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결전, 뤼첸

by 남킹


1632년 봄, 다뉴브 강 유역

겨울이 녹아내린 남부 독일의 대지는 해빙기 진흙으로 질척거렸다. 그러나 그 어떤 진흙도 스웨덴 군의 진군을 막지는 못했다. 마인츠의 겨울 궁전에서 힘을 비축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봄이 오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가톨릭 동맹의 심장부인 바이에른을 짓밟고, 황제의 오랜 동맹인 막시밀리안 1세를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군대는 이제 단순한 스웨덴 원정군이 아니었다. 브라이텐펠트의 승리 이후, 수많은 독일 개신교 제후들이 그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고, 포로로 잡혔던 제국군 용병들까지 가세하면서 그의 병력은 10만이 넘는 대군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는 독일 땅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푸른 강과 같았다.

3월, 그는 고도 뉘른베르크에 무혈입성하여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4월에는 다뉴브 강을 건너, 틸리의 군대가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던 레흐(Lech) 강에 도달했다.

레흐 강 전투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군사적 천재성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무대였다. 틸리는 강의 남쪽 둑에 견고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스웨덴 군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그러나 구스타브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술을 선보였다.

그는 밤의 어둠을 틈타, 짙은 연기를 피워 적의 시야를 가린 채, 자신의 공병대에게 강 위에 부교를 건설하게 했다. 동시에, 그의 우월한 포병대는 강 건너편의 바이에른군 진지에 쉴 새 없이 포격을 퍼부어 그들을 참호 속에 묶어두었다. 날이 밝았을 때, 틸리는 자신의 눈앞에 스웨덴 군의 교두보가 확보된 것을 보고 경악했다.

틸리는 필사적으로 반격을 지휘했다. 늙은 사자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짰다. 그는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직접 말을 몰았다. 바로 그 순간, 스웨덴 군의 포탄 한 발이 그의 바로 옆에서 터졌다. 포탄의 파편이 그의 오른쪽 다리를 꿰뚫어 뼈를 산산조각 냈다.

비명과 함께, 늙은 여우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30년 전쟁의 시작부터 가톨릭 군대를 이끌었던 무적의 장군,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그의 시대는 레흐 강의 진흙탕 속에서 그렇게 피로 물들며 막을 내렸다. 그는 잉골슈타트로 후송되었지만, 상처가 악화되어 보름 뒤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휘관을 잃은 바이에른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궤주했다. 바이에른으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렸다. 5월, 구스타브 아돌프는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에 승리자로 입성했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는 자신의 궁전이 이교도 군주에게 점령당하는 굴욕을 피해, 잉골슈타트의 요새로 피신한 후였다.

스웨덴 군은 뮌헨을 철저히 약탈했다. 구스타브는 도시 전체에 막대한 ‘몸값’을 요구했고, 궁전의 예술품과 무기고의 대포들을 모두 전리품으로 챙겼다. 그는 막시밀리안의 개인 서재에서, 그가 얼마나 교묘하게 개신교 제후들을 이간질하고 전쟁을 부추겼는지를 보여주는 비밀 서신들을 발견하고는 냉소했다.

“이것이 그들의 거룩한 대의라는 것의 실체로군.”

독일 남부는 이제 온전히 그의 발아래 있었다.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빈의 궁전에서 공포에 떨었다. 이제 자신과 스웨덴 왕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제국은 붕괴 직전이었다.

바로 그 절망의 순간, 북쪽에서 소식이 당도했다.

그가 돌아왔다.

1632년 4월, 보헤미아 기친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은 뱀처럼 때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궁전에서 점성술 차트를 연구하고, 광대한 영지를 경영하며 은둔자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의 귀는 제국 전역에 퍼져있는 그의 첩자망을 통해 세상의 모든 소식을 듣고 있었다. 브라이텐펠트의 패배, 틸리의 후퇴, 그리고 구스타브 아돌프의 거침없는 남진까지. 모든 것은 그가 예견했던 그대로였다.

