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3년, 공화국력 2년. 혁명의 열병이 그 정점에 도달하여, 마치 거대한 용광로처럼 파리의 모든 것을 삼키고 제련하던 시절이었다. 이성은 스스로를 신의 제단 위에 올려놓았고, 자유라는 여신은 제 자식들의 피를 탐하는 몰록(Moloch)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꿈꾸었던 사회 계약의 순결한 이상은, 이제 기요틴(Guillotine)의 칼날 위에서 차갑고 냉혹한 기하학적 연쇄반응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덕(德)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공포정치(Reign of Terror)의 시대. 그 숭고한 명분 아래, 파리는 거대한 도살장이자 야외 장례식장이 되었다. 낮에는 혁명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군중의 함성과 단두대가 내리치는 둔탁한 금속음이 도시의 맥박처럼 울렸고, 밤이 되면 그 피의 축제에서 밀려난 시체들이 수레에 실려 이름 없는 구덩이로 향하는 바퀴 소리가 고요를 잠식했다.
그해 가을, 계절의 변화조차 혁명의 광기 앞에서는 그 본연의 색채를 잃어버린 듯했다. 하늘은 데카르트적 회의주의에 빠진 신의 잿빛 얼굴처럼 늘 흐려 있었고, 센 강(Seine River)은 수천의 익사한 넋들을 끌어안은 채 망각의 강 레테(Lethe)를 향해 흐르는 듯 무겁고 탁했다. 도시의 공기는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피와 럼주의 비린내, 며칠씩 씻지 못한 육체들의 시큼한 냄새, 젖은 흙과 배설물의 악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짓누르는 죽음의 달콤하고 역겨운 향취가 한데 엉겨 붙어, 마치 파리라는 거대한 시체가 부패하며 내뿜는 마지막 숨결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는 더 이상 볼테르(Voltaire)가 찬미했던 계몽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이웃을 '반혁명분자'로 고발할 기회를 엿보는 교활한 열광, 혹은 내일 아침 자신의 이름이 공안위원회(Committee of Public Safety)의 명단에 오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동물적인 공포만이 안개처럼 서려 있었다.
이 거대한 혼돈과 죽음의 파노라마 속을, 한 젊은 사제가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앙투안(Antoine). 스물일곱 해의 생애가 그의 얼굴에 남긴 것이라고는, 신의 침묵에 대한 뿌리 깊은 질문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끝 모를 연민뿐이었다. 반질반질 닳아빠진 검은 수단(soutane)은 그의 야윈 몸을 위태롭게 감싸고 있었는데, 그 옷은 이제 사제라는 신성한 직책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구시대의 저주받은 유물처럼 보였다. 이 새로운 공화국에서 사제란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었으며, '이성 숭배교(Cult of Reason)'의 사제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하여 벌이는 광란의 축제 속에서 그의 존재는 시대착오적인 불협화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앙투안은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이 그의 기도를 외면하고, 교회가 그의 신앙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 절망의 도시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제의 소명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은 산 자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죽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였다. 그는 매일같이 시체 수레를 따라 공동묘지로 향했다. 귀족의 문장이 새겨진 비단 조각을 걸친 시신이든, 상퀼로트(sans-culottes)의 누더기를 입은 시신이든, 그는 차별하지 않았다. 혁명 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인민의 적'이든,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맞아 죽은 무고한 시민이든, 굶주림에 지쳐 숨을 거둔 어린아이든, 그의 눈에는 모두 신의 모상(imago Dei)을 지녔으나 이제는 그 형상을 잃어버린 가련한 피조물일 뿐이었다.
그는 흙먼지와 피딱지가 뒤엉킨 시신들의 얼굴을 젖은 천으로 닦아주었고, 뒤틀린 팔다리를 가지런히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누구도 듣지 않는, 어쩌면 허공 속으로 흩어질 뿐인 나지막한 기도를 바쳤다. 그것은 장엄한 라틴어 기도문이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의 영혼이 겪었을 마지막 공포와 고통을 위로하고, 이제는 모든 이념과 증오의 사슬에서 벗어나 평안을 찾기를 바라는 서툰 속삭임에 가까웠다.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서로를 좀먹는 두 개의 거대한 감정의 맷돌 사이에서 그의 영혼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듯했으나, 그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남은 신앙의 형태이자, 광기에 맞서는 유일한 저항 방식이었다.
