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8년 봄, 라인 강 상류 브라이자흐
전쟁은 이제 스무 해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쟁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청년이 되어, 자신이 싸우는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의 낡은 머스킷을 물려받고 있었다. 한때 풍요로웠던 독일의 들판은 거대한 흉터처럼 변해갔다. 경작되지 않은 밭에는 잡초만 무성했고, 지붕이 무너진 마을들은 해골의 텅 빈 눈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인들이 사라진 무대 위에는 이제 늑대들의 시간이 왔다. 이들은 더 이상 신앙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생존과 탐욕, 그리고 전쟁 그 자체를 위해 싸우는 전문적인 전쟁 기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뛰어나고, 가장 야심만만한 늑대는 바로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였다.
뤼첸에서 구스타브 아돌프가 쓰러진 후, 베른하르트는 스웨덴 군의 가장 중요한 야전 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뇌르틀링겐의 참패 이후, 그는 스웨덴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새로운 용병들을 끌어모아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았다. 바로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이었다.
리슐리외는 베른하르트의 야망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베른하르트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그의 군대를 프랑스의 이름 아래 싸우게 만들었다. 베른하르트는 이제 프랑스 왕의 봉급을 받는 장군이 되었지만, 그의 군대는 여전히 그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병 집단이었다. 그는 리슐리외에게 약속했다. 합스부르크의 생명줄인 ‘스페인의 길’을 차단하고, 라인 강 유역에 프랑스의 교두보를 마련해주겠다고. 그 대가로, 그는 전쟁이 끝나면 알자스 지방을 자신의 영지로 갖게 될 것이라는 비밀 약속을 받아냈다.
1638년, 베른하르트는 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목표는 라인 강 상류의 가장 강력한 요새 도시, 브라이자흐(Breisach)였다. 브라이자흐는 거대한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로, ‘라인 강의 열쇠’라 불리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을 점령하는 것은 ‘스페인의 길’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다.
베른하르트의 군대가 브라이자흐를 포위했을 때, 황제군은 구원을 위해 달려왔다. 3월, 라인펠덴 전투에서 베른하르트는 자신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제국군을 상대로, 구스타브 아돌프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기동전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승세를 몰아, 브라이자흐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갔다.
포위는 길고 잔혹했다. 브라이자흐의 수비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성 안의 시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들은 쥐와 고양이, 심지어는 가죽을 삶아 먹으며 버텼다. 베른하르트는 성 밖에서, 성 안에서보다 더 끔찍한 굶주림과 싸우고 있었다. 그의 군대는 주변 지역을 샅샅이 약탈했지만, 이미 황무지로 변한 땅에서 더 이상 짜낼 식량은 없었다.
바로 그때, 야쿠프는 운명의 장난처럼, 이 지옥의 한복판에 다시 던져졌다.
1638년 여름, 브라이자흐 포위군 진영
‘숲의 형제들’과의 삶은 야쿠프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주었지만, 그것 역시 영원할 수는 없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숲도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양측 군대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숲까지 샅샅이 뒤졌고, 칼의 무리는 몇 번의 교전 끝에 흩어져 버렸다. 야쿠프는 다시 아들 루카스를 데리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그는 남쪽으로, 중립국인 스위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이라면 전쟁의 광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라이자흐 근처에서, 그는 베른하르트의 군대에게 붙잡혔다.
그의 행색은 남루했지만, 그의 가방에서 나온 수많은 양피지 뭉치와 필기구는 그의 신분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첩자로 오인받아 즉결처분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나는 서기일 뿐이오!” 야쿠프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나는 단지 이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오!”
그의 말이 한 장교의 귀에 들어갔다. 그 장교는 야쿠프의 기록 몇 장을 읽어보더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글 솜씨가 쓸 만하군. 마침 우리 연대에도 서기가 필요하던 참이다. 자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우리를 위해 일하게. 거절한다면, 저 아이와 함께 까마귀 밥이 될 것이다.”
