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필로그
그토록 바란 공무원증을 목에 찬 날, 2년간 꿈꾸던 공무원의 삶이 현실이 되었다. 이것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꿈은 한 달 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주무관님이 어떻게 공부해서 그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선생님 그게 아니라…….” 뚜-뚜-뚜-. 또 끊으셨다.
이 민원인과 통화한 지 벌써 한 달, 이미 문제의 답은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전화기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엔 또 무슨 해결을 요구할까. 제발 무사히 넘어갔으면. 매주 한두 번씩 이렇게 통화하다가는 이 민원인과 정이 들 것만 같았다.
‘오늘은 제발 연락하지 마라.’
출근 때마다 되뇌는 말이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가방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목에 스-윽 걸었다. 이제부턴 세뇌의 시간이다.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여기 왔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까지 들릴 때마다 공무원증을 차고 심호흡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었다.
힘든 민원을 겪을 때마다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싶은 욕구를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공무원을 하고 싶은 이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민원인 때문이다. 내 주된 업무는 인허가이지만 환불 관련 민원도 종종 들어오곤 한다. 어느 날, 환불 관련 민원이 들어왔는데 명백히 돌려받을 수 있는 사유였기에 선생님에게 구매명세자료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인터넷을 이용하실 줄 모른다며 나중에 휴대전화 대리점에 가서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여전히 연락이 없어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저번에 자료 주신다고 했는데 아직 대리점 못 가셨어요?”
“아이고, 내가 요즘 몸이 아파서 갈 수가 없어…….”
이러다간 애꿎은 생돈만 날리실 거 같아 개인 휴대 번호를 알려드리고 문자로 받은 자료들로 환불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아니, 난 정말 못 받을 줄 알고 포기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후 그녀는 오만 원도 안 되는 적은 금액임에도 과분할 정도로 오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신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존재라는 사실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희열과 보람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이 밖에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당신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일 처리를 해주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경험들은 그간의 힘든 민원도 싹 잊고 다시금 힘차게 일할 힘을 준다. 그리고 다음 공무원 시험에는 꼭 합격해야겠다는 다짐을 일깨워준다.
일하면서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다시 도전한다고 혹은 열심히 한다고 이번엔 무조건 합격할 거라고 장담하지도 않는다. 노력만으로 원하는 것들을 다 이루기엔 삶이란 그리 녹록한 존재가 아님을 지난 이년 간 깨달았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는 항상 몰랐고, 시간이 흘러 돌아봤을 때 비로소 깨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조금 돌아가지만 괜찮다. 여전히 나에게 공무원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현장에서 깨닫고 있기에.
민원인들과 투덕대는 시간도 다시 공무원을 준비하는 데 의미 있는 형태로 연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선택들이 미래에 돌아봤을 때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그것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지금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