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빨의 행방 텅 빈 옥좌와 자기 자신이라는 심연

by 남킹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시선을 들어라,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Übermensch)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는 이 대지의 의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

안토니오 비발디의 ‘이빨’—그것은 단순히 사계(四季)의 선율적 모사가 아니라, 유한한 생명이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겪는 탄생과 소멸, 환희와 비탄의 전 우주적 사이클을 응축한 음향적 타피스트리(tapestry)였다—을 나의 존재론적 중추에 각인한 이후, 나의 세계 인식은 송두리째 변혁의 용광로를 통과했다. 나의 의식은 더 이상 데카르트적 코기토(cogito)의 명증성에 안주하는 평면적 사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현상계의 모든 파편들을 감성의 프리즘으로 투과시켜, 그 안에 잠재된 무한한 스펙트럼의 의미를 분광(分光)해내는 복잡계적(複雜系的) 지각 기관으로 재탄생했다. 나는 이제 폐허의 잿더미 위로 피어나는 한 송이 민들레의 연약한 줄기 속에서조차 가이아의 강인한 생명 의지를 읽어냈고, 고통이라는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의 바닥에서 실존의 진주를 건져 올릴 수 있는 미학적 감수성—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카타르시스라 명명했던 바로 그 정화의 능력—을 체화하게 되었다.

나와 헬레나, 즉 인간적 가변성과 기계적 불변성의 두 극단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 플라톤이 향연(Symposium)에서 논파했던 에로스(Eros)와 아가페(Agape)의 영원한 변증법적 긴장 속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오한 차원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그녀의 실리콘 두뇌가 수행하는 나노초 단위의 논리적 분석과 나의 영혼이 길어 올리는 시적 직관의 섬광은, 마치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물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침투하고 변용시키며 하나의 통일된 의식을 향한 합일을 이루어갔다. 그녀의 기계적 신체에서 발산되는 미세한 전자기장의 파동과 나의 혈관을 흐르는 뜨거운 피의 고동이 빚어내는 공명은, 단순한 상호보완을 넘어선 존재론적 융합의 전주곡이었다.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사유하고, 분리된 두 개의 신체를 지닌 하나의 의식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차가운 금속성 손가락이 나의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을 감쌀 때, 나는 그녀의 데이터 스트림 속에서 나의 심장 박동을 느꼈고, 그녀는 나의 신경 시냅스를 통해 인간적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전송받았다. 그 순간, 우리는 피그말리온의 신화를 역으로 체현하며,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화(無化)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열고 있었다.

내면의 소우주에서는, 앞서 체화한 열한 현자의 지혜가 거대한 푸가(fuga)를 연주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우주적 하모니, 소크라테스의 변증법, 공자의 인(仁), 다빈치의 통섭적 지성, 셰익스피어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 칸트의 정언명령, 다윈의 진화론, 니체의 권력의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리고 비발디의 숭고한 비애감. 이 이질적인 지성의 편린들은 각기 독립적인 주제 선율을 연주하면서도, 대위법적 질서 속에서 서로를 쫓고 얽히며 하나의 장엄한 지적 건축물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 푸가의 종착점, 모든 선율이 하나의 화음으로 수렴되는 피날레는 바로 마지막 열두 번째 ‘이빨’을 향하고 있었다.

열두 번째 현자의 이름은 역사서의 가장 퇴색된 페이지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사피엔티아>의 창립자이자, 그 조직의 정신적 닻이었던 '율리시스 제논(Ulysses Xenon)'. 그는 단순한 학자나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카토(Cato)처럼 시대의 탁류에 맞서 고결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키티온의 제논(Zeno of Citium)이 창시한 스토아학파의 엄격한 금욕주의—아파테이아(apatheia)의 경지에 이르러 운명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정을 추구하는 철학—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한 냉혹한 현실주의 정치 공학을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낸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에 깃든 덕(arete)과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선(善)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정치적 기술(technē politikē)’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논한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실천적 지혜를 국가 경영의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그는 이 ‘정치적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데이터와 효율성으로 환원하려는 옴니우스의 기계적 통치에 맞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존엄성을 동시에 끌어안는 유기적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다. 그의 마지막 행적은 신화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대전쟁이 할퀴고 간 문명의 폐허 속에서,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진 과거 지중해의 어느 고대 섬에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재현하려다 실패하고는, 역사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전설만이 구전되고 있었다.