야쿠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의 군대 소속 서기가 되었다. 그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뱃속을, 이 군대에서 저 군대로 옮겨 다니며 표류하고 있었다.
베른하르트의 군영은 그가 겪었던 어떤 군대보다도 혼란스럽고 야만적이었다. 이곳에는 스웨덴 군의 신앙심 깊은 규율도, 발렌슈타인의 냉혹한 계산적 질서도 없었다. 오직 약탈과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법칙만이 지배했다. 병사들은 온갖 국적의 용병들이 뒤섞여 있었고,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지휘관인 베른하르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전리품에 대한 끝없는 탐욕뿐이었다.
야쿠프의 임무는 노획품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같이 병사들이 주변 마을에서 약탈해온 물건들을 기록했다. 곡물과 가축, 옷가지와 가구, 그리고 심지어 교회의 성배와 십자가까지. 그는 또한, ‘전리품’으로 끌려온 여자들과 아이들의 수도 기록해야 했다. 그의 펜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그의 영혼은 매일 밤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베른하르트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는 서른네 살의 젊은 지휘관이었고, 뤼첸과 뇌르틀링겐에서 단련된 백전노장이었다. 그의 눈에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이상주의 대신, 거친 야망과 냉혹한 현실주의가 번뜩였다. 그는 병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술을 마셨고, 전투에서는 가장 먼저 적진으로 돌격했다. 병사들은 그를 신처럼 숭배했다. 그는 그들에게 승리와 약탈을 약속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어느 날 밤, 베른하르트가 술에 취해 병사들에게 외쳤다. “우리는 프랑스 왕을 위해 싸우지도, 스웨덴 여왕을 위해 싸우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싸운다! 이 검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브라이자흐는 그 왕국의 첫 번째 초석이 될 것이다!”
야쿠프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 전쟁이 이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이것은 이제 국가 간의 전쟁을 넘어, ‘콘도티에로(Condottiero)’라 불렸던 이탈리아의 용병대장들이 벌이던 중세 시대의 사적인 전쟁으로 퇴보하고 있었다. 베른하르트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후계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발렌슈타인이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1638년 12월 19일, 6개월간의 끔찍한 포위전 끝에, 브라이자흐는 마침내 항복했다. 성문이 열렸을 때, 베른하르트의 군대는 굶주린 늑대 떼처럼 도시로 쏟아져 들어갔다. 성 안에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시체가 더 많았다. 생존자들은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승리자들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베른하르트는 약탈을 허락했지만, 마그데부르크와 같은 무질서한 학살은 막았다. 그는 이 도시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도시를 재건하고, 자신의 깃발을 내걸었다. 그는 프랑스의 이름으로 싸웠지만, 브라이자흐는 프랑스 왕이 아닌, 베른하르트 개인의 소유가 되었다.
리슐리외는 이 소식을 듣고 격노했지만, 당장은 그를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 베른하르트는 라인 강 유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지도자였고, 프랑스는 그의 힘이 필요했다. 추기경은 일단 그의 오만함을 눈감아주기로 했다. 늑대는 언젠가 사냥이 끝나면 사냥꾼의 손에 죽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1639년, 프랑스-스페인 국경, 그리고 바다
브라이자흐의 함락으로 ‘스페인의 길’이 끊기자, 스페인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들은 이제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있는 군대에 육로로 보급과 병력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한 길은 바다뿐이었다.
