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블라드 체페슈 3

by 남킹

아마겟돈


어느 날, 나는 나의 궁전의 모든 전파를 차단했다. 이제 외부와의 어떤 통신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수많은 영화를 TV로 하나씩 하나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영화의 내용은 간단했다. 기자가 화면에 나와 마치 긴급 속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긴박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뭔가에 쫓기듯이 카메라를 흔들며 뛰어다녔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지구의 종말. 아마겟돈이었다. 저 멀리서 번쩍이는 섬광과 굉음이 쏟아지고 사람들의 비명도 적절하게 집어넣었다. 차들은 뒤엉켜 불타오르고 건물은 멀쩡한 게 하나도 없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부서졌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는 통곡하고, 슈퍼마켓은 약탈자로 가득하고, 곳곳에서는 대포 소리 기관총 소리가 난무했다.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홀에 몰려들어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때쯤 나는 회심의 자막을 TV 화면에 흘려보냈다. <미국 주요 도시 피폭…. 원자폭탄으로 추정…. 미국과 유럽 연합 즉각 중국과 러시아에 선전포고…. 모든 통신 불능….>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황급히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모든 연락은 단절된 상태. 이제 그들의 눈과 귀는 오직 이 TV에만 의존할 뿐이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나는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켰다.


“친애하는 블라드 체페슈 성 입주민 여러분…. 저는 이 성의 성주입니다. 여러분이 방금 뉴스로 보시다시피, 세상은 팬데믹 이후 강대국 간의 반목과 불화로 인해 대재앙 수준의 전쟁에 직면했습니다. 세상은 파괴되고 종말로 향하고 있습니다. 모든 통신은 단절되었습니다. 그나마 TV 케이블 선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곳은 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합니다. 핵전쟁에 대비한 지하 벙커 시설과 방독 시설, 약품과 식품저장 시설이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안전한 이곳에서 평화가 올 때까지 편안히 계시며 일상생활을 즐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단상을 내려왔다. 몇몇 사람은 내게 다가와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였다. 나는 다정한 미소로 그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나는 내 속을 가득 채운,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카지노의 기본 판돈을 대폭 올렸다. 그리고 모든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바꾸었다. 그리고 턱없이 비싼 값을 매겼다. 특히, 생고기의 값을 어마어마하게 올렸다. 인육에 중독된 입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주관하는 신이다. 내가 내 세우는 논리는 단 하나였다. 이거면 그들의 불만 섞인 입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비축한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아껴야 한다. 만약 우리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나가도 된다. 다만 한번 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입주민들의 원성은 당연하게도 쑥 줄어들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세상에는 불평불만 자들이나 뭐든지 삐딱하게 반응하는 놈, 선동을 부추기는 자들이 존재하는 법. 그들은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채, 피 같은 자기 돈이 턱없이 비싼 사용료로 빠져나가는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노골적으로 항의를 하면서 동조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예측하고 해결책을 진두지휘하는 능력자가 아니던가!


어느 날 나는 불만 세력 중 가장 목소리가 큰 녀석을 내 방에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알베르입니다.” 그는 약간 거만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성 외부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가요?”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사실 입주민 중에 의심하는 자들이 꽤 많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바람을 드러냈다.

“물론 그러시겠죠. 사람은 자신이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의심하는 버릇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일주일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셔서 직접 보고 체험한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마치 자애로운 아비가 된 것처럼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더한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성주님.” 그는 마치 은혜를 받은 성도처럼 기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외부로 향하는 모든 문은 납으로 완전히 봉쇄되었고, 또 나가는 모습을 다른 분들이 보게 되면 동요가 심해질 수 있으므로, 은밀하게 외부로 통하는 지하통로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집사의 안내를 받기를 바랍니다.” 나는 간단하게 외부에서 주의해야 할 수칙을 알려주고 필요한 장비 및 촬영 도구가 든, 작은 배낭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꼭 날짜 안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집사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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