황제의 첫 번째 간청을 거절한 그는, 제국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를 기다렸다. 그는 황제가, 그리고 그를 내쫓았던 오만한 제후들이, 자신 없이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그의 때가 왔다. 페르디난트 2세는 굴욕을 감수하고 두 번째 사절단을 보냈다. 이번에 황제가 제시한 조건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제국의 모든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통수권(Generalissimus).”

“군대 조직과 ‘콘트리부치온’ 징수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

“황제의 승인 없이 적과 독자적으로 강화 조약을 맺을 수 있는 권리.”

“전쟁에서 획득한 영지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은 황제가 신하에게 내리는 임명장이 아니었다. 거의 동등한 동업자에게 제안하는 계약서였다. 발렌슈타인은 사실상 군사에 관한 한, 황제와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요구했고, 황제는 그것을 모두 수락했다.

1632년 4월, 발렌슈타인은 마침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나는 다시 한번 제국군을 일으킨다! 과거 나의 깃발 아래 싸웠던 모든 용맹한 병사들이여, 나의 북소리를 듣고 다시 모여라! 그대들에게 부와 명예를 약속하노라!”

그의 이름은 마법과도 같았다. 포고령이 발표되자,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옛 용병들이 귀신처럼 그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실직한 장교들, 굶주린 병사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모험가들까지. 불과 3개월 만에, 발렌슈타인은 무(無)에서 5만이 넘는 대군을 창조해냈다. 그것은 오직 그만이 부릴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작센이었다. 구스타브 아돌프가 남쪽에서 날뛰는 동안, 작센 군대는 보헤미아를 침공하여 프라하를 점령하고 있었다. 발렌슈타인은 갓 조직된 군대를 이끌고,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작센 군대를 보헤미아에서 몰아내고 프라하를 탈환했다. 그는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에게 비밀리에 강화를 제의하며, 개신교 연합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 했다.

이제, 무대는 마련되었다.

남쪽에는 독일의 절반을 손에 넣은 북방의 사자, 구스타브 아돌프.

북쪽에는 무에서 군대를 창조해낸 제국의 독수리, 발렌슈타인.

30년 전쟁의 가장 위대한 두 거인이, 마침내 서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충돌은 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터였다.

1632년 여름, 뉘른베르크 근교

야쿠프는 뉘른베르크에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스웨덴 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 그의 주인 헨드릭은 이곳에 지점을 차렸고, 야쿠프는 그 지점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굶주린 난민이 아니었다. 그는 말쑥한 옷을 입고, 장부를 관리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상단의 업무를 처리했다. 그의 품에서 자라는 루카스는 건강했고, 도시의 아이들과 어울려 웃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평화는 짧았다. 발렌슈타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뉘른베르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발렌슈타인의 북진을 막기 위해, 자신의 주력군을 이끌고 뉘른베르크로 돌아왔다.

두 거인은 뉘른베르크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그러나 둘 다 섣불리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를.

구스타브는 뉘른베르크 도시 주변에 거대한 요새화된 진영을 구축했다. 참호를 파고, 보루를 세우고, 대포를 배치했다. 그는 도시의 풍부한 물자를 이용해, 장기적인 방어전을 준비했다.

발렌슈타인은 더 놀라운 일을 벌였다. 그는 구스타브의 진영을 마주 보는 곳에, 그보다 더 거대하고 견고한 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진영은 ‘알테 페스테(Alte Veste, 낡은 요새)’라 불리는 오래된 성을 중심으로, 수 킬로미터에 걸쳐 참호와 보루가 미로처럼 얽힌 거대한 요새 도시였다. 그는 구스타브와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전에 틸리가 썼던 것과 같은, 그러나 훨씬 더 거대한 규모의 소모전을 계획했다. 그는 구스타브의 군대가 저 요새 도시 안에서 굶주리고, 병들고, 지쳐서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두 개의 거대한 군대가, 서로를 노려보며 마주 보는 기이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칼과 창이 부딪히는 전투가 아니었다. 인내심과 보급, 그리고 역병과의 싸움이었다.

