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궁전 (The Winter Palace)

by 남킹


1631년 9월 18일, 브라이텐펠트 전투 다음 날

새벽이 밝아왔을 때, 브라이텐펠트의 들판은 거대한 도살장의 모습을 드러냈다. 밤사이 내린 차가운 이슬이 수천 구의 시신 위에 죽음의 베일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승리의 함성은 잦아들고, 이제 들판을 지배하는 것은 부상자들의 끊이지 않는 신음과, 시체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까마귀 떼의 음산한 울음소리뿐이었다.

야쿠프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짐마차 옆에서, 아기 루카스를 품에 안고 거대한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전투의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순수한 고통과 상실감이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군 병사들의 시신이, 이제는 신분도 이름도 잃어버린 채 진흙탕 속에서 뒤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찢겨진 갑옷 틈으로 보이는 젊은 얼굴들은, 야쿠프와 다를 바 없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었을 것이다.

아침이 되자, 스웨덴 군 진영은 놀라운 효율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스타브 아돌프의 군대는 승리에 도취해 약탈에 나서는 대신, 전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군목들은 부상당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 기도를 올려주었고, 군의관들은 임시 야전병원에서 쉴 새 없이 톱과 바늘을 놀렸다.

야쿠프의 주인인 헨드릭 판 오스터펠트는 이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야쿠프를 데리고 스웨덴 군의 병참 장교를 찾아갔다.

“보시오, 장군.” 헨드릭은 유창한 독일어로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수천 명의 포로가 생겼소.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큰일일 테지. 그리고 저기 버려진 수많은 무기와 갑옷들. 저것들을 수리하고 재분배하는 데에도 일손이 필요할 거요. 우리 상단은 함부르크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당신들의 승리를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 있소.”

병참 장교는 헨드릭의 제안을 흥미롭게 들었다. 스웨덴 군은 규율이 잡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전쟁터 한복판에서 보급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헨드릭의 상단은 그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즉석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다. 야쿠프는 이제 제국군 포로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노획한 무기의 목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 어제의 승리자들이었던 제국군 병사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패배의 충격과 함께, 깊은 혼란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늙은 하사관이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우리는 틸리 장군님과 함께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소. 우리의 테르시오는 무적이었는데…. 저 북방의 악마들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이오?”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단순한 운이나 용맹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거대한 전환점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며칠 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포로로 잡힌 제국군 병사들 중 부상이 경미한 자들을 모두 광장에 모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 앞에 직접 나섰다.

“그대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왕의 목소리는 위엄이 있었지만, 패자에 대한 조롱은 없었다. “그러나 그대들이 섬기던 대의는 패배했다. 그대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하나는 무장해제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와 함께 ‘독일의 자유’와 참된 신앙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나의 군대에 합류하는 자에게는 정당한 급료와 식량을 약속하며, 과거의 적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묻지 않겠다.”

그것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포로를 노예처럼 부리거나 몸값을 받고 풀어주던 시대였다. 그러나 구스타브는 패배한 적군을 자신의 군사력으로 흡수하는, 실용적이고 대담한 발상을 실행에 옮겼다. 굶주리고 지쳐있던 수천 명의 용병들은 주저 없이 스웨덴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구스타브의 군대는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전투가 끝난 후에도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야쿠프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며, 북방의 사자가 가진 힘이 단지 군사적 혁신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1631년 10월, 뷔르츠부르크

브라이텐펠트의 승리 소식은 독일 전역을 뒤흔든 지진과도 같았다. 그동안 눈치를 보며 ‘무장 중립’을 외치던 개신교 제후들이 앞다투어 구스타브 아돌프에게 사절을 보내 충성을 맹세했다. 헤센-카셀, 브라운슈바이크, 튀링겐의 공작들이 그의 동맹이 되었다. 독일은 이제 명백하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었다. 북방의 사자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연합과, 날개가 꺾인 채 남쪽으로 후퇴한 황제의 가톨릭 세력.

모두가 구스타브 아돌프가 곧장 남동쪽으로 진격하여, 무방비 상태인 황제의 수도 빈을 직접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가장 공격적인 장군인 요한 바네르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폐하! 지금이야말로 뱀의 머리를 칠 때입니다! 틸리의 군대는 궤멸되었고, 빈으로 가는 길은 텅 비어 있습니다. 단숨에 진격하여 페르디난트의 목을 조른다면, 이 전쟁을 단 몇 달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스타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막사에서, 가장 신임하는 조언자이자 제국 재상인 악셀 옥센셰르나와 함께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옥센셰르나는 왕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그는 신중하고, 냉철한 현실주의자였으며, 군사적 승리보다 정치적 안정과 외교적 기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악셀,” 구스타브가 입을 열었다. “바네르는 빈으로 가자고 하는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옥센셰르나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폐하, 그것은 영웅적인 도박이나, 현명한 전략은 아니옵니다. 우리의 군대는 승리했지만 지쳐있고, 보급선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빈의 성벽 앞에서 발이 묶이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고립된 채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등 뒤에는 아직 스페인의 위협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의 라인 강을 가리켰다.

