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전쟁 (The Cardinal's War)

by 남킹


1634년 겨울, 파리 루브르 궁전

파리의 겨울은 독일의 그것과는 달랐다. 센 강 위로는 차가운 안개가 피어올랐지만, 루브르 궁전의 대리석 복도는 타오르는 벽난로의 열기와 권력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후끈거렸다. 이곳에는 전쟁의 피 냄새 대신, 값비싼 향수와 밀랍초, 그리고 교활한 외교관들의 혀끝에서 피어나는 음모의 냄새가 가득했다.

추기경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는 그의 집무실에서, 유럽 전역에서 도착한 비밀 보고서들을 읽고 있었다. 붉은 추기경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깡마르고 병약해 보였지만, 그의 잿빛 눈은 지치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지도의 모든 지점과 보고서의 모든 단어 뒤에 숨은 의미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의 재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프랑스 그 자체를 움직이는 두뇌이자 의지였다.

그의 신앙은 독실했지만, 그의 정치는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는 한 명의 가톨릭 성직자로서 교회의 안녕을 기도했지만, 프랑스의 재상으로서는 교황이나 황제가 아니라 오직 단 하나의 우상, 즉 ‘국가 이성(Raison d'État)’만을 섬겼다. 그리고 그 국가 이성은 그에게 단 하나의 진리를 속삭이고 있었다: 프랑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국경을 포위하고 있는 합스부르크의 세력을 반드시 약화시켜야만 한다는 것.

지금까지 그는 직접적인 개입을 피하며, 교묘하게 ‘대리전’을 치러왔다. 그는 덴마크의 야망에 돈을 대주었고, 스웨덴의 사자가 독일 땅을 유린하도록 막후에서 자금을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은 프랑스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합스부르크를 지치게 만들기 위한 거대한 체스 게임이었다.

그러나 뇌르틀링겐의 참패는 그 체스판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보고서를 읽는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스웨덴 군은 궤멸되었고, 하일브론 동맹은 붕괴했다. 독일 개신교 제후들은 눈사태처럼 황제에게 항복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의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세력은 15년 만에 가장 강력한 통합을 이루었고, 그들의 승리에 찬 군대는 이제 라인 강을 넘어 프랑스 국경을 직접 위협하고 있었다. 그의 대리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제 프랑스는 거대한 합스부르크의 독수리와 홀로 마주 서게 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의 방패가 깨졌습니다, 각하.” 그의 충직한 조언자이자 ‘회색 옷의 eminance’ 페르 조제프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가 직접 검을 뽑아야 할 시간입니다.”

리슐리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루브르 궁의 안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마지막 갈등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의 추기경으로서, 어떻게 이단인 개신교도들과 공식적으로 손을 잡고, 가톨릭 황제와 스페인 왕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신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교황과 가톨릭 세계 전체가 그를 파문하고 저주할 터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프랑스의 지도를 향했을 때, 그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동쪽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남쪽으로는 스페인, 그리고 북쪽으로는 스페인령 네덜란드. 프랑스는 거대한 합스부-르크의 감옥에 갇힌 죄수와 같았다. 이대로 합스부-르크의 완전한 승리를 허용한다면, 프랑스는 다음 희생양이 될 것이 자명했다.

“신은 프랑스의 편에 서 계신다, 조제프.” 리슐리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생존이 곧 신의 뜻이다. 합스부-르크의 야망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럽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일 뿐이다. 그 탐욕을 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의무다.”

그는 국가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행동에 신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돌아서서 책상에 앉았다. 그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악셀 옥센셰르나에게 전령을 보내라.” 그가 명령했다. “스웨덴이 우리의 조건에 동의한다면, 프랑스는 그들의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것이다. 깨진 방패는 다시 붙이면 된다.”

“그리고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에게도 연락하라. 그 탐욕스러운 용병대장에게는 돈과 영지가 필요하겠지. 우리는 그의 군대를 통째로 고용할 것이다. 그는 이제 스웨덴의 장군이 아니라, 프랑스의 장군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기관을 불렀다.

“브뤼셀의 스페인 총독에게 보낼 선전포고문을 작성하라. 그리고 전령 한 명을 준비시켜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유럽 전체가 프랑스의 결의를 똑똑히 보게 만들어야 한다.”

