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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Aug 24. 2024

에르메스를 마시다

커피 계에 에르메스라는 바샤커피(BACHA COFFEE) 드립백을 선물 받았다. 명품 쪽으로는 문외한인 나는 온종일 오오 모드.


오오 이게 뭐예요?

오오 감사합니다. 오오.


들뜬 마음으로 선물을 챙겨 오긴 했지만 오오커피는 한 달이 넘도록 식탁 위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명품은 역시 다르네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비겁한 변명, 타이밍이 애매했어요.


아니~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풀카페인 커피는 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입장 가능 시간은 오직 오전뿐. 오후에 커피를 마시기라도 한다면, 예를 들면 점심을 먹은 후 라거나, 그날 밤에는 가슴이 불쾌하게 쿵덕거린다. 왜 12시간이나 지나서 난리인 건지. 진작에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았을까? 점심도, 저녁도 소화가 다 되었는데 카페인은 한 밤이 되어서야 활동 시작이다. 신비로운 인체.


그렇다고 회사 가기 전에 명품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드립커피는 뜨거운 물이 천~천~히 떨어지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큰데, 출근 전에는 절대 즐거울 수가 없으니까. 마음 한편에 '40분 차 타려면 5분 만에 마셔야 할 거야'라는 촉박함이 초시계를 재며 나를 재촉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마주치기만 하는 오오커피. 이번주 일요일 오전에 먹어줄게. 하지만 막상 일요일 오전에는, 무얼 했더라?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투명물품, 영양제 옆에서, 오오커피도 함께 옅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이 온 것이다. 아침부터 친구를 초대해서 커피 한 잔에 조막만 한 디저트를 먹기로.

점심에 돈가스를 먹어야 하니까 디저트는 소박하게 휘낭시에 한 조각만. 엄청난 절제력이다.


우리는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는 동안 머그컵을 준비하고 봉지를 뜯었다.


이게 커피계의 에르메스라잖아.

우리 이거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거니?

공짜가 더 맛있는 법이지.


와-,


엄청난 향이었다.

이게 커피야? 향수 아니고?

와-, 와-.

무슨 향인 걸까. 우리는 킁킁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아마도,


밀라노모닝(MILANO MORNING) : 따뜻한 생크림 속에서 녹고 있는 최고급 다크초콜릿 향

아이러브파리(I LOVE PARIS) : 헤이즐넛 시럽에 빠진 딸기를 엄지손가락으로 뭉개는 향


정도.


봉지에 남아있는 향을 몇 번이고 맡아대었다.

역시 명품은 다르네요. 이제 이 말을 할 수 있어!


맛은 생각보다 무난.

향이 온 집안에 가득하니 커피의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아서 문득문득 보리차 같기도 했다.

가끔 혓바닥에 커피의 쓴 맛이 스치긴 했지만, 오히려 향에 방해가 된달까? 그래서 절반만 마시고 남은 커피는 하루 내내 부엌에 두었다. 향기야 떠나지 마라. 떠나지 마라. 하며.


이런 향수를 갖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 첫 번째 명품 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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