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1년 9월 초, 라이프치히 근교
가을의 문턱에 선 작센의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확의 계절을 기다리는 평화로운 땅 위로, 강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두 개의 거대한 군대가 마치 서로를 향해 다가오는 두 개의 폭풍처럼,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서서히 그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늙은 여우’ 틸리가 이끄는 가톨릭 동맹과 제국의 연합군이 진군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산에서부터 루터까지, 10년 넘게 패배를 몰랐던 무적의 군대였다. 3만 6천 명에 달하는 그들의 병력은 스페인의 악명 높은 테르시오(Tercio) 방진을 본뜬, 거대하고 육중한 보병 방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천 개의 장창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그 주위를 머스킷 사수들이 둘러싼 테르시오는 당대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움직이는 요새였다. 그들의 행군은 느렸지만,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맷돌처럼,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듯한 위압감을 풍겼다.
틸리 백작은 자신의 군대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었다. 일흔두 살의 노장은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그의 얼굴은 가뭄 든 강바닥처럼 깊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몸은 수많은 전투의 상처로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맑고 날카로웠다. 그는 마그데부르크의 참극으로 인해 자신이 ‘도살자’로 불리는 것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신의 의지를 집행하는 채찍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눈에 비친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는 북방에서 온, 신앙심 깊은 척하는 오만한 풋내기일 뿐이었다.
“저 눈의 왕에게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 그는 자신의 부관인 파펜하임 백작에게 말했다. “그의 장난감 같은 경량 대포와 촐싹거리는 소부대는 우리의 테르시오 앞에서 아이들의 나무 칼처럼 부러질 것이다.”
그의 곁에 있던 고트프리트 하인리히 추 파펜하임 백작은 틸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불같은 성격에 저돌적인 용맹을 자랑하는 최고의 기병 지휘관이었다. 그의 몸에는 백 개가 넘는 흉터가 있었고, 그는 그것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스웨덴 군을 얕보며, 하루빨리 결전을 치러 저 건방진 북방인들의 목을 베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반면, 북쪽에서 다가오는 군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작센 연합군은 총 4만 2천 명으로, 수적으로는 틸리의 군대를 약간 상회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절반을 차지하는 작센 군대는 전투 경험이 부족하고 규율이 잡혀있지 않아, 구스타브는 그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진짜 힘은 2만 3천의 스웨덴 군, 즉 ‘푸른 여단’이라 불리는 그의 정예 부대에서 나왔다.
그들의 행군은 틸리의 군대처럼 육중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볍고, 빨랐다. 그들은 거대한 방진 대신, 유연하고 기동성 있는 선형(Linear) 대형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보병 부대는 6열의 얇은 횡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는 전열의 모든 병사들이 동시에 사격할 수 있게 하여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혁신적인 전술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보병 연대 사이에 소형 경량 야포인 ‘연대포’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보병이 움직이는 곳에 포병이 함께 움직이며 즉각적인 화력 지원을 퍼붓는, 시대를 수십 년 앞서간 개념이었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자신의 군대와 함께 행군하며, 직접 지형을 살피고 병사들을 격려했다. 그는 왕좌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군주가 아니라, 병사들과 같은 흙먼지를 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는 야전 사령관이었다. 그는 병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고,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들었다. 병사들은 그를 왕으로서 존경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처럼 따랐다.
“우리는 마그데부르크의 무고한 영혼들을 위해 싸운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에게 설교했다. “우리의 검은 복수의 검이며, 우리의 총알은 자유를 향한 기도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우리는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두 군대는 마침내 1631년 9월 17일, 라이프치히 북쪽의 브라이텐펠트(Breitenfeld)라는 작은 마을 근처의 광활한 평원에서 마주 섰다. 운명의 날이 밝았다.
1631년 9월 17일, 브라이텐펠트 들판
야쿠프는 그곳에 있었다.
함부르크의 상인 헨드릭은 이 거대한 전투를 천재일우의 사업 기회로 보았다. 그는 야쿠프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스웨덴 군 진영 근처에 임시 막사를 차리고, 병사들에게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간단한 생필품을 파는 종군 상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전투의 향방과 군대의 소모 현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보고하라는 비밀 지령도 함께였다. 헨드릭은 어느 쪽이 이기든, 승리한 군대에게 가장 먼저 군수물자를 납품할 준비를 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야쿠프는 역사의 가장 중요한 무대를 특등석에서 관람하는 기이한 처지가 되었다. 그는 작은 언덕 위에 자신의 짐마차를 세우고, 아기 루카스를 안전한 곳에 눕힌 뒤, 품에서 양피지와 잉크를 꺼냈다. 그의 심장은 북소리처럼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는 오늘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역사의 서기였다.