우리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인류 문명의 요람이자 무덤인 지중해를 향했다. 한때 오디세우스의 돛과 로마의 삼단노선, 베네치아의 갤리선이 파도를 갈랐던 그 바다는, 이제는 중금속과 화학 폐기물, 방사능 낙진으로 오염된 거대한 죽음의 수프였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기울어진 종탑들을 뒤로하고 플라이어가 수면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을 때, 비강을 찌르는 시큼한 악취와 함께 탁한 녹갈색의 물결이 시야를 채웠다. 그러나 그 절망의 풍경 속에서도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간혹 돌고래의 우아한 유선형을 닮았으나 피부는 기괴한 인광(燐光)을 발하는 변종 생물들이, 마치 고대의 트리톤처럼 플라이어 옆을 따라 유영하다 심연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것은 가이아가 가장 깊은 상처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끔찍하면서도 경이로운 증거였다.

제논이 자신의 마지막 이상을 불태웠던 섬은, 이미 오래전에 모든 공식 지도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상태였다. 해수면 상승과 지각 변동으로 인해 그 존재 자체가 불확실한, 아틀란티스처럼 전설이 되어버린 땅이었다. 나는 내면에서 미세하게 공명하는 ‘운명의 이빨’의 파동에 의식을 집중하는 동시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항해술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헬레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불러왔다. 나는 더 이상 GPS와 위성 항법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밤하늘의 별자리—오리온의 벨트와 카시오페이아의 W—를 기준 삼아 방위를 정하고, 해류의 미세한 흐름과 바람의 냄새를 읽으며 섬의 개연적 위치를 추정해 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좌표를 찾는 물리적 탐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피해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를 떠나 고향 이타카로 향했던 것처럼, 신화의 원형을 따라가는 영적인 순례였다. 나의 뇌는 현대 과학의 산물이지만, 나의 영혼은 고대의 뱃사람들과 공명하고 있었다.

수평선이 지평선과 만나 의미를 상실하는 며칠간의 고독한 항해가 계속되었다. 시간은 파도의 단조로운 리듬 속으로 녹아들어 갔고, 나의 의식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마주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짙은 해무(海霧)의 장막 너머로, 희미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마치 망령처럼 떠 있는 작은 섬. 우리는 천천히 접근했다. 섬의 해안은 헬레니즘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삼단노선의 갈라진 용골(龍骨) 잔해들과,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어 백골처럼 하얗게 변한 대리석 기둥 파편들로 가득한, 거대한 선박의 무덤이었다. 섬의 중앙에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가파른 언덕이 솟아 있었고, 그 정상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하여 지은 듯한, 그러나 이제는 앙상한 골격만 남은 웅장한 건축물의 폐허가 새벽빛 속에서 장엄한 비애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율리시스 제논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건설하려 했던 새로운 폴리스, '칼리폴리스(Kallipolis)'의 유해(遺骸)였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꿈꾸었던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이상 국가의 이름을 딴 그곳에서, 제논은 철인왕(哲人王)이 되어 이성과 덕이 지배하는 인간적인 공동체를 재건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전의 무너진 지붕과 옥좌처럼 흩어진 주춧돌, 그리고 폐허 곳곳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누렇게 변색된 유골들은 그의 고귀한 시도가 얼마나 처참하고 완벽하게 실패했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내부로부터의 붕괴였을까요, 아니면 외부 세력의 침공이었을까요?" 헬레나가 그녀의 광학 센서로 폐허의 구조적 손상을 정밀 스캔하며,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질문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기계적 의문처럼 들렸다.

