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버지니아 스티븐은 잠에서 깬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긴 불안의 터널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느낌으로 눈을 떴다.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밤새도록 어두운 복도를 헤맸고, 그 복도의 벽에는 뒤러의 자화상과 렘브란트의 아브라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란츠 카프카의 검고 깊은 눈이 번갈아 가며 걸려 있었다. 그녀의 꿈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어들은 형태를 잃고 색채와 감각으로 변모하여 그녀의 의식 속을 떠다녔다. 그녀는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그와의 대화가 끝난 것인지 아니면 이제 막 다른 형태로 시작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호텔 방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차가웠다. 창밖은 다시 잿빛으로 돌아와 있었고, 밤새 내린 비가 남긴 흔적인 양 유리창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무채색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난밤의 강렬했던 모든 감각들을 한낱 꿈이나 환상처럼 빛바래게 만들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쳐진 그의 외투를 보았다. 그것은 어젯밤의 사건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증거였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외투를 집어 들었다. 옷감은 차갑고 무거웠다. 그녀는 얼굴을 외투에 묻었다. 예상했던 남자의 체취나 담배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코를 채운 것은 훨씬 더 추상적이고 근원적인 냄새였다. 오래된 도서관의 책 냄새, 마르지 않은 잉크의 희미하고 알싸한 향기, 그리고 오랫동안 환기되지 않은 방의 먼지 냄새. 그것은 한 인간의 냄새라기보다는, 고독 그 자체의 냄새였다.
그녀는 외투를 입어보았다. 그녀의 몸에는 너무나도 크고 어색했다. 소매는 그녀의 손을 완전히 덮었고, 어깨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낯선 남자의 옷을 훔쳐 입은, 창백하고 퀭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이 외투를 입음으로써 잠시나마 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와 자신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만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의 고독은 그녀가 입는다고 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피부이자, 그의 뼈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잡아당겼다. 토비였다.
"버지니아, 준비 다 됐니? 기차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어."
"응, 거의." 그녀는 서둘러 외투를 벗어 침대 위에 곱게 개어두고 문을 열었다.
토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누이동생이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훨씬 더 깊어졌지만, 그만큼 더 위태로워 보였다.
"밤새 잠은 좀 잤어?"
"그럭저럭." 그녀가 얼버무렸다. "짐은 다 쌌니?"
"거의. 그런데..." 토비는 망설이다가, 침대 위에 놓인 검은 외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건 어쩔 셈이야?"
"돌려줘야지."
"어떻게? 그 사람 하숙집 주소라도 알아?"
"아니.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이 호텔 로비로 와달라고 쪽지를 남겨볼 생각이야."
토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버지니아, 제발. 그냥 두고 가면 안 될까? 그 사람에게는 외투 한 벌 값보다, 너와 다시 마주치는 고통이 더 클지도 몰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네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왜냐니!" 토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사람은... 건강하지 않아, 버지니아. 그의 정신은 너무나 어둡고 위태로워. 그는 소용돌이야. 가까이 다가가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빛 한 점 없는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지. 너는 지금 그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어. 그건 위험한 호기심이야."
"호기심이 아니야, 토비." 버지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이해에 가까워. 나는 평생 내가 느끼는 것들을 설명할 단어를 찾아 헤맸어. 내가 왜 세상과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것처럼 느끼는지, 왜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하게 행복하거나 슬퍼할 수 없는지.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그는 내가 느끼는 불안의 지도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내가 그를 외면하는 것은, 내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을 외면하는 것과 같아."
"그건 이해가 아니라 감염이야." 토비가 반박했다. "너는 그의 절망에 감염되고 있어. 어젯밤 정자에서 네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너는 마치 세상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어. 버지니아, 글을 쓰는 건 좋아.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네 영혼을 파괴할 필요는 없어."
"파괴가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재건축이야. 낡고 위선적인 건물을 부수고,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진짜 토대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그는 나에게 그 토대를 보여줬어. 그게 진흙과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그건 진짜야."