“‘스페인의 길’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스페인의 군대와 자금은 이 길을 통해 네덜란드와 독일 북부로 계속해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빈을 공격하는 사이, 새로운 스페인 군대가 우리의 등 뒤를 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를 원하신다면, 뱀의 머리가 아니라 뱀의 심장으로 가는 혈관부터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쪽으로, 라인 강 유역으로 가야 합니다. 마인츠,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부유한 도시들을 장악하여 겨울을 날 군자금을 확보하고, ‘스페인의 길’을 차단하여 합스부르크의 돈줄과 숨통을 동시에 끊어버려야 합니다.”

구스타브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이미 같은 계산이 서 있었다.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는 독일 땅에 지속 가능한 개신교 세력의 연합체, 즉 ‘코르푸스 에반겔리코룸(Corpus Evangelicorum)’을 건설하려는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적 승리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네 말이 옳아, 악셀.” 왕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 작센 군대에게는 보헤미아를 공격하여 황제의 동쪽을 견제하게 하고, 우리는 라인 강으로 가서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빈의 늙은 곰은, 일단 겨울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지.”

그의 결정은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지만, 그것은 30년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눈앞의 화려한 승리 대신, 더 멀고 큰 그림을 보고 있었다.

스웨덴 군의 행렬은 방향을 틀어 남서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진군은 마치 개선 행진과도 같았다. 에르푸르트, 뷔르츠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독일 중부의 유서 깊은 도시들이 저항 없이 성문을 열고 ‘개신교의 해방자’를 맞이했다. 도시들은 스웨덴 군에게 막대한 양의 ‘몸값’을 지불했지만, 적어도 마그데부르크와 같은 운명은 피할 수 있었다.

야쿠프는 이 거대한 행렬의 일부가 되어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종군 상인으로서, 승리한 군대의 뒤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안락하고 이로운 일인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길은 안전했고, 식량은 풍족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맥주를 팔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그 돈으로 루카스에게 따뜻한 담요와 새 옷을 사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는 스웨덴 군대가 ‘해방’시킨 도시들에서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 새로운 점령군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함께 서려 있었다. 스웨덴 군은 제국군처럼 무자비하게 약탈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외국 군대였다. 그들의 주둔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해방’에는 비싼 대가가 따랐다.

뷔르츠부르크의 주교 궁인 마리엔베르크 요새를 점령했을 때, 구스타브는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엄청난 양의 포도주와 보물들을 모두 전리품으로 챙겼다. 그의 독실한 신앙은, 가톨릭 주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신의 이름 아래, 새로운 약탈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지 이전보다 더 세련되고, 질서정연한 방식일 뿐이었다. 야쿠프는 자신의 일지에 썼다.

‘해방자인가, 새로운 주인인가. 사자의 발톱은 독수리의 발톱만큼이나 날카롭다. 단지 그 발톱을 비단 장갑 속에 숨기고 있을 뿐이다.’

1631년 11월, 바이에른 잉골슈타트

틸리 백작은 패잔병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브라이텐펠트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그의 군대는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남은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의 무패 신화는 깨졌고, 그의 낡은 전술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늙은 여우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이빨을 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군인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에게 돌아가,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스웨덴 군의 기동성과 화력이 자신의 테르시오를 압도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남은 겨울 동안, 자신의 군대를 스웨덴 방식으로 재편성하려 애썼다.

막시밀리안은 자신의 영지가 다음 목표가 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다급하게 황제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황제에게는 보낼 군대가 없었다.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은 절망과 후회의 공기로 가득했다. 페르디난트 2세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있었다. 그는 제후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의 가장 강력한 칼을 스스로 부러뜨렸다. 이제 그 칼이 다시 필요했지만, 그 칼은 보헤미아의 궁전에 박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발렌슈타인을 다시 불러오시오.” 황제는 마침내 그의 조언자들에게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군주의 위엄 대신, 체념과 굴욕감이 섞여 있었다.