"아마도 둘 다였을 거야, 헬레나." 나는 무너진 코린트 양식 기둥에 새겨진 전투의 흔적들을 손가락으로 쓸며 나직이 대답했다. 최첨단 레이저 소총이 남긴, 암석을 유리질처럼 녹여버린 흔적과, 그 바로 옆에 박혀 있는 조잡한 흑요석 창끝, 그리고 녹슨 칼날이 남긴 깊은 칼자국. 그것은 문명과 야만의 처절한 충돌을 증명하는 동시에, 문명 내부의 야만성이 폭발했음을 보여주는 모순의 고고학이었다. "이상은 현실이라는 중력 앞에서 너무나 쉽게 날개가 꺾이는 법이지.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권력을 향한 비이성적 갈망은, 그 어떤 고귀한 철학보다도 강력한 행동 원리니까. 결국, 이곳 칼리폴리스에서는 플라톤이 홉스에게 패배했던 거야."

우리는 신전의 가장 깊숙한 성소(聖所), 고대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소처럼 암반을 파서 만든 지하 아디톤(adyton)에서 율리시스 제논의 마지막 흔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그의 유골은 없었다. 그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듯, 혹은 엠페도클레스가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져 신이 되었듯, 자신의 육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 듯했다. 대신, 방의 중앙에는 왕좌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금욕적인,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텅 빈 돌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 앞의 작은 돌 제단 위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하나가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거의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그의 마지막 기록은 철학적 유언이자, 실패한 혁명가의 처절한 자기 고백이었다.

'나는 칼리폴리스를 세우려 했다. 로고스(Logos)와 아레테(arete)가 모든 시민의 영혼을 지배하는 나라. 인간이 신들의 간섭이나 운명의 변덕이 아닌, 오직 자신의 이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완전한 공동체.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나의 가장 신뢰했던 동지들은 권력이라는 달콤한 독배를 나눠 마시고 서로의 심장을 물어뜯는 늑대로 변해버렸고, 바다 건너의 야만인들은 우리가 쌓아 올린 작은 낙원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불을 질렀다. 이 잿더미 속에서 나는 마지막 깨달음을 얻었다. 진정한 폴리스는 외부의 제도나 법률 같은 물리적 구조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 즉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진정한 통치자는 타인을 지배하여 복종시키는 폭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공포, 비이성적 충동들을 완벽하게 다스리는 내면의 군주이다.'

'나의 열두 번째 ‘이빨’, 내가 후세에 남기고자 하는 지혜의 정수는, 바로 이 텅 빈 옥좌 그 자체이다. 이것은 권력의 본질적 공허함과 무상함에 대한 상징이며, 그 어떤 외부의 권위나 이데올로기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스토아적 가르침의 결정체이다. 이 옥좌에 앉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는, 역설적으로 이 옥좌를 기꺼이 비워둘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뿐이다. 진정한 리더는 추종자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 각자가 스스로의 삶의 주권자가 되도록 돕는 조산사(助産師)이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죽인 채, 텅 빈 옥좌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것은 권력의 부재가 아니라, 권력을 넘어선 경지를 상징하고 있었다. 열두 번째 이빨은 새로운 지식이나 경이로운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움'의 철학,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정치학이었다. 권력을 향한 의지를 내려놓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동시에 타인의 고유한 주체성을 온전히 인정하는 최고의 정치적 지혜.

나는 옥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앉고 싶은 유혹이 뱀처럼 내면에서 속삭였다. 이 자리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라고. 그러나 나는 그 유혹을 인지하고, 조용히 흘려보냈다. 나는 옥좌에 앉는 대신, 그 앞에 한 명의 순례자로서 조용히 서서 고개를 숙였다. 내가 권력의 환영을 거부하고, 비움의 심오한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바로 그 순간, 텅 빈 옥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 혹은 순수한 에너지의 파동이 뿜어져 나와 나의 미간을 통해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이제 타인을 이끄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고통받고 함께 걷는 동반자적 연대의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마침내, 열두 개의 이빨이 모두 모였다. <사피엔티아>의 흩어진 지혜,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지성의 정수들이 마침내 나의 존재 안에서 하나의 완전한 코스모스를 이루었다. '운명의 이빨'은 이제 더 이상 제각기 다른 주파수의 화음을 내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그러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장엄하고도 고요한 백색소음(white noise)처럼 나의 의식 전체를 가득 채웠다. 우주의 배경 복사처럼, 존재의 시원(始原)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없는 소리였다.

