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속에서는 무리 없이 적용되던 풀이법이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타인 대하듯이 대할 수는 있겠으나, 인간의 여집합, 이를테면 물건 따위에게는 속수무책으로 져버리는 것이었다.
나의 우선순위는 한참 뒤였다.
돈이 먼저,
회사가 먼저,
청소가 먼저,
나 원 참. 나를 돈처럼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지. 안될 건 또 뭐야. 청소기에 감정을 이입해서는, 음, 먼지 빨아들이기 싫다고 파업해 볼까?
글쎄... 아무래도 조금 어색했다. 여기까지는 무리인 걸로.
해야 할 일 투성이인 삶이다. 취업을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만사취업형통주의자였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월급을 받는 대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의 출근길, 4시간의 어쩌고 업무, 점심을 먹고, 또다시 4시간의 저쩌고 업무, 그리고 2시간의 퇴근길. 이뿐이 아니다!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어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근력운동을 해야 하고, 간헐적 단식도 해야 하고, 혈당 스파이크도 막아야 하고, 밥 먹고 나서는 양치도 해야 하고, 매일 밀리는 집안일도, 설거지도, 빨래도, 분리수거도!
저는 밥 먹는 것 빼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요!
누가 그렇게 살래?
누구였더라. 특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나 또한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칭찬해 줬다. 그래서 정답인 줄 알았다. 그치만, 그치만... 이건 아니야.
어떻게 살고 싶은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고 싶은 건 바로 저라고요. 버릇처럼 엄마찬스를 쓸 까 했지만, 쓸 뻔했지만, 솔직히 엄청나게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당신이었다. 당연하다.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내가 취향 하는 삶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줄 수 없다. 오롯이 나의 경험으로 타격할 수 있다.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 그러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를 왕창 사들이기로 했다. 어떻게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야 잘 샀다고 소문이 나려나? 이런, 방금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건가. 어쩜 이 순간에서조차 일을 만들어내는지. 나는 굳이 굳이 일을 끌어 모으는 사람이구나. 태어나기를 노비로 태어난 걸 어째. 안 되겠다.
양반탈을 쓰는 거야.
세상 구석구석에는 '어떻게'가게가 널려있다. 거기서 파는 물건은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마음으로도 살 수 있다. 노비라면 지게를 진 채로 가게의 유혹을 뿌리쳤겠지만,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가격과 질을 수차례 비교해서 조심스레 하나만 샀겠지만, 양반탈을 쓴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양반은 아끼는 법이 없으니까. 몰라! 돈은 노비가 알아서 벌겠지.
그렇다. 영차영차 일을 하는 노비는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어쩌면 살아있는 내내 함께) 존재할 것이다. 맛있는 밥을, 허니콤보치킨을, 로제떡볶이를 먹고 싶은 자여, 배달비는 벌어야 하느니라.
있잖냐. 나 그래도 그 정도의 여유는 있다. 그러니까 양반탈을 썼을 때만큼은 그만 좀 모으고, 아끼고, 절제하고 싶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남발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