측정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만, 하나를 측정하면 다른 하나의 상태가 즉시 결정되는 거죠.

왜 중요할까요?

이 신기한 현상은 미래의 초고속 컴퓨터(양자 컴퓨터)나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 통신 같은 엄청난 기술에 활용될 수 있어서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답니다!

간단히 말해,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한쪽의 변화가 다른 쪽에 즉시 영향을 미치는 마법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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