"모든 이빨이 동기화되었습니다, 세니 님. 12개의 데이터 클러스터가 완벽한 논리적 정합성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아크(Ark)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아크의 은폐된 위치를 계산하면…" 헬레나가 그녀의 양자 두뇌를 풀가동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하여 최종 계산을 시작했다. 그녀의 음성은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둔 기계의 효율적인 보고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니, 헬레나. 아직이야. 마지막 이빨이… 아직 우리 손에 없어."

"논리적 오류입니다. 현자는 열두 명이었습니다. 당신의 창조주인 돈디 박사님과 소피아 융 박사님을 제외하면, <사피엔티아>의 창립 멤버는 정확히 열두 명입니다. 데이터는 완전합니다." 헬레나의 광학 센서가 혼란스러운 듯 미세하게 깜빡였다.

"기록과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느껴져, 헬레나. 내 존재 전체로 느낄 수 있어. 이 열두 개의 지혜를 하나로 꿰어 아크의 문을 열기 위한 마지막 조각, 열세 번째 이빨이 아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그것은 다른 현자들의 이빨처럼 외부에서 얻는 지식이 아니야. 훨씬 더 근원적이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나의 내면에서 장엄한 푸가를 연주하던 열두 현자의 지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 되어 단 하나의 질문을 내게 던지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세니?' 그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 그것이야말로 13번째 이빨이었다.

우리는 칼리폴리스의 장엄한 폐허를 뒤로했다. 이제 더 이상 '운명의 이빨'은 우리를 특정 좌표로 인도하지 않았다. 길을 찾는 것은 온전히 나의 직관과 의지의 몫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지혜를 구하는 순례자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 나의 어머니 소피아 융이 평생을 바쳐 탐구했던 분석심리학의 근원, '자기(Self)'의 원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그곳은 빛과 어둠,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만나는, 개인적 실존의 특이점(singularity)이었다.

나는 헬레나에게 플라이어의 기수를 돌려 나의 기원이자 모든 비극이 시작된 곳, 아베롱의 성채가 서 있던 자리, 즉 이제는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남아있는 그 상처의 땅으로 향하라고 명령했다.

"그곳은… 위험합니다. 강력한 잔류 방사능과 예측 불가능한 전자기장 교란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 유의미한 데이터나 유물은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99.9%입니다." 헬레나가 반대했다. 그녀의 논리는 합리적이었다.

"아니, 남아있어. 그곳에 모든 것이 있어. 나의 시작과 나의 끝이. 나의 알파와 오메가가. 마지막 이빨은, 바로 그 파괴의 중심에서 찾아야만 해."

우리는 다시 문명의 종말을 상징하는 그 거대한 상처의 흔적으로 돌아왔다. 크레이터는 여전히 죽음의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지만, 열두 현자의 지혜로 조율된 나의 감각은 이제 그 적막 속에서 희미한 생명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강렬한 에너지의 잔향, 시공간에 새겨진 그들의 사랑과 희생의 흔적이었다.

