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터널을 헤맨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두 번째 공무원 시험은 이주를 남겨두고 있지만 현재의 실력으로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머릿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공부는 더욱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만함과 기대감은 금세 의구심으로 변질되었다.
‘서른 살이 되면 근사한 어른일 줄 알았는데 왜 여전히 불안할까.’
‘이십 대 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뭐 하고 산 걸까.’
‘공무원이 정말 나에게 맞는 직업일까.’
이따금 지금의 의지력으로 고3 시절로 돌아가면 수능도 잘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공무원 시험도 허덕이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렇게, 매일 책에는 공부한 흔적 대신 온갖 쓰잘머리 없는 푸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해도 안 될 것만 같은 기분 속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 속,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적어도 내겐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었다.
벚꽃이 휘날리던 어느 날, 독서실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멍을 때리며 시간을 보낸다. 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혼자 슬리퍼를 끌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처량하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 직장인들처럼 귀가하고 싶다. 일에 지친 그들의 뒷모습마저도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온갖 상념에 빠지며 매일 지나치던 건물 앞을 거닐던 중, 매장에서 흘러나온 가사는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우릴 위해 불렀던 지나간 노래들이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아이유 <에필로그> 중
아이유는 이 가사를 자신의 이십 대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함께한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그러나 내겐 취업을 위해 달려온 지난 이십 대의 시간이 스스로에게 묻는 소리처럼 들렸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너에게 의미 있는 기억일까?’
사실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많이 있었다.
‘이렇게 공부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졸업하고 공무원이나 준비할걸.’
지금까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난 이십 대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 당신이 이 모든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오, 충분히 의미 있지요
그러나 노래 속 가사는 그런 생각들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았다.
서른이 된 시점에서 열심히 달려온 지난 이십 대를 돌아보았다. 위 가사는 삶의 허무주의에 빠진 백수에게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지난 세월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라 인정이었다. 음악으로 위로받는다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는 과정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공부하면서 바닥까지 떨어진 백수의 자존감은 다시 계단을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