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늦잠의 여파가 크다. 늦잠 -> 늦은 점심 -> 늦은 저녁 -> 늦잠 -> 늦은 점심 -> 늦은 저녁 -> 늦잠
일요일 저녁까지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난감하다. 그래도 가끔은 월요일의 내가 고생하는 건 안중에도 없이 주말의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토요일 점심을 두시가 다 되어서야 먹었다. 세시에 옷 구경을 갔다가 네시에는 필름카메라를 현상하고, 다섯 시에 실외영화관에 자리를 잡은 후, 영화가 끝나니 시간은 여덟 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알 찬 하루도 오랜만이야. 배가 고플랑 말랑. 지금 식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자카야로 선택지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술 말고 쌀로 배를 만땅 채우고 싶었다.) 서둘러 타코 가게를 찾았다. 멕시코 영화를 보았으므로 멕시칸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은 세 개지만 메뉴는 여섯 개.
“많지 않을까?”
“절대. 내가 다 먹을게.”
“맥주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을까?”
한 입 거리의 작은 타코를 3등분 해서 먹으면, 게다가 맥주 한 모금씩을 곁들이면, 여섯 개의 음식도 금세 동이 난다. 우리는 늘 이런 대화를 나눈다.
“다음에 여기 오면 뭐 시켜 먹을 거야?”
각자 최고의 메뉴를 고르고, 서로의 선택이 옳았다며 칭찬일색이다. 멕시칸 음식점에서 키우는 자존감이라니!
밥 먹는 내내 남자친구에게 줄 음식을 포장할까 말까 고민하던 친구가 브리또를 사주겠다고 결심했다.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영화를 보러 나오지 못했다며. 사랑스러운 커플이 아닐 수 없다. 전날 나와 냉면을 먹으러 나와서는 오빠를 위해 만두를 포장하던 엄마가 겹쳐 보였다. 사랑은 27살 미혼 여성에게도 모성애를 가지게 하나보다.
하지만! 사장님의 답변 : 재료 소진으로 오늘 영업 마감합니다.
“난 진짜 사려고 했다고!”
그래 맞아 너 진짜 사려고 했어. 응 나도 봤어. 우리가 꼭 전해줄게.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진짜 재료 소진일까?
주문 마감은 9시. 지금 시각은 8시 40분. 우리가 주문한 후로 아무 주문도 없었다.
그렇다면... 소진된 것은 무엇이지?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낼 기력 소진으로 오늘 영업 마감합니다?
우리는 가게를 진작에 나왔음에도 혹시 사장님 귀에 들어갈까 싶은 마음에 속닥거리며 얘기하고 있었다. 야자 시간에 선생님 몰래 떠들던 경력을 힘껏 발휘해서. 쿡쿡거리기까지.
기력도 재료이니까~ 맞아 맞아~쿡쿡
오늘의 수고는 여기까지. 하며 살짝 일찍 셔터를 내리는 사장님의 일탈. 토요일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