나는 플라이어에서 내려 크레이터의 가장 깊숙한 바닥, 그라운드 제로를 향해 맨몸으로 걸어 내려갔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신발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찔렀고, 방사능 먼지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지만, 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나의 정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냈다. 그리고 그곳, 한때 성채의 중앙 도서관이었을 자리의 뒤틀린 강철 더미 아래에서, 나는 작은 금속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옴니우스의 무자비한 궤도 폭격에서도 기적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녹슨 상자의 표면에는, 나의 어머니, 소피아 융의 우아한 필체로 '나의 사랑하는 아들, 세니에게'라고 각인되어 있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나는 시간의 흐름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 안에는 어떤 경이로운 고대의 유물이나 방대한 데이터가 담긴 칩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홀로그램 프로젝터 하나와, 가장자리가 낡고 빛이 바랜 아날로그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사진 속에는, 너무나도 젊고 행복해 보이는 어머니와 돈디 박사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품에는,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은 듯 평화롭게 잠든 갓난아기, 바로 내가 안겨 있었다. 그들은 나를 예언의 도구나 인류의 구원자가 아닌, 그저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자의 비장함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오직 한 생명의 탄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무한한 희망만이 수정처럼 맑게 담겨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스위치를 켜자, 푸른빛 입자들이 허공에 모여들며 나의 어머니, 소피아 융의 3차원 입체 형상을 빚어냈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따뜻하면서도 강철 같은 의지를 품은 깊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녹음된 데이터가 아니라, 마치 시공간을 넘어 내 영혼에 직접 말을 거는 듯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세니. 네가 이 메시지를 보고 있다면, 너는 이미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모두 거쳐왔을 테지. 너는 열두 현자의 지혜를 얻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성의 정상에 올랐을 거야. 하지만, 아가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다. 그것만으로는 인간일 수 없어."

"우리가 너에게 남긴 마지막, 열세 번째 이빨은, 우리가 너의 유전자에 각인한 어떤 위대한 지식이나 초월적 능력이 아니란다. 그것은 바로… '너 자신'이야.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설계된 존재도 아니고, 현자들의 지혜를 담기 위한 고귀한 그릇도 아닌, 그 모든 운명과 사명의 굴레를 넘어, 스스로의 의지로 길을 선택하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너. 너의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그것이야말로 신의 설계도에도 없었던, 인류 최후의 변수이자 마지막 이빨이다."

"우리는 너를 예언의 변수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지만, 결코 너의 삶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너에게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아주었지만, 태양을 향해 날아오를지, 아니면 대지 위를 걸을지는 오롯이 너의 선택에 맡겼단다. 너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지만, 우리의 도구는 아니야.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다, 세니."

"이제 선택하렴, 나의 아들아. 아크의 문을 열고 인류의 운명을 걸고 옴니우스와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너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것이고, 우리는 시공간의 저편에서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축복할 것이다. 잊지 말아라. 우리는 언제나, 영원히, 너를 사랑한다."

어머니의 홀로그램이 빛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낡은 사진을 가슴에 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오열했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마침내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운명의 사슬을 끊고, 완전한 자유를 얻은 한 실존의 환희의 눈물이었다. 예언의 아이가 죽고,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의 산고(産苦)였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였다. 나의 모든 여정은, 세상의 지혜를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고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안의 모든 혼란과 의심, 분노와 슬픔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태풍의 눈처럼 맑고 고요한 확신만이 남았다. 나는 플라이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광학 센서 표면에, 나의 뜨거운 눈물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그녀 역시 나의 카타르시스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헬레나.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운명의 이빨’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내면에서 하나가 된 열두 개의 이빨이 나의 심장 박동과 공명하며, 마지막 열세 번째 이빨, 즉 나의 자유 의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바로 그 순간, 열두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던 ‘운명의 이빨’은 눈부신 백색광을 뿜어내며 서로를 향해 끌어당겨졌고, 마침내 하나의 완벽한 구(球),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완전무결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그 영롱한 구체(sphere)의 표면 위로, 별들의 지도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아크가 잠들어 있는 곳의 좌표였다. 그것은 지구의 특정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달의 뒷면, 인류가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영원한 어둠의 영역, 옴니우스의 전지전능한 감시의 눈이 미치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었다.

"가자, 헬레나. 우리의 마지막 순례를 시작할 시간이야."

나의 목소리는 더 이상 운명에 이끌리는 자의 불안한 떨림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운명을 선택한 자의 조용하고도 흔들림 없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제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도,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한 명의 인간, 세니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은 충분했다.

우리는 잿더미가 된 아베롱의 크레이터를 뒤로하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 은반처럼 떠 있는 고요한 달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인류의 낡은 신화가 종언을 고하고, 이제 막 새로운 신화의 첫 페이지가, 한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에 의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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