여름 내내, 뉘른베르크 주변 지역은 지옥으로 변했다. 양측 군대는 주변 수십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것을 징발하고 약탈했다. 마을은 텅 비었고, 밭은 황폐화되었으며, 굶주림이 땅을 뒤덮었다.

두 개의 거대한 진영 안에서도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15만이 넘는 군인과 종군자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자, 위생 상태는 최악이 되었다. 식수는 오염되었고,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질, 티푸스, 그리고 괴혈병이 병사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전투보다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야쿠프는 뉘른베르크 성벽 위에서, 두 개의 거대한 죽음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헨드릭의 지시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곡물 가격과, 몰래 거래되는 약품의 장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이 어떻게 죽음마저도 상품으로 만드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의 품에서 자라는 루카스는 굶주림을 몰랐지만, 야쿠프는 창밖의 굶주린 병사들과 난민들의 퀭한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

시간은 발렌슈타인의 편이었다. 구스타브의 군대는 보급 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 병사들은 굶주렸고,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구스타브는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해야만 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 즉 발렌슈TA인의 견고한 요새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위험한 도박을 결심했다.

1632년 9월 3일, 스웨덴 군은 알테 페스테를 향해 총공세를 시작했다.

그것은 브라이텐펠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전투였다. 참호와 보루를 사이에 둔 처절한 근접전이었다. 스웨덴 병사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발렌슈타인이 구축해놓은 죽음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갔다. 모든 방향에서 총탄이 날아왔고, 참호 속에서는 장창과 칼이 번뜩였다.

구스타브 자신도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싸웠다. 그의 근위 연대는 몇 번이고 보루의 일부를 점령했지만, 발렌슈타인의 끊임없는 역습에 밀려 다시 후퇴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계속된 전투는 스웨덴 군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2천 명이 넘는 정예 병사들이 알테 페스테의 흙벽 아래에 시체로 남았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자신의 군사 경력에서 최초의, 그리고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그는 깨달았다. 발렌슈타인을 힘으로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결국 2주 뒤, 뉘른베르크의 포위를 풀고, 지친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발렌슈타인은 그를 추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전략이 승리했음을 조용히 즐겼다. 그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 자신이 구스타브 아돌프와 동등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전략가라는 것을.

1632년 11월, 작센 뤼첸

구스타브의 퇴각은 발렌슈타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그는 스웨덴 군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부 독일로 흩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북쪽으로 돌렸다. 그의 목표는 작센이었다. 그는 스웨덴 군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작센을 굴복시켜, 구스타브를 독일 북부에서 고립시키려 했다. 그는 라이프치히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겨울을 날 준비를 했다. 그는 전쟁이 끝났다고, 적어도 그해의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북방의 사자를 과소평가했다.

구스타브 아돌프는 퇴각하지 않았다. 그는 발렌슈타인의 의도를 간파하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발렌슈타인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친 군대를 이끌고, 기록적인 속도로 북쪽을 향해 강행군을 시작했다.

발렌슈타인은 스웨덴 군이 자신의 등 뒤까지 추격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이미 겨울 숙영을 위해 널리 흩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하게 전군에 집결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가장 유능한 부관인 파펜하임에게, 할레에 주둔하고 있는 기병 부대를 이끌고 즉시 합류하라는 긴급 전령을 보냈다.

두 군대는 1632년 11월 16일, 라이프치히 근교의 작은 마을 뤼첸(Lützen) 근처의 평원에서 다시 한번 마주 섰다. 브라이텐펠트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날 아침, 평원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구스타브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는 전날 밤, 전투를 앞두고 자신의 막사에서 조용히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딸 크리스티나와, 제국 재상 옥센셰르나에게 스웨덴의 미래를 맡겼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오전 11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구스타브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의 전투 구호는 언제나처럼 단순했다.