그들의 논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토비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버지니아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비는 그녀를 지키고 싶었고, 그녀는 탐험하고 싶었다. 결국 토비는 포기했다. 그는 누이의 그 고집스러운 탐구 정신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겠다."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정 그렇다면, 로비에서 만나도록 해. 하지만 약속해줘. 외투만 돌려주고, 긴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우리는 기차를 놓치면 안 돼."
버지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호텔 직원을 불러,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과 그가 머물 법한 하숙집 거리의 이름을 적어, 오전 9시까지 호텔 로비로 와달라는 짧은 쪽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그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했다.
한편, 뮌헨의 다른 한쪽, 값싼 하숙집의 차가운 방 안에서 프란츠 카프카는 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그의 영혼의 일부는 여전히 영국 정원의 그 춥고 바람 부는 정자 위에 남아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영혼의 일부는 그의 외투와 함께, 그 낯선 여인의 어깨 위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실수였다. 그는 자신의 방어벽을, 자신의 유일한 껍질을 그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는 이제 벌거벗은 채였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닿았던 자신의 손가락 끝의 감촉을 강박적으로 떠올렸다. 그 짧은 접촉을 통해 자신의 모든 나약함과 불안이 그녀에게 전염되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녀는 이제 그의 병을 알게 되었고, 그를 경멸하거나 동정할 것이다. 둘 다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어젯밤, 헤어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편지를 쓰려고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만 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고 종이를 꺼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친애하는 스티븐 양(Sehr geehrte Fräulein Stephen),
첫 줄을 쓰고 그는 멈췄다. 너무나도 차갑고 형식적이었다. 어젯밤 그들이 나눈 대화의 농밀함 앞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공허한 시작이었다.
그는 종이를 구겨버리고 다시 썼다.
버지니아에게,
그녀의 이름을 쓰는 순간, 그는 자신의 뺨이 불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친밀하고, 너무나도 대담한 호칭이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종이를 구겨버렸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어젯밤 외투를 드린 것은 충동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부디 잊어주십시오. 라고 써야 하는가?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것은 충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가 무너져 내린, 항복의 순간이었다. 당신과의 대화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라고 써야 하는가? '깊은 인상'이라는 말은 그가 겪은 지각 변동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얄팍한 단어였다.
그는 깨달았다. 언어는 실패했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던 언어는, 이 새로운 경험 앞에서 무력했다. 그들의 관계는 기존의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정도, 사랑도, 지적인 교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그 모든 것과는 다른, 이름 없는 무언가였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의 본질은 사라져 버릴 터였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편지를 쓸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외투를 되찾아 와야 했다. 그 외투를 다시 입음으로써, 그는 다시 자신의 껍질 속으로, 자신의 안전한 고독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들의 만남은 하나의 실수였으며,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니, 다시는 서로의 세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했다.
그것은 그가 내려야 할 판결이었다. 자기 자신과 그녀에게 동시에 내리는, 관계의 불가능성에 대한 최종 판결.
바로 그때, 하숙집 주인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카프카 씨, 웬 영국 숙녀분이 보낸 쪽지가 왔소."
카프카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쪽지를 받았다. 그녀였다. 그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그의 결심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운명은 그에게 마지막 변론의 기회를 주고 있었다.
호텔 로비는 아침을 맞아 분주했다.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이 오갔고,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버지니아는 로비 한구석의 벨벳 소파에 앉아, 마치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초조하게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9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회전문을 통해 한 남자가 들어왔다. 카프카였다. 그는 밤을 새운 사람처럼 창백하고 지쳐 보였다. 그는 외투를 입지 않은 채 얇은 정장 차림이었고, 그 모습은 왠지 더 연약하고 무방비 상태처럼 보였다. 그의 검은 눈은 로비의 소란 속에서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다가, 버지니아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버지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팔에 걸치고 있던 그의 외투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로비 한가운데서 마주 섰다. 주변의 모든 소음과 움직임이 먼 배경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와주셨군요." 버지니아가 먼저 말했다.
"외투를... 찾으러 왔습니다." 카프카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딱딱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든 감정을 배제하려 애쓰고 있었다.
"여기 있어요." 버지니아가 그에게 외투를 건넸다. "어젯밤, 고마웠어요. 덕분에 따뜻했어요."