황제의 사절단이 발렌슈타인의 영지인 기친으로 향했다. 그들은 황제의 간청을 담은 편지를 가지고 갔다. 제국의 모든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지휘권, ‘콘트리부치온’ 징수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 그리고 심지어 황제의 허락 없이 제후들과 독자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까지. 그것은 신하에게 주는 권한이 아니라, 사실상 제국의 절반을 떼어주는 것과 같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기친의 궁전에서 그들을 맞이한 발렌슈타인의 대답은 차가웠다.

“거절하겠소.”

그는 은퇴한 시골 신사처럼, 점성술 연구와 영지 경영에만 몰두하는 척했다.

“나는 이제 늙고 병들었소. 전장의 소음은 내게 맞지 않소. 황제 폐하께는 틸리 백작과 같은 훌륭한 장군들이 있지 않소?”

그것은 계산된 거절이었다. 그는 황제가, 그리고 제국 전체가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는 황제가 간청하게 만들고, 제후들이 자신에게 무릎 꿇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구원자로 돌아오기를 원했다. 자신의 조건으로, 자신의 방식대로.

사절단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페르디난트 2세는 절망에 빠졌다. 제국의 운명은 이제 스웨덴 왕의 자비와, 은퇴한 군벌의 변덕에 달려 있었다.

1631년 12월, 마인츠

라인 강과 마인 강이 만나는 유서 깊은 도시 마인츠. 신성 로마 제국의 수석 선제후이자 대주교의 도시. 가톨릭 신앙의 심장부와도 같은 이곳이, 이제 북방에서 온 이단자의 손에 떨어졌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마인츠를 점령하고,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겨울 궁전은 단순한 군사 야영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권력의 중심지였다. 스웨덴의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가 도착했고, 화려한 궁정 연회가 연일 열렸다. 유럽 전역에서 외교관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의 사절은 스웨덴과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려 했고, 잉글랜드의 사절은 마침내 장인인 제임스 왕의 지원 약속을 가지고 왔다. 심지어 러시아의 차르와 오스만 제국의 술탄마저 사절을 보내, 합스부르크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손을 잡자고 제의했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이제 독일 개신교의 지도자를 넘어, 유럽 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다.

야쿠프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헨드릭의 지시로, 스웨덴 궁정에 납품되는 프랑스산 포도주와 네덜란드산 직물의 장부를 관리했다. 그는 화려한 연회장 구석에서, 역사의 주인공들이 춤추고 밀담을 나누는 모습을 기록했다.

그는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를 보았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눈에는 언제나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숭배했지만, 동시에 그가 끊임없이 전장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녀의 존재는 이 겨울 궁전에 화려함을 더했지만, 동시에 불길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야쿠프는 또한, ‘해방된’ 독일인들의 얼굴도 보았다. 마인츠 시민들은 스웨덴 군의 주둔 비용을 대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다. 스웨덴 병사들은 현지 여성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독일인들이 속삭였다. ‘우리는 황제의 멍에를 벗어났지만, 이제는 스웨덴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군.’

겨울 궁전의 화려함 뒤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밀집한 도시에는 어김없이 역병이 창궐했다. 티푸스와 페스트가 스웨덴 군 진영을 휩쓸었고, 수천 명의 병사들이 적의 칼이 아닌, 보이지 않는 병균 앞에서 쓰러져 나갔다.

야쿠프의 품에 안긴 루카스도 열병에 걸렸다. 아기의 작은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야쿠프는 며칠 밤낮으로 아기를 간호하며 신에게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의사를 불렀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기의 열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야쿠프는 눈물을 흘리며 잠든 아기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이 작은 생명 하나를 지켜낸 것이 그가 거둔 유일한 승리처럼 느껴졌다.

어느 추운 1월의 밤, 야쿠프는 잠든 루카스 옆에서 자신의 연대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마인츠의 겨울 궁전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을 기록했다. 희망과 절망, 영광과 비참, 해방과 새로운 억압이 공존하는 곳.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스웨덴 장교들의 대화 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들었나? 황제가 두 번째 사절단을 발렌슈타인에게 보냈다고 하네. 이번에는 거의 백지수표를 들고 갔다는군.”

“그 교활한 늙은이가 과연 움직일까?”

“움직일 수밖에. 왕께서 내년 봄에는 다뉴브 강을 건너 바이에른의 심장부로 진격하실 계획이니까. 황제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독수리를 다시 풀어주는 수밖에.”

야쿠프의 펜이 멈추었다. 그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겨울은 깊었고, 라인 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봄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희망찬 봄의 소식이 아니었다. 두 마리의 거대한 맹수, 북방의 사자와 제국의 독수리가 마침내 격돌하게 될, 피로 물든 봄의 전주곡이었다.

겨울 궁전의 평화는 신기루에 불과했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20.jpg
124.jpg


keyword
이전 10화브라이텐펠트의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