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놓치고 있던 건

by 초름

배려심은 한 단어로 존재할 때 의외로 위험한 말이 된다. 대체 누구를 배려한다는 건데? 무게와 영점을 잘 맞춰두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버리는 게 배려의 이면이다. 시소처럼. 누구는 하늘에 붕 뜨는 동안, 누구는 땅에 턱 가라앉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힘을 실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배려인 줄 알았다. 평등하게. 누구도 하늘 꼭대기에 없고, 누구도 땅 밑에 없도록. 그런데, 말이 쉽지. 바람만 불어도 시소는 휘청거리기 마련이었다. 마냥 쓰러지게 둘 순 없어! 언젠가부터 나는 시소 타기를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와 온몸으로 지렛대를 붙잡고 있었다.


STOP. 이거 뭔가 잘못됐다.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잠시 내려가면 안 돼? 곧 발을 힘차게 딛고 올라서면 되잖아.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걸. 애초부터 쿵쾅거리며 중심을 주고받는 게 시소의 묘미인 것을!


정작 놓치고 있던 건 시소를 타고 싶어 했던 또 한 사람이다. 흔들리는 시소를 붙잡고 있던 나야 나.


이 생각을 계기로 하여 나는 더 이상 시소를 지키지 않기로, 올라타기로, 놀이를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노는 것도 해본 놈이 잘한다고, 시소를 타는 방법부터 깨우쳐야 했다. 답은 내 안에 있을 거야. 고민, 또 고민.


땅에 떨어진 타인을 외면할 수 없는, 예컨대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분명 저주받은 재능이다. 재능의 소유자 중 한 명으로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눈앞에는 떨어지려는 그들이 훤하다. 심지어는 이내 눈이 마주쳐버린다. 글썽이는 눈망울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고민, 또 고민.


이런 고민에 대해 무력해질 때마다 해설지를 뒤적이는 버릇이 있다. 어디 있냐고? 우선 핸드폰을 켠다. 최근통화목록 버튼을 누른다. 가장 최근에 통화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바로 엄마. 엄마찬스.


엄마! 뭐 해? 응 저녁 먹었어. 퇴근은 진작 했지. 오늘은 운동 안 하려고. 알겠어 내일은 꼭 할게. 있잖아, 저번에 내가 민국이랑 만세한테 서운해했던 일 기억나지. 그래 그거. 그 일에 대해서 더 생각해 봤는데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주위만 배려하다가 정작 나를 잃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왜 내 존재를 무시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는 간단히 말했다.

"너를 네 친구라고 생각해 봐."

늘 그랬다. 엄마는 나의 고민에 막힘이 없었다. 이후에 이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는데 그건 아마 엄마는 나를 당신보다 더욱 소중한 존재로 여겨서일 것이라는 찡한 확신 언저리의 감정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한 순간도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도출해 낸 풀이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자아를 두 개로 분리하는 것. 거부감이 들어도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만약 n 명의 타인 만나기로 했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는 타인 n+1 명과 만난다.' 다시 말해서 타인, 즉 배려의 대상에 나를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처음으로 이 방법을 도입한 일화를 예로 들자면, 바야흐로 나의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때였다. 친구 셋은 강북에 살고, 나머지 한 명은 지방에 살고 있었다. (살짝만 말해두자면 지방에 사는 그 한 명이 나다.) 친구의 어디서 만날까? 하는 물음에,

세 명이 강북에 사니까 강북에서 만나는 게 낫겠지만, 평소에도 그쪽에서 만났으니 한 번쯤은 지방에 사는 친구를 위해 강남에서 만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좋았어. 나의 의견을 말해보는 거야.

"이번에는 지방에 사는 나를 위해 강남에서 보는 게 어때?"

세상에. 문자를 보내고 나니까 심장이 쿵쾅거리더라. 이게 뭐라고. 하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니까. 곧 싱거운 답장이 도착했다.

"위치는 상관없어. 맛있는 거나 왕창 먹자."

아, 내가 거만했구나.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는데. 나만 배려를 할 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여태껏 친구들을 무시해 왔었던 거다. 유난스럽게도 그 순간에 눈물이 핑 고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이미 처음은 지나가 있었다. 이후로 마주친 응용문제는 적립해 놓은 개념을 적용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풀렸다. 점심때 만난 친구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브런치 카페에 가자고 해서 샌드위치를 시켜 먹고(이전의 나였다면 나 또한 배가 안 고프다며 굶었을 것이다.), 친구가 커피를 사겠다고 하면 맛있게 얻어 마시고(이전에는 불편한 마음에 되려 밥을 샀다.), 취업 준비를 과도하게 도와달라는 후배에게 거절을 하기도 하고(무려 3년을 시달렸다.) 말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때는 시작점으로 돌아가 자아를 분리하고, 나를 하나의 타인으로서 배려할 대상에 포함시키니 자연스럽게 답이 나왔다. 그렇게 넘지 못할 문제가 없는 듯 막힘없이 풀어나가다가,


그러다가, 맨 뒷장에서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 킬러문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