1639년, 스페인은 거대한 함대를 조직했다. 77척의 군함에 2만 4천의 병력을 태운 이 ‘제2의 무적함대’는 네덜란드 해상 봉쇄를 뚫고 플랑드르에 상륙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네덜란드의 위대한 해군 제독 마르턴 트롬프가 막아섰다. 트롬프의 함대는 수적으로는 스페인 함대에 열세였지만, 기동성이 뛰어났고, 네덜란드 선원들의 조함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9월, 다운스(The Downs) 해전에서, 트롬프는 스페인 함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화공선을 이용하여 스페인의 밀집 함대를 혼란에 빠뜨린 뒤, 뛰어난 포격술로 스페인 군함들을 차례차례 격침시켰다. 스페인 함대는 50척 이상의 배를 잃고 궤멸했다. 스페인의 해상 보급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육지에서도 프랑스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프랑스 군은 스페인 남부 국경을 넘어, 살스(Salses) 요새를 포위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 모든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걷어야 했고, 이는 내부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640년, 스페인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포르투갈이 수십 년간의 스페인 지배에 맞서 독립을 선언했고, 카탈루냐 지방 역시 과도한 세금과 중앙 정부의 억압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스페인 제국은 이제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붕괴와도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합스부르크의 거인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1639년 7월, 노이엔부르크암라인
역사는 때로 한 개인의 죽음으로 그 흐름을 바꾼다.
브라이자흐를 점령하고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던 베른하르트 폰 작센-바이마르는, 1639년 여름,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다섯이었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리슐리외가 보낸 요리사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죽음이 리슐리외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주인을 잃은 베른하르트의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새로운 고용주를 찾아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때, 리슐리외가 움직였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보내, 군대의 지휘관들을 매수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밀린 급료를 모두 지불하고, 앞으로도 프랑스 왕이 그들의 고용주가 될 것을 약속했다.
결국, 베른하르트가 평생을 바쳐 만든 강력한 용병 군단은, 그의 죽음과 함께 고스란히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다. 프랑스는 이제 독일 땅에서 가장 강력하고 경험 많은 군대를 직접 통제하게 되었다. 리슐리외는 마침내, 가장 위험했던 늑대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1640년, 숲속 은신처
야쿠프는 브라이자흐의 지옥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베른하르트가 죽고 군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그는 루카스를 데리고 다시 숲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다시 ‘숲의 형제들’과 합류했다. 그들의 리더인 칼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상은 변한 것이 없군, 서기.” 칼이 모닥불 앞에서 말했다. “왕이 죽고, 장군이 죽어도, 늑대들은 주인을 바꿀 뿐, 사냥을 멈추지 않는군.”
야쿠프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연대기를 펼쳤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이 봉사했던, 혹은 스쳐 지나갔던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프리드리히 5세, 틸리, 구스타브 아돌프, 발렌슈타인, 그리고 이제 베른하르트까지. 전쟁의 첫 막을 열었던 거인들은 모두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지도자의 얼굴조차 불분명한, 더 익명적이고 소모적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군대는 끊임없이 재편성되고, 새로운 지휘관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전투는 승패를 가르기 위함이 아니라, 다음 해까지 군대를 유지할 ‘콘트리부치온’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투쟁이 되어버렸다.
독일 땅은 이제 거대한 체스판이 되어, 스웨덴의 바네르와 토르스텐손, 프랑스의 튀렌과 콩데, 그리고 제국의 갈라스와 피콜로미니 같은 새로운 선수들이 피의 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야쿠프는 루카스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쟁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그의 첫 기억은 불타는 마을이었고, 그의 자장가는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이었다. 야쿠프는 아들에게 언젠가 평화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연대기에 새로운 장의 제목을 썼다.
‘얼굴 없는 전쟁 (The Faceless War)’.
그는 기록했다.
‘거인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굶주린 늑대들의 시간이다. 그들은 프랑스의 황금과 스웨덴의 강철을 무기 삼아, 독일이라는 이름의 시체를 물어뜯고 있다. 황제는 이름뿐인 군주가 되었고, 제후들은 외세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빵과 평화를 갈구할 뿐이다. 그러나 이 땅에 평화가 오기나 할까? 아니면 이 전쟁은 독일 땅의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될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기록할 뿐이다. 이 얼굴 없는 전쟁의 시대에,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이들을 위해.’
그의 펜이 양피지 위를 스쳐 지나갔다. 밖에서는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독일 땅 전체가 흘리는 눈물처럼, 비는 끝없이 내리고 있었다. 전쟁의 가장 어둡고, 가장 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