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초름 Nov 19. 2023

낯 뜨거운 감자

10대 때나 생일이 특별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생일 그거, 참 별 것 아닌 것 같아. 더욱이 올해 생일은 월요일이었으니까, 출근하고 퇴근하니 하루가 다 끝나가더라고. 그렇다고 생일이라고 휴가 쓰면서 유난 떨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깜깜해진 저녁에 집에 도착했는데 네 생일 선물이 와 있는 거야. 이걸 생일 선물이라고 해도 되나? 


감자 말이야. 네가 감자를 우리 집 현관 앞에 떡하니 두고 간 거야. 난 바보같이 주위를 두리번, 쳇, 네가 남아있을 턱이 있나. 


상자에 받는 사람 이름이 네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반송할 뻔했어.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었다면 네 이름을 마주하고도 반송했을 거야. 집 앞에 도착한 생일 선물 상자들 사이에 껴 있어서 뭉텅이로 들고 오긴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네가 내 선물을 줄 거라고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어. 당연하지 않겠니? 


우리는 며칠 전에 신호등 앞에서 만난 게 전부잖아. 그때 너는 ‘이게 얼마만이야~’하면서 내게 다가왔지? 얼마만이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로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걸. 음, 6년 만이네. 정말 이게 얼마만이니.


그게 끝이었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고, 이후로 우리가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잖아. 대체 왜 나한테 감자를 준 거냐니까? 아, 혹시 내가 너를 질책하고 있다고 생각해? 미안. 나도 당황, 특히 감자에 있어서는 황당한 마음에 어느새 네게 따지듯이 말해버렸네. 


그런데 난 정말 모르겠어. 너와 나, 감자, 이 셋이 함께 얽혀있는 추억이 있었니? 난 학생 때의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아서 말이야. 네가 반장이 되고 햄버거를 돌렸을 때, 내가 감자튀김을 유달리 맛있게 먹었나? 그건, 그때는, 뭐든 맛있을 나이였잖아. 나 지금은 감자튀김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건강에도 안 좋다니까 굳이 찾진 않게 되더라고, 관리도 할 겸. 


내가 감자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하긴, 감자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별 맛도 없잖아. 그러니까 맛 자체가 약하지 않냐 이 말이야. 그래서인지 우리 엄마는 요리만 하면 죄다 감자를 넣어대니까, 넌 우리 엄마한테 선물을 한 거나 마찬가지야. 난 오히려 고구마가 더 좋아. 달콤하잖아. 추운 겨울날에는 몸도 따뜻하게 해 주고. 그리고, 또, 김치랑 먹으면 물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네가 고작 감자 따위를 줬다고 실망한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할게. 무려 감자를 받았다는 기쁨이 들지 않는 건 맞지만, 나는 좀 전부터 꽤 신이 났어. 가벼운 축하 문자를 보낼 수도 있었고, 굳이 선물을 하겠다면 카카오톡으로 커피쿠폰을 보내거나 배송을 우리 집으로 바로 시킬 수도 있었는데, 너희 집으로 감자를 시킨 후에 다시 내게 보내준 그 마음이 어디야. 양도 많아서 꽤나 고생했을 텐데. 이 추운 날에. 


네게 연락을 해야겠어. 아무래도 정성스러운 선물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옹졸한 동창이 되기는 싫으니까. 궁금한 게 너무 많지만, 우선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할 거야. 아참, 내 취향은 보다 고구마라고 말해볼까? 너무 짓궂으려나? 


-띵동 


안녕하세요. 

네? 

옆집에서 왔는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감자 배송 온 것 없나요? 



2천만 명의 곽두팔씨
이전 02화 썸 탔던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