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해, 서운해, 서운해!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였는데,
1. 진정하기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발산하는 격동적인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니 뱃멀미를 하는 듯 울렁거렸다. 이봐, 이러면 나만 손해야. 심지어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호흡을 크게 내쉬어보자. 습, 하, 습, 하. 이런, 여전히 갑갑하다. 어떻게 하지? 그래. 이럴 때는 책이다. 책을 읽자. 책 속에 정답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 나는 전자책을 꺼내어 들고 갈등이나 관계에 대한 책을 무작정 검색해서는 모조리 허덕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아버지 어머니 알라신이여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주세요. 그렇게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나는 불현듯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화장실에 서서 더욱 빠르게, 솎아내듯이 책을 읽어나갔다. 오래 서 있다보니 종아리가 뻐근해져왔다. 곧장 진정이 되지는 않겠어. 진정은 포기하고 다음 단계로.
2. 이해해 보기
만사형통 역지사지 권법으로 가자. 나였다면? 나라도 중국에 갔겠지?
아니. 안 갔을 거다. 나였으면 소외감이 든다는 친구를 두고 여행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비행기표를 예매했더라도 취소했을 것이다. 잠시만, 지금 또 서운해지려고 한다.
진정하고, 진정이 안되지만 진정했다고 치고, 그렇다면 그들이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분명 나보다도 더 이해심이 넓고 배려심이 깊은 그들이었다. 그럴 애들이 아니었단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이를테면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던 게 아닐까? 민국이는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이별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만세는 휴직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달이면 복직을 해야 해서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차게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둘 다 일종의 심신 미약 상태였던 거지. 어라, 그럼 내가 서운한 게 잘못된 건가? 나 서운해해도 되는 거야?
3. 관점을 뒤집기
나는 왜 서운한가.
우리는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역지사지도 매한가지이다. '내가' 너였다면. 주체가 바뀔 수는 없다. 너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내 눈을 버려야 한다. 버리는 건 좀 그러니까 눈을 감는 걸로 하자. 그 둘이 나를 두고 여행을 떠난 건 그들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서는 그게 그다지 기분 나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이를 받아들이는 데 까지는 몇 톨의 이성이 필요했으므로 며칠의 밤과 며칠의 새벽이 소요되었다. 그들이 나와 매우 비슷한, 어쩌면 동일한 존재라고 착각했기 때문에(뉴런을 공유한 줄 알았다.)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가."라는 마음으로서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실망은 기대와 짝꿍이니까, 동일한 생각을 할 거라는 기대가 시발점이었겠다. 왜 그러한 기대를 했을까. 무엇을 근거로 지레짐작한 걸까. 그건 우리의 대화에서 정서적인 교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수제비 반죽 뜨듯이 그들에게 떼어 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존을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는 이기심. 이 안에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나'가 있다. 나를 떼어내고 그들을 채워 넣다가, 언젠가부터 내 안에 그들의 반죽이 자리 잡은 게 아닐까. 그렇게 너에게 나를 뺏긴 걸까. 글쎄, 내가 나를 버린 거겠지. 그렇게 흐릿해졌겠지. '네'가 '나' 안에서 무슨 힘이 있다고.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집중했다. 자신을 1순위로 두었기에 원하는 여행을 떠났다.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동시에 나도 그만큼 존중해주어야 한다. 오히려 제일 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라, 이거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
내가 원하는 건,
? ,
! ,
4. 이해하지 말기
결론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얘 진탕 삐졌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나 진탕 삐진 거 맞다. 하지만 삐지는 것도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 있다. 삐뚤빼뚤한 마음을 꺼내면 그들이 나를 두고 떠나갈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정렬하고, 또 정렬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 내 마음은 어떻게 해? 너를 이해하려다가 정작 외면해둔 내 마음은? 나는 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나 삐졌다. 어쩔래.
'버려질 게 무서워서 버리는 거 아니야?'
건강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욕해도 좋다. 당차고 괘씸하게 대답하자.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마음이다. 내 맘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나 너희를 이해하기 싫어.'
하기 싫어? 그럼 하지 마이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