1635년 5월 19일, 파리에서 온 전령이 브뤼셀의 대광장에서, 스페인 총독 추기경-영주 페르난도 앞에 섰다. 그는 선전포고문을 낭독한 뒤, 프랑스의 전통에 따라 그것을 땅에 던지는 대신, 나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공식적인 선전포고였다.

30년 전쟁의 네 번째 막, ‘프랑스-스페인 전쟁’의 막이 올랐다. 전쟁은 이제 더 이상 독일 내의 종교 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의 패권을 둘러싼 두 거대 왕조, 부르봉과 합스부-르크의 전면전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전쟁의 한가운데로, 독일 땅은 다시 한번 끝없는 피와 눈물의 제물이 될 운명이었다. 신의 이름은 이제 핑계조차 되지 못했다. 오직 국가의 이름만이 깃발에 나부낄 뿐이었다.

1635년 봄, 프라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뇌르틀링겐의 승리 이후, 전쟁이 끝났다고 믿었다. 그는 이 기세를 몰아, 독일 제후들과의 평화 조약을 추진했다. 그의 목표는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고, 제국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정’은 합스부-르크의 패권 아래에서의 안정이었다.

1635년 5월 30일, 프라하에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의 내용은 뇌르틀링겐 이전이었다면 개신교 제후들이 꿈꿀 수도 없었을 만큼 관대했다. 황제는 마침내, 제국 전체의 증오를 샀던 ‘복권 칙령’을 사실상 철회했다. 교회 재산의 기준 시점을 1627년으로 정함으로써, 대부분의 개신교 제후들이 기존의 영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제국 내의 모든 군대(바이에른과 작센을 제외한)를 단일 제국군으로 통합하고, 제후들 간의 동맹을 금지했다.

이 ‘프라하 조약’은 독일인들 사이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일견 합리적인 조치처럼 보였다. 작센과 브란덴부르크를 포함한 거의 모든 독일 제후들이 이 조약에 서명했다. 그들은 17년간의 끔찍한 전쟁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이제 외세(스웨덴과 프랑스)를 몰아내고, 독일인들끼리 평화를 되찾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평화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첫째, 칼뱅파에 대한 신앙의 자유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았고, ‘겨울왕’ 프리드리히의 아들에게 팔츠 영지를 돌려주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둘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조약은 독일 밖의 두 강대국, 즉 스웨덴과 프랑스를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옥센셰르나와 리슐리외에게 프라하 조약은 평화 협정이 아니라, 자신들을 겨냥한 새로운 전쟁 동맹의 결성이었다. 그들은 지난 몇 년간 독일 땅에서 흘린 피와 쏟아부은 돈의 대가를 얻기 전에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이제 독일의 내전이 아니었다. 그들의 국가적 생존과 이익이 걸린 문제였다.

프라하 조약은 독일의 평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일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군으로 묶어, 이제부터 시작될 프랑스와 스웨덴과의 총력전에 내몰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세의 대리인이 되어 서로를 죽여야 하는 더 깊은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1636년,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스페인 놈들이 코르비(Corbie)를 점령했다!”

공포에 질린 외침이 파리의 거리를 휩쓸었다. 뇌르틀링겐의 영웅, 추기경-영주 페르난도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스페인령 네덜란드에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 북부를 무서운 속도로 유린하고 있었다. 코르비는 파리에서 불과 1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었다. 파리는 이제 적의 직접적인 위협 아래 놓였다.

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부유한 귀족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 마차에 짐을 꾸렸고, 거리에서는 “추기경을 타도하라! 이 모든 게 저 붉은 폭군 때문이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리슐리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리슐리외는 위기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인물이었다. 그는 도망치기는커녕, 직접 파리 시청 앞 광장에 나섰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군중 앞에 선 그는, 사자처럼 포효했다.

“파리의 시민들이여! 적이 우리의 문 앞에 와 있소! 지금이야말로 프랑스인의 용기를 보여줄 때요!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짐을 꾸리는 자는 반역자요, 파리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드는 자는 영웅이다! 나 리슐리외는, 이 도시와 함께 운명을 같이할 것을 신과 왕의 이름으로 맹세하오!”

그의 연설은 파리 시민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공포는 분노와 결의로 바뀌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했고, 교회는 종을 녹여 대포를 만들었으며, 부자들은 전쟁 자금을 헌납했다. 며칠 만에, 파리는 거대한 요새가 되었다.

