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의 춤 (Dance of the Ghosts)

by 남킹


1633년 봄, 독일 중부

북방의 사자가 쓰러진 뤼첸의 들판 위로,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기만적인 봄이 찾아왔다. 얼어붙었던 대지는 녹아내렸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뒤덮은 절망과 혼돈의 얼음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왕의 죽음은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오히려 통제 불능의 야수처럼 날뛰게 만들었다. 한때 신앙과 대의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던 거대한 두 군대는 이제 머리를 잃은 채, 오직 생존과 약탈이라는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유령들의 군단이 되어 독일 땅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구스타브 아돌프의 죽음은 스웨덴과 개신교 연합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구심점이 사라지자, 동맹은 내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국정은 이제 구스타브의 어린 딸 크리스티나 여왕을 대신하여, 철혈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의 손에 넘어갔다. 옥센셰르나는 스승을 잃은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붕괴 직전의 동맹을 수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직면했다.

그는 독일 남서부의 하일브론에 개신교 제후들을 소집했다.

“위대한 왕께서는 우리에게 유산을 남기셨소.” 옥센셰르나는 지친 얼굴의 제후들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왕처럼 카리스마가 넘치지는 않았지만,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의 자유’라는 대의와, 우리가 함께 이룬 승리요. 왕께서 흘리신 피를 헛되이 할 수는 없소. 우리는 이제 ‘하일브론 동맹(Heilbronn League)’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굳건히 뭉쳐, 합스부르크의 폭정에 맞서 싸워야 하오.”

그의 필사적인 외교 노력 덕분에 개신교 연합은 간신히 와해를 면했다. 그러나 그 실체는 허약했다. 스웨덴의 군사적 지휘권은 두 명의 뛰어난 장군, 구스타브 호른과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에게 나뉘었다. 호른은 신중하고 방어적인 전략가였던 반면, 베른하르트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공격성을 물려받은 야심만만한 용병대장이었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하며 통일된 지휘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

작센과 브란덴부르크 같은 강력한 제후들은 스웨덴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하며, 독자적으로 황제와 비밀 협상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개신교 연합은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반대편 진영의 혼란은 더욱 심각했다.

발렌슈타인은 뤼첸 전투 이후,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보헤미아로 돌아가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했지만(비록 전술적으로는 무승부나 다름없었지만),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제 독일 땅에서 자신에게 필적할 군사 지도자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 전쟁을 끝낼 유일한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그를 바라보는 빈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생각은 달랐다. 황제는 발렌슈타인이 뤼첸에서 스웨덴 군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하고 퇴각한 것에 분노했다. 그는 또한, 발렌슈타인이 작센과 비밀리에 강화 협상을 벌이며, 황제를 배제한 채 자신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황제의 주변에는 발렌슈타인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들끓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과 스페인 대사들은 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황제를 부추겼다.

“폐하, 저 자는 더 이상 폐하의 신하가 아닙니다. 그는 제국의 왕관을 노리는 역적입니다! 그가 가진 군대는 황제의 군대가 아니라, 발렌슈타인의 군대일 뿐입니다.”

발렌슈타인은 자신을 둘러싼 음모의 거미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점점 더 과묵해지고, 변덕스러워졌으며, 자신의 막사에 틀어박혀 점성술에만 매달렸다. 그는 별들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읽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들의 배신은 읽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이 황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방패라고 생각했다. 그는 황제와 제후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그들을 압박하여 자신이 원하는 평화, 즉 독일을 양분하여 자신과 스웨덴이 나누어 통치하는 구상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것은 황제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실상의 반역 계획이었다.

1633년 가을, 야쿠프의 여정

야쿠프는 이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뤼첸 전투 이후, 그는 더 이상 종군 상인으로 머물 수 없었다. 전선이 불분명해지고, 소규모 부대들의 약탈이 극심해지면서 상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는 다시 헨드릭의 곁을 떠나, 아기 루카스와 함께 피난민의 행렬에 합류했다.

그의 품에 안긴 양피지 뭉치는 이제 엄청난 두께가 되어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모든 곳의 풍경을, 사람들의 비명을, 그리고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들을 기록해왔다. 그의 연대기는 이제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시대의 증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왜 이 기록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남기려는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길 위에서 수많은 ‘유령’들을 만났다.

