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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Jul 31. 2024

일류라는 증거

며칠 전 백화점 안에 있는 영화관에 갔다가 피부관리샵의 할인 이벤트에 당첨되었다.(아마 이벤트에 참여한 모두가 당첨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인생 처음으로 피부관리를 받았다.

샵의 첫인상은 생각보다는 복작복작? 바쁘게 걸어 다니는 직원분들.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여성들. 나도 곧 쫄래쫄래 모임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32도의 날씨 아래서 한참을 걸어 도착했기 때문에 목이 말라서 물 한잔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웬 걸, 아주 작은 컵에 내어지는 따뜻한 차. 이게 뭐야~

두 모금이면 끝날 양의 차를 홀짝거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나의 담당 관리사가 도착했다. 피부진단을 받고,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아차, 핸드폰도 두고 나오라 했지.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서, 큰 창가가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 제일 안쪽 침대에 누우니, 기대만발이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여배우 관리를 직접 받는다니. 발가락이 간질거렸다. 양발 좌우로 파닥파닥거리기. 힘껏!

관리사는 내 머리카락을 정리하고는 여러 종류의 액체를 얼굴에 바르면서,


"뜨겁습니다..."

"차갑습니다..."


그닥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는데, 친절하습니다...

처음 마주한 공간이지만 아늑하게 느껴지는 침대에 누워서 얼굴을 조물조물당하니 잠도 솔솔 오고 평온해졌다.

그렇게 30분쯤이 지났을까, 문이 도로록 열리더니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시는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평온이 깨지는 순간이었나보다. 어머니는 "자," 얼추 이렇게 추임새를 건네시고는 바로 내 몸을 조사기 시작하셨다. 어깨랑, 등이랑, 겨드랑이랑, 명치랑, 팔뚝이랑... 흑흑. 손과 기계를 섞어가며 조사 놓으실 때마다 너무 아팠다. 너무너무 아팠다. 아픔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말했다.

"와하학"

나는 아프면 웃는다. 일류이기 때문이다. 웃지 않으려 해 보아도 자꾸만 삐져나오는 웃음. 통제불가. 힘을 줄 때마다 깔깔거리니까 어머니도 계속 재밌어요? 웃는 건 힘 빠지는 거니까 좋은 거예요~ 마음껏 웃으세요 라며 힘을 더 주기 시작.


"전으흥항항아프면푸항항웃음이나와요항항"


소용 없다. 이런 식으로는 암만 말해봤자 하나도 먹히지 않는다. 당연하지. 나라도 신나서 더 세게 눌렀을거야.

결국 어머니 손길이 닿은 곳마다, 그러니까 상체 전반이 빨갛게 파랗게 멍으로 물들었다. 한 여름의 날씨 속 나의 몸에 찾아온 이른 가을. 알록달록 절경이구나.

근데 이게 좀 마약 같단 말이지... 아프면서 개운하니까... 몸은 너덜거리는데 피가 쭉쭉 도는 것 같고... 앞으로도 받아볼까 고민이 들긴 했지만, 1회에 25만 원은 너무 비싸다는 판단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앰플과 괄사오일을 주문했다. 다 사도 10만 원이 안돼. 역시 인건비는 비싸구나.

부자가 된다면 피부관리랑 경락을 매주 받고 싶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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