그의 눈앞에, 두 개의 거대한 문명이 충돌하고 있었다.
남쪽에는 틸리의 제국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보병을 중앙에, 기병을 양익에 배치했다. 그들의 보병대는 17개의 거대한 테르시오 방진으로 나뉘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들판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의 주력 포병대는 중앙의 작은 언덕 위에 배치되어 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압적이고, 단단하며, 예측 가능한 힘이었다.
북쪽의 스웨덴-작센 연합군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구스타브는 작센 군대를 자신의 좌익에 배치했지만, 크게 신뢰하지 않았기에 예비대로 남겨두었다. 그의 주력인 스웨덴 군은 중앙과 우익에 걸쳐, 훨씬 더 넓고 얕게 포진했다. 그의 보병대는 얇은 선형 대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연대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기병대 역시 보병대와 섞여 배치되어,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것은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와 같았다. 유연하고, 복잡하며, 예측 불가능한 힘이었다.
정오 무렵, 제국군 포병대의 굉음과 함께 전투의 서곡이 울려 퍼졌다. 틸리의 무거운 대포들이 불을 뿜으며 연합군 진영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구스타브의 포병대는 즉시 응수했다. 그의 가볍고 기동성 있는 야포들은 제국군 대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을 뿜어냈다. 야쿠프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제국군 포병대가 한 발을 쏠 때, 스웨덴 포병대는 세 발, 네 발을 쏘아댔다. 포격전에서부터, 구스타브의 혁신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끔찍한 포격전이 끝나자, 마침내 지상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성급한 파펜하임이었다. 그는 포격전으로 인해 전장에 피어오른 먼지와 연기를 틈타, 자신의 최정예 흑기병(Black Cuirassiers)을 이끌고 스웨덴 군의 우익을 향해 돌격했다. 그는 틸리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저 건방진 스웨덴 촌뜨기들을 단숨에 휩쓸어버리고, 전투를 조기에 끝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마치 검은 강철의 해일과도 같은 돌격이었다. 수천의 중기병이 말발굽 소리로 대지를 울리며, 스웨덴의 얇은 전열을 향해 돌진했다. 전통적인 군대였다면 그 압도적인 충격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구스타브가 준비해둔 새로운 전술이었다. 스웨덴 기병대는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재빨리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병대와 함께 배치되어 있던 머스킷 사수들이었다.
파펜하임의 기병대는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그대로 머스킷 사수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발사!”
수천 정의 머스킷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선두에서 돌격하던 흑기병들이 말과 함께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당황하여 말머리를 돌리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스웨덴 머스킷 사수들은 훈련받은 대로 신속하게 재장전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파펜하임의 자랑스러운 돌격은 순식간에 혼돈과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부대를 수습하여 다시 돌격을 감행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스웨덴 군은 마치 잘 짜인 기계처럼, 기병과 보병이 번갈아 가며 그의 공격을 흡수하고 반격했다. 파펜하임은 총 일곱 번에 걸쳐 돌격을 감행했지만, 일곱 번 모두 처참하게 격퇴당했다. 그의 흑기병은 만신창이가 되어 전장에서 물러났다. 제국군의 가장 날카로운 창이 부러진 것이다.
한편, 틸리는 파펜하임의 독단적인 돌격에 경악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스웨덴 군의 우익이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주력인 테르시오 보병 방진에게 총공세를 명령했다.
거대한 강철의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보병이 북소리에 맞춰, 스웨덴 군의 중앙을 향해 육중하게 전진했다. 그들의 목표는 구스타브의 중앙을 돌파하고, 연합군 전체를 양단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선이 무너졌다. 틸리의 보병대가 스웨덴 군이 아닌, 연합군 좌익의 작센 군대와 마주친 것이다. 전투 경험이 부족했던 작센 군대는 육박해오는 거대한 테르시오의 위압감 앞에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제국군의 첫 번째 일제사격이 터지자마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휘관인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자신도 가장 먼저 도망쳤다. 그는 자신의 개인 주류 창고 마차까지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연합군의 좌익 전체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틸리에게는 결정적인 승리의 기회였다. 연합군의 좌익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는 즉시 자신의 테르시오 부대 일부에게 방향을 틀어, 노출된 스웨덴 군의 좌익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동시에, 그는 작센 군이 버리고 간 대포들을 노획하여 스웨덴 군을 향해 불을 뿜게 했다.