어느 폐허가 된 마을에서, 그는 한때 제국군 기병이었던 남자를 만났다. 그는 뤼첸에서 부상을 입고 낙오된 후, 이제는 낡은 갑옷을 입은 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남자가 텅 빈 눈으로 야쿠프에게 물었다. “틸리 장군님도, 파펜하임 장군님도 돌아가셨다. 발렌슈타인 공작 각하는 우리를 버리고 보헤미아로 가버렸다. 황제 폐하는 빈의 궁전에 앉아 기도만 하고 계시지. 우리는 이제 주인이 없는 개와 같다. 서로를 물어뜯으며 찌꺼기를 찾아 헤맬 뿐.”

또 다른 길에서는, 한때 스웨덴 군의 ‘푸른 여단’ 소속이었던 스웨덴 병사를 만났다. 그는 역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탈영한 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

“왕께서 살아계실 때는 달랐소.” 그는 북쪽 하늘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신과 왕을 위해 싸운다는 자부심이 있었소. 우리는 해방군이었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무엇인가? 독일인들에게 우리는 그저 또 다른 점령군, 또 다른 약탈자일 뿐이야. 나는 이 저주받은 땅에서 죽고 싶지 않소. 스웨덴의 푸른 숲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오.”

왕을 잃은 군대와 주군의 신임을 잃은 군대. 그들은 이제 명분이라는 껍데기를 잃어버린 채, 독일 땅을 배회하는 거대한 유령들의 군단이 되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기근과 역병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야쿠프와 루카스도 굶주림을 피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야쿠프는 숲속에서 쓰러졌다. 그의 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 그는 품에 안은 루카스의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가방에서 양피지 몇 장을 꺼내 불쏘시개로 썼다. 보헤미아 임시정부의 회의록이었다. 한때 역사를 바꿀 것이라 믿었던 그 기록이, 이제는 작은 모닥불이 되어 그의 아들의 체온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역사는 때로 생존 앞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타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을 구한 것은 ‘숲의 형제들’이라 불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숲으로 숨어든 농민과 탈영병들이었다. 그들은 특정 군대에 소속되지 않고, 숲의 지리를 이용해 소규모 부대를 습격하며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리더는 한때 하급 귀족이었던, 칼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당신은 서기로군.” 칼은 야쿠프의 가방에 든 양피지를 보고 말했다. 그의 눈은 숲속 짐승처럼 날카로웠다. “이 혼란의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야쿠프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오. 이 모든 고통과 어리석음을. 훗날, 사람들이 우리가 왜 서로를 죽여야 했는지 물을 때, 대답해줄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칼은 잠시 야쿠프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야쿠프와 루카스를 자신의 은신처로 데려갔다. 야쿠프는 그곳에서 겨울을 나며, 숲의 형제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들은 영웅도, 악당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거대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작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왕이나 장군의 연대기보다도 더 진실된 전쟁의 모습이었다.

1634년 2월, 에거(Eger)

발렌슈타인의 운명은 별이 아니라, 인간의 배신에 의해 결정되었다.

1634년 초,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발렌슈타인을 대역죄로 규정하고, 그를 생포하거나 사살하라는 비밀 칙령을 내렸다. 그는 발렌슈타인의 군대를 와해시키기 위해, 그의 밑에 있던 주요 장군들(오타비오 피콜로미니, 마티아스 갈라스 등)을 돈과 작위로 매수했다.

발렌슈타인은 너무 늦게 배신을 알아차렸다. 그가 믿었던 부하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그의 군대는 순식간에 공중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소수의 충직한 부하들과 함께, 스웨덴 군과 합류하기 위해 보헤미아 서부의 국경 도시 에거로 피신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실수였다.

에거 요새의 수비대를 이끌고 있던 세 명의 장교, 존 고든, 월터 레슬리(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 용병), 그리고 월터 버틀러(아일랜드 출신 용병)는 이미 황제의 밀사에게 매수된 상태였다. 그들은 발렌슈타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척하며, 그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634년 2월 25일 밤, 운명의 밤이 찾아왔다.

고든과 레슬리는 발렌슈타인의 충직한 부관들을 연회에 초대했다.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 숨어 있던 병사들이 뛰쳐나와 그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사이, 버틀러는 한 떼의 병사들을 이끌고 발렌슈타인이 묵고 있던 집으로 향했다. 발렌슈타인은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점성술사에게 운세를 물었지만, 점성술사는 그를 안심시켰다.