리슐리외의 결단과, 왕 루이 13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향하는 모습에 힘입어, 프랑스 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스페인 군은 보급선이 너무 길어진 탓에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결국 겨울이 오기 전에 코르비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파리는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쟁이 얼마나 길고, 처절하게 될 것인지를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전쟁의 불길은 이제 독일 땅을 넘어,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까지 번져나가는 거대한 화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1636년 10월, 비트슈토크 (Wittstock)

프랑스가 서쪽에서 스페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북쪽에서는 스웨덴 군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뇌르틀링겐의 패배 이후, 그들은 독일 남부에서 완전히 밀려나, 처음 상륙했던 포메라니아 해안가에 고립되어 있었다. 프라하 조약에 따라 형성된 강력한 제국-작센 연합군이 그들을 포위하고 압박해오고 있었다.

스웨덴 군의 지휘관은 이제 요한 바네르였다. 그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가장 용맹한 제자였지만,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불같아 옥센셰르나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군사적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수적으로 두 배나 많은 제국-작센 연합군을 상대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비트슈토크 전투에서, 그는 자신의 군대를 둘로 나누어, 짙은 안개를 틈타 적의 측면과 후방을 동시에 공격하는 대담한 기동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제국-작센 연합군은 완전히 허를 찔려, 혼란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스웨덴 군은 뇌르틀링겐의 패배를 설욕하는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트슈토크의 승리는 스웨덴을 구원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독일 북부의 주도권을 되찾았고, 프랑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느 한쪽도 상대를 완전히 끝장낼 수 없는, 끝없는 소모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1637년, 숲속 은신처

야쿠프는 이 모든 소식을, 숲속 은신처에서 몇 달이나 늦게 전해 들었다. 전쟁의 거대한 흐름은, 그와 같은 작은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하든, 스웨덴이 비트슈토크에서 이기든, 숲속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식량과,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하는 문제뿐이었다.

그는 이제 ‘숲의 형제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펜만 잡는 서기가 아니었다. 그는 활 쏘는 법을 배웠고, 덫 놓는 법을 익혔으며, 밤의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다. 그의 손은 굳은살이 박혔고, 그의 몸은 단단해졌다. 루카스는 숲의 아이가 되어, 나무와 시냇물을 친구 삼아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칼이 이끄는 무리가 제국군 보급 마차를 습격했다. 그들은 소금과 화약, 그리고 약간의 은화를 노획했다. 그러나 그 마차에는 다른 짐도 실려 있었다. 그것은 인쇄된 종이 뭉치였다.

야쿠프는 그 종이들을 펼쳐보았다. 그것은 황제군이 뿌리는 선전 전단지였다. 거기에는 스웨덴 군을 ‘독일을 유린하는 야만적인 이교도’로, 프랑스를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로 묘사하는 저주가 가득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스웨덴 군이 뿌리는 전단지도 있었다. 거기서는 황제를 ‘독일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으로, 발렌슈타인을 ‘피에 굶주린 악마’로 그리고 있었다.

이것은 칼과 총으로만 싸우는 전쟁이 아니었다. 잉크와 인쇄기로 싸우는 전쟁이기도 했다. 양측 모두 자신들의 대의를 정당화하고, 적을 악마화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진실은 누구의 편에도 없었다. 진실은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야쿠프는 그 선전물들을 자신의 연대기 옆에 보관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이 ‘진실’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눈을 통해 본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거대한 비극 속에서, 과연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그는 모닥불 옆에서 잠든 루카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기의 얼굴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없었다. 그 순수한 얼굴만이,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심할 수 없는 진실처럼 느껴졌다.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죽었다는 소문이 숲까지 들려왔다. 그의 아들 페르디난트 3세가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새로운 황제는 아버지보다 온건하고, 평화를 원한다는 소문도 함께였다. 그러나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한두 명의 왕이나 황제의 의지로 멈출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스스로의 논리로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야쿠프는 자신의 연대기에 새로운 장을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이 장의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기록할 뿐이었다. 지도자를 잃고, 명분을 잃고, 희망마저 잃어버린 땅 위에서, 유령들이 추는 끝없는 죽음의 춤을. 그리고 그 춤이 언제 끝날지는, 오직 신만이, 혹은 어쩌면 악마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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