야쿠프는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보며 절망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좌익은 사라졌고, 우익은 파펜하임의 공격으로 지쳐 있었다. 중앙은 이제 정면과 측면, 양쪽에서 제국군의 협공을 받게 될 위기였다. 전통적인 지휘관이었다면, 이 상황에서는 퇴각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구스타브 아돌프는 전통적인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은 기회를 포착한 사냥꾼처럼 번뜩였다. 그는 이 위기를, 자신의 혁신적인 전술을 증명할 무대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예비대로 남겨두었던 자신의 최정예 보병 부대, ‘녹색 여단’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내렸다.
“좌익 전열, 90도 회전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라!”
그것은 당시의 군사학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기동이었다. 수천 명의 보병이 전투 중에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직각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군대는 그것을 해냈다. 그들은 수년간의 훈련을 통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녹색 여단은 신속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북서쪽을 향한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틸리의 측면 공격을 막아냈다.
동시에, 구스타브는 자신의 우익을 이끌던 구스타브 호른 장군에게 더욱 대담한 명령을 내렸다.
“우익, 전진하여 적의 포병대를 탈취하라!”
틸리의 주력 부대가 스웨덴 군의 좌익으로 쏠린 탓에, 그의 중앙 포병대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호른 장군이 이끄는 스웨덴 기병대와 보병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파펜하임과의 전투에서 지쳐 있었지만, 왕의 명령에 다시 한번 힘을 냈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언덕을 향해 돌격했고, 짧은 백병전 끝에 제국군의 주력 포병대를 모두 노획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틸리는 자신의 대포가, 이제는 자신의 군대를 향해 불을 뿜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그의 자랑스러운 테르시오 방진은 스웨덴 군의 정면 공격과, 자신들의 대포에서 날아오는 측면 포격에 동시에 노출되었다. 육중한 방진은 기동성이 떨어져, 이 급변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움직이는 요새는 이제 움직이는 표적이 되어버렸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총공세를 명령했다.
“Framåt! (전진하라!)”
스웨덴 군 전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얇은 선형 대형은 테르시오 방진을 포위하듯 감싸며, 모든 방향에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스웨덴 보병대의 ‘살보(Salvo)’ 전술, 즉 전열 전체가 동시에 일제사격을 가하는 전술은 끔찍한 위력을 발휘했다. 테르시오의 빽빽한 대열은 총탄의 비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틸리의 베테랑 군대는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시체 더미 위에서 끝까지 버텼다. 틸리 자신도 세 군데나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질 무렵,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제국군은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완벽한 궤멸이었다.
제국군은 7천 명의 전사자와 6천 명의 포로를 냈고, 모든 대포와 군기를 빼앗겼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틸리 백작은 소수의 기병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목숨만 건져 할레로 퇴각했다. 10년간 이어진 그의 무패 신화가 브라이텐펠트의 들판에서 산산조각 났다.
야쿠프는 해가 진 뒤, 언덕에서 내려와 전투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들판은 시체와 부상자들의 신음으로 가득했다. 그는 푸른 제복을 입은 스웨덴 병사들이 부상당한 적군에게 물을 건네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또한, 버려진 제국군 배낭에서 빵을 훔치는 작센 군 병사들의 모습도 보았다. 승리와 패배, 인간성과 야만성이 기이하게 뒤섞인 풍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대기에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을 목격한 자의 차분한 경외감에 휩싸여 있었다.
‘1631년 9월 17일, 브라이텐펠트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은 단지 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었다. 낡은 시대의 전쟁 방식이, 새로운 시대의 전쟁 방식 앞에 무릎 꿇은 날이었다. 육중한 테르시오의 시대는 가고, 유연한 선형 전술과 화력의 시대가 왔다. 북방의 사자는 자신의 이빨과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온 세상에 증명했다. 이제 독일로 향하는 모든 길이 그의 앞에 열렸다. 황제의 독수리는 날개가 꺾였고, 제국의 심장부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마그데부르크의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불꽃이 독일을 구원할 빛이 될지, 아니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더 큰 화마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브라이텐펠트의 승리 소식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개신교 진영은 열광했고, 가톨릭 진영은 공포에 휩싸였다. 스웨덴에서 온 ‘눈의 왕’은 이제 ‘북방의 혜성’이 되어, 거침없이 남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황제의 본거지인 남부 독일, 그리고 바이에른이었다.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한 남자가 초조하게 이 모든 소식을 들으며, 자신이 내쫓았던 거대한 독수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페르디난트 2세에게는 이제 발렌슈타인이 다시 필요해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