병사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을 때, 발렌슈타인은 막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무기도 없이, 병든 몸으로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암살자들을 보며,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고 전해진다.

“이 역적 놈아, 내 오랜 동지를 죽이러 왔는가?”

버틀러가 이끄는 병사의 장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보헤미아의 가난한 귀족에서 시작하여,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벌로 떠올랐던 시대의 거인. 그의 야망과 천재성으로 30년 전쟁의 흐름을 몇 번이고 바꾸었던 미스터리한 인물은, 그렇게 허무하게 암살당했다. 그의 시신은 창밖으로 던져져, 수레에 실려 조리돌림을 당했다.

독수리가 추락했다. 그의 죽음은 제국군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황제에게는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을 기회를 주었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인 헝가리 왕 페르디난트(훗날의 페르디난트 3세)를 새로운 제국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는 스페인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스페인은 움직였다.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의 동생이자, 유능한 지휘관이었던 추기경-영주 페르난도(Cardinal-Infante Ferdinand of Austria)가 이탈리아에서 1만 8천의 정예 스페인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독일로 향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의 두 세력이, 마침내 독일 땅에서 하나로 합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지도자를 잃고 분열된 스웨덴 군과 하일브론 동맹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이었다.

1634년 9월, 뇌르틀링겐

스웨덴 군의 두 지휘관, 구스타브 호른과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는 서로 반목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합스부르크의 두 군대가 합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가 지휘권을 가질 것인지를 놓고 다투느라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

마침내 두 합스부르크 군대는 다뉴브 강 유역의 작은 도시, 뇌르틀링겐(Nördlingen) 근교에서 합류했다. 그들의 병력은 총 3만 3천에 달하는, 경험 많고 규율 잡힌 정예 부대였다.

호른과 베른하르트는 뒤늦게 위험을 깨닫고, 2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그들을 막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브라이텐펠트와 뤼첸에서 승리했던 스웨덴 군의 질적 우위를 믿었다.

1634년 9월 6일, 뇌르틀링겐 전투가 벌어졌다.

그것은 스웨덴 군에게는 재앙이었다.

베른하르트는 뤼첸에서처럼 정면 공격을 감행했지만, 스페인 테르시오의 견고한 방어진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스페인 군의 조직적인 반격에 그의 정예 부대인 ‘푸른 여단’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호른은 측면을 공격하려 했지만, 지형의 불리함과 제국군 기병대의 맹렬한 공격에 막혀 고립되었다. 두 지휘관의 연계는 완전히 실패했다.

오후가 되자,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합스부르크 군대는 총공세를 시작했다. 스웨덴 군의 전열은 곳곳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브라이텐펠트의 복수와도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스웨덴 군이 궤멸당하는 쪽이었다.

베른하르트는 소수의 기병과 함께 간신히 전장을 탈출했다. 그러나 신중한 지휘관이었던 구스타브 호른은 자신의 부대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포로로 잡혔다.

뇌르틀링겐 전투는 스웨덴 군에게는 브라이텐펠트의 영광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든, 재앙적인 패배였다. 그들은 1만 2천 명이 넘는 병사를 잃었고, 남부 독일에서의 모든 거점을 상실했다. 하일브론 동맹은 사실상 붕괴했다. 독일 개신교 제후들은 다시 한번 공포에 휩싸여, 황제에게 용서를 구걸할 준비를 했다.

스웨덴의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야쿠프는 숲속 은신처에서 이 모든 소식을 들었다. 발렌슈타인의 죽음, 그리고 뇌르틀링겐의 참패. 그는 자신의 연대기를 펼쳤다. 거인들이 모두 사라진 무대 위로, 이제 유령들의 춤만이 남아 있었다. 희망은 사라지고, 오직 끝없는 소모전과 타국의 개입만이 이 저주받은 전쟁을 연장시킬 것처럼 보였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뇌르틀링겐의 패배 소식은 스웨덴뿐만 아니라, 파리의 루브르 궁전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합스부르크의 완벽한 승리를 눈앞에서 지켜보게 된 리슐리외 추기경은, 더 이상 막후 지원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전쟁의 네 번째 막, 가장 길고, 가장 비참하며,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순수한 권력 투쟁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야쿠프는 펜을 들어, 새로운 장의 제목을 썼다.

‘추기경의 전쟁 (The Cardinal'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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