카프카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외투를 받아들었다. 그는 서둘러 외투를 입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자신의 피부를 되찾은 듯, 그는 외투의 깃을 여미며 안도하는 듯한 미세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그의 갑옷을 입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그가 짧게 말하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는 자신의 판결을 내릴 필요도 없이, 이 차가운 행동만으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버지니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길은 단호했다. "이게 다인가요? 그냥 이렇게... 끝인가요?"
카프카는 그녀의 손에 잡힌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몸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끝나야만 합니다." 그가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왜죠?"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니까요."
"그건 어젯밤에도 알았던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작은 창문을 냈어요. 왜 그 창문을 다시 벽돌로 막아버리려는 거죠?"
"그 창문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가 마침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자의 잔인함이 담겨 있었다.
"스티븐 양," 그가 그녀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불렀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울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깨진 유리 조각입니다. 저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상처를 입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은 저에게 거울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밝고, 너무나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의 그 빛은 저의 어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소멸시켜 버릴 겁니다. 저는 그 어둠 속에서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저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될 겁니다."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그녀가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에게는 파멸의 위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나요?" 그녀가 거의 절망적으로 물었다. 그것은 그녀가 던질 수 있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카프카는 아주 희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쓴웃음을 지었다.
"사랑이라..." 그가 중얼거렸다. "사랑은, 제가 생각하기에, 두 사람이 함께 서로의 감옥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서로가 탈옥하지 못하도록 서로의 간수가 되어주는 거죠. 결혼은 그 감옥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이고요. 그것이 어떻게 구원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저 더 안락하고, 더 벗어나기 힘든 형태의 구속일 뿐입니다."
그는 로비의 유리창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가끔, 저와 세상 사이에 두꺼운 유리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유리벽 너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하고, 손을 잡고, 살아가는 그 모든 모습을요. 저는 그 모든 것을 동경하지만, 결코 그 유리벽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차가운 유리벽에 입김을 불어, 그 위에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서리를, 그 서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무늬를 언어로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제 글쓰기입니다. 만약 제가 그 유리벽을 깨고 당신의 세계로 건너가려 한다면... 우리는 둘 다 그 유리 파편에 찔려 피를 흘리게 될 겁니다. 저는 제 글을 잃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잃게 되겠죠."
그의 비유는 완벽했고, 잔인할 정도로 명료했다. 그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미완의 정의를, '불가능'이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키고 있었다.
버지니아는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논리는 견고했고, 그의 절망은 진실했다. 그녀는 그의 유리벽을 깨뜨릴 수 없었다. 아니, 깨뜨려서는 안 되었다. 그의 예술은 바로 그 절망을 자양분으로 삼고 피어나는 검은 꽃이었으니까.
"알겠어요."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유리벽을 존중할게요."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진실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에 가까웠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도 자신만의 유리벽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그처럼 세상을 거부하는 벽이 아니라,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글쓰기를 지켜줄 수 있는, 투명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그 방 안에서라면, 그녀는 그의 절망에 감염되지 않고도 그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결혼이란, 어쩌면 그녀에게는 감옥이 아니라, 바로 그 방을 얻기 위한 실용적인 계약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카프카는 그녀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아주 희미한,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안도감과,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영원한 상실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판결을 내렸고, 그는 이제 홀로 남겨졌다.
"기차 시간이 다 됐어, 버지니아."
토비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는 승자도, 패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것만은..." 버지니아가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한 장을 찢었다. 그녀는 그 위에 런던의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는 카프카를 향해 걸어가, 그것을 그의 외투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카프카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건 약속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냥... 가능성이에요. 당신의 유리벽 위에 남기는 아주 작은 입김 자국 같은 거죠. 언젠가 그 위에 무언가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토비와 함께, 호텔의 회전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카프카는 로비 한가운데에 오랫동안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그녀의 주소가 적힌 작은 종이 조각이, 마치 낯선 불씨처럼 희미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보지 않았다. 그는 문밖으로 사라진 그녀의 모습을, 자신의 유리벽 너머로, 아주 오랫동안, 마치 하나의 영원처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