“Gott mit uns!”

전투는 처음부터 끔찍한 살육전이었다. 발렌슈타인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을 따라 파놓은 참호를 방패 삼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스웨덴 군의 ‘푸른 여단’은 용맹하게 돌격했지만, 참호에서 쏟아지는 머스킷 사격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구스타브는 중앙의 공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직접 기병대를 이끌고 좌익을 돌파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언제나처럼 최전선에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짙은 안개와 화약 연기 속에서, 그는 길을 잃고 소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제국군 흉갑기병대가 그들을 발견하고 에워쌌다.

“저 자가 왕이다!”

총탄이 빗발쳤다. 첫 번째 총알이 그의 왼팔을 꿰뚫어 뼈를 부수었다. 두 번째 총알이 그의 등 뒤에 박혔다. 그의 말이 쓰러지면서, 그는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부상당한 그에게 한 제국군 장교가 다가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스웨덴의 왕이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장교는 권총으로 그의 머리를 쏘았고, 병사들은 그의 시신을 칼로 찌르고, 값나가는 옷과 장신구를 벗겨갔다.

북방의 사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 30년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던 위대한 영웅은, 뤼첸의 안개 낀 들판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전사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전투의 끝은 아니었다.

왕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스웨덴 군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부관인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가 통솔권을 이어받았다. 그는 왕의 죽음을 복수심으로 승화시켰다.

“왕께서 전사하셨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저 악당들의 손에 돌아가셨다! 저들에게 복수하라! 왕의 시신을 되찾아라!”

스웨덴 군은 슬픔을 분노로 바꾸어, 광적인 용맹함으로 다시 돌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전장에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파펜하임의 기병대가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듣고, 전령의 명령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전군을 이끌고 달려왔다. 그의 등장은 위기에 처한 발렌슈타인에게 구원이었다.

파펜하임은 지친 기병대를 이끌고, 스웨덴 군의 측면을 향해 그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맹렬한 돌격을 감행했다. 그는 전장을 가로지르며 스웨덴 보병대를 짓밟았다. 그러나 그 역시 스웨덴 군의 총탄을 피하지 못했다. 대포알이 그의 가슴을 직격했고, 그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죽어가면서, 스웨덴 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왕이 죽었다니… 나도 이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군.”

제국군의 가장 용맹한 두 개의 칼날, 틸리와 파펜하임이 모두 스웨덴 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해가 질 무렵, 전투는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닌, 완전한 소모전으로 변해 있었다.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냈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결국, 발렌슈타인은 퇴각을 명령했다. 그는 모든 대포와 부상병들을 버려둔 채, 밤의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스웨덴 군은 자신들이 전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비싼 대가를 치른,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들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을 이끌어갈 위대한 왕을 잃었다.

야쿠프는 전투가 끝난 며칠 뒤, 뤼첸의 들판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종군 상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이 거대한 비극을 기록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들판은 이미 약탈자들에게 모두 약탈당한 후였고,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땅에 이름 없는 시신들을 묻고 있었다.

그는 한 스웨덴 군목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왕의 시신을 찾았을 때, 거의 알아볼 수 없었소.” 군목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진흙과 피로 뒤덮여 있었고,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지. 위대한 왕의 마지막 모습이….”

야쿠프는 자신의 연대기에 마지막 문장을 썼다.

‘1632년 11월 16일, 뤼첸에서, 거인들이 쓰러졌다. 북방의 사자는 죽었고, 제국의 독수리는 날개가 부러진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서로를 파괴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은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오히려, 지도자를 잃은 전쟁은 이제부터 더욱 잔혹하고, 목적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신의 이름은 여전히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이제 들판에 남은 것은 신의 침묵뿐이다.’

구스타브 아돌프의 죽음으로, 30년 전쟁의 영웅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끝없는 소모전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독일 땅을 뒤덮을 더 깊은 절망뿐이었다. 전쟁의 세 번째 막이, 가장 위대한 비극과 함께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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