그날도 앙투안은 으레 그랬듯, 시체들로 가득 찬 수레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축축한 솜이불처럼 덮어버리는 오후였다. 수레바퀴는 진창에 빠져 앓는 소리를 냈고, 시체를 운반하는 인부들의 무감각한 얼굴 위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수레 위에는 열 구 남짓한 시신들이 마치 도살된 짐승들처럼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었다.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었을 어린 소녀의 창백한 얼굴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렸고, 혁명을 부르짖다 오히려 혁명의 제물이 된 어느 변호사의 굳게 쥔 주먹 위로는 그의 연설문이었을 법한 종잇조각이 비에 젖어 들러붙어 있었다. 한때는 화려한 무도회에서 섬세한 왈츠를 추었을 귀부인의 가녀린 발목은 거친 마대 자루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그 옆에는 평생 땅을 일구었을 농부의 투박하고 갈라진 발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죽음은 이렇듯 모든 신분과 이념, 삶의 궤적들을 무참히 뒤섞어 하나의 평등하고 끔찍한 정물(靜物)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앙투안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저 육체들이 담고 있었을 각자의 우주를 상상했다. 저마다의 사랑과 증오, 환희와 절망, 사소한 기쁨과 은밀한 죄악들. 이제는 모두 한낱 부패해가는 단백질 덩어리로 환원되어 버린 저 이야기들을. 그는 문득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가 말한 '신의 도성(City of God)'과 '인간의 도성(City of Man)'을 떠올렸다. 지금 이 파리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오직 죽음만이 왕으로 군림하는 '망자(亡者)의 도성'에 다름 아니었다.
수레가 '지옥의 문(Barrière d'Enfer)'이라 불리는 옛 세관에 다다랐을 때, 빗줄기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이곳은 이제 파리 시내에서 넘쳐나는 시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옛 채석장 터에 조성한 지하 묘지, 즉 카타콤(Catacombs)의 입구였다. 인부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서둘러 시신들을 끌어내려 지하로 통하는 입구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육중한 시신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마치 지옥의 아가리가 산 제물을 삼키는 듯했다. 앙투안은 그들을 위해 성호를 그으려다 멈칫했다. 이성 숭배의 시대에 그의 행위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여 묵묵히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모든 시신이 지하로 옮겨지고 인부들이 떠난 뒤, 앙투안은 홀로 남았다. 비에 흠뻑 젖은 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졌고, 며칠간의 수면 부족과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와 현기증이 일었다.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카타콤 입구 옆에 버려진 듯한 작은 경당(經堂)으로 들어섰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제단과 거미줄이 내려앉은 성상(聖像)들이 이곳 역시 신에게 버림받은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차가운 석조 바닥에 지친 몸을 웅크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졌고, 그 빗소리는 마치 수백만 원혼들의 끝없는 흐느낌처럼 들렸다.
차가운 돌바닥의 냉기가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앙투안의 의식은 춥고 배고픈 현실과 피로에 잠식된 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육체는 납처럼 무거웠고, 정신은 희미한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감각이 기이하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점차 잦아들었고, 그 대신 땅 밑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미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그러나 제각기 다른 언어로 중얼거리는 듯한, 혼란스럽고도 애처로운 소리의 집합체였다.
경당 안의 어둠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더 이상 빛의 부재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농축된 슬픔과 응어리진 한(恨)으로 이루어진 실체처럼 느껴졌다. 벽의 얼룩과 그림자들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희미한 안개 같은 것들이 바닥에서부터 피어오르더니, 이내 반투명한 인간의 형상으로 뭉쳐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의 형상들이 경당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방금 지하 묘지로 던져진 시신들의 넋이 아니었다. 그들의 옷차림과 모습은 훨씬 더 오래되고 다양한 시대의 것이었다. 화려한 궁정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의 형상, 피 묻은 혁명가의 옷을 입은 여인의 형상, 수녀복 차림의 형상, 평범한 시민의 옷을 입은 형상까지. 그들은 모두 여인이었다.
앙투안은 숨을 죽였다. 그의 몸은 공포로 얼어붙었지만, 그의 영혼은 기이한 호기심과 연민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꿈인가, 환각인가, 아니면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한 실체인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형상들이 뿜어내는 사무치는 슬픔과 원망의 기운이 그의 심장을 얼음장 같은 손으로 움켜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형상들은 살아있는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특정 순간의 고통 속에 박제된 조각상들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그 어떤 절규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한 여인의 목에는 기요틴의 칼날이 남긴 붉은 선이 선명했고, 다른 여인의 가슴에는 총탄 자국이 검게 패어 있었다. 물에 퉁퉁 불어 창백해진 얼굴을 한 여인도 있었고, 굶주림으로 광대뼈만 앙상하게 남은 여인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텅 비어 있었지만, 그 공허함 속에는 채 풀지 못한 질문과 대답 없는 절망이 우물처럼 고여 있었다.
시간의 감각이 사라졌다. 앙투안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는 이 기이하고도 신성한 침묵의 회합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그는 이 망자들의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가련한 순례자였다.
이윽고, 그들 중 한 형상이 아주 천천히, 마치 수백 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한때는 벨벳처럼 부드러웠을, 그러나 이제는 핏기와 생명을 모두 잃고 대리석처럼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열렸다. 그리고 소리 없는 소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린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가 경당의 침묵을 깨고 앙투안의 의식 속으로 직접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