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이가 저녁에 2중 약속 잡았길래 나도 약속 하나 더 잡았어.
그래그래.
체력이 엄청나구나 싶었다.
떠나줘서 고마워 친구들아. 나도 침대랑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오랜만에 동네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 넷.
34도의 후끈한 공기 속에 갇혀서 비빔국수와 보쌈을 먹고(사실 이때부터 집 가고 싶었다), 500m 거리의 카페에 가서, 300m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정윤이를 겨우 설득해서, 음료 네 개와 디저트 두 개를 시키고는, 으아 더워.
우리가 시키는 음료는 늘 거기서 거기다.
수진: 설탕+우유+커피
정윤: 상큼에이드 or 밀크티
해지: 초콜릿라테
그리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무 살 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달콤한 음료수에 질려버렸다.
언젠가 빵집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면 빵도 질려버릴 때가 오지 않을까. 아니면 초콜릿가게 아르바이트 라거나.
나는 비빔국수에 보쌈까지 싹 긁어먹었지만 더운 여름에 입맛을 잃은 수진이와 정윤이는 절반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디저트를 두 개 먹기로 한 것이다. 점심은 못 먹어도 간식은 말이 다르니까.
결국에 점심도 다 먹고 간식도 다 먹은 나와 해지였다. 간식을 줄이기로 했지만... 그치만 안 시키는 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는 그런거 할 줄 몰라.
물론 동네 카페의 디저트는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다.
있으니까 먹는 느낌? 계산대 앞에 놓인 디저트를 놔두고 음료만 주문하는 건 고난스럽다.
그런데 어라라,
맛있다. 음~
얘들아 나 이거 왜 맛있지?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
아냐, 여기 디저트 유명해.
며칠 전에 유튜브에도 나왔대.
나도 봤어. 월매출 천만 원이라는데?
우리 동네도 점점 시골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러다가 ~리단길로 불리는 거 아니냐며.
이런 이야기들로 두 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니, 제일 엉덩이가 가벼운 수진이가 결국 그 말을 하고 만다.
이제 가자!
그러면 우리 셋은 일동 앙탈. 30분만 있다가 가자아아아.
30분 후, 10분만 있다가 진짜 가자아아아.
그렇게 우리는 해산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겨우 5분. 이렇게 더운 날에는 동네 친구가 있다는 게 새삼 감사해진다.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무엇보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하마터면 정류장에서 녹을 뻔했어.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저녁 약속이 있다며 지하철을 탄 수진이와 해지. 이렇게 한바탕 놀고 또 놀 힘이 있다니. 친구들이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렸다면 젊음이 좋구나~하며 1년 전을 그리워했겠다. 그렇지만 너네는 나랑 동갑이잖아. 왠지 같은 시간 속에서 나 혼자만 늙은 기분이었다. 늙는다는 것에 아직까지는 걱정이 없기에 재밌을 뿐. 이런 게 상대성이론인 거지? 쿡쿡.
또, 1년 전과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다를까.
한 가지 알고 있는 다른 점은 사진을 덜 찍게 되었다는 것.
음식 사진도, 친구들과의 셀프카메라도, 날씨 사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