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다. 어떤 유튜버는 길에서 만난 팬한테도 덥석 마카롱을 쥐어주던데. 불쑥 핸드폰을 보급받고 SNS를 알게 되면서 행복지수가 떨어졌다는 부탄이 떠올랐다. 그 유튜버만큼 쉽게 내어주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도 더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에게 있어 뭐랄까, 엄청난 것이다! (고작 엄청나라니, 이럴 때마다 나의 어휘력이 통탄스럽다.)
얼마나 가까운 사이길래? 사실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가까웠던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각자 다른 반에 더욱 친한 친구가 있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1년에 한 번도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2년 동안은 가끔씩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럼 얼마나 잘 맞는 사이길래? 우리는 취향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다른 것 투성이니까 맞는 걸 생각해 보는 게 나으려나. 글쎄, 퇴사를 꿈꾼다는 것 정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같은 마음이 아닌 직장인이 있을까? 저런. 그럼 대체 뭔데!
그 친구의 이름은 유리인데 나는 보통 율리라고 부른다. 율리에게 빚을 지었다. 곱씹어보면 이게 빚인 건가 의구심이 드는 거지, 사실 빚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갚지 않아도 되는 건데 주고 싶은 거니까 되려 선물 같은 것이다. 나는 율리한테 선물을 받았고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줘도 줘도 또 주고 싶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고마움은 흐릿해지고 관성처럼 '마냥 주고 싶음' 상태에 있다.
율리를 만나지 않았던 2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에 다니던 나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거의 다 끊고 학업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하나 더. 우울에도 전념하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빠져있었다고 말해도 될까? 나는 헤엄쳐 나올 생각이 없었다. 우울낚싯대에 낚인 물고기였다. 갈고리를 빼고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로, 그렇다고 살아남길 포기하여 "먹어줘"하고 힘을 빼지도 못한 채로, 언제 건져질까 불안해서 퍼덕거리는 물고기.
그날도 기숙사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밖의 하늘은 쨍했다. 쨍쨍한 날씨까지는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내가 앉아있는 버스 안은 암막커튼을 치고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아서 동굴 같기도 했다. 딱 그때 유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별 거 없었다. 잘 지내냐고, 꿈을 꿨는데 네가 힘들어하고 있었다고, 걱정돼서 연락한다고, 그랬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내 반응이 별나버린 거지. 버스 안에서 눈물이 팡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좀 이상했다. 춤을 추는 소녀들을 봐도 팡, 신호등을 건너는 할머니를 봐도 팡,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봐도 팡. 모두가 불쌍했다. 애쓰고 있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고, 겁을 먹은 것처럼 보여서 걱정되었다. 내가 쓴 색안경의 색깔이 너무나 진했던 탓이겠지.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신나게 축구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사실 지금도 골키퍼는 불쌍하다. 외로워 보이잖아. 불쌍해!)
잘 만나지도 않는 친구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율리의 능력은 차치하고, 나는 그 순간부터 보답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의 기억이 미화되고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율리에 대한 '마냥 주고 싶음' 감정은 변하지를 않는다.
지금은 오전 열한 시. 좀 이따 한시에 율리를 만나기로 했다. 집 앞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고 율리가 먹고 싶어 했던 초코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내가 전부 다 사줘야지. 오늘의 날씨도 그날처럼 쨍하다. 아, 기분 좋아! 어린왕자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를 위해 소비하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맞다. 이건 철저히 나를 위한 소비이다. 율리를 만나서 밥을 사주고 커피를 사주는 건 오롯이 내 행복을 위함이다. 닭갈비에 볶음밥까지 싹싹 긁어먹자마자 카페에 가서 케이크를 나눠 먹는 게 나의 행복이다.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은 직관적이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무조건 행복을 얻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돈으로 물건을 얻은 데다가 행복까지 얻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율리와 먹는 닭갈비라니. 초코케이크라니. 이게 과연 돈으로 밥을 사는 것 같은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행복한 소비의 첫 도전으로서 마음이라는 필승법을 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