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년 동안 전 세계에 안 가본 나라가 없는데, 한국만 한 곳이 없어요."
네네. 그러시구나.
한국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과, 한국이 좋아서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음, 한국에 태어나서 '아직까지' 살고 있는 사람? 배고프다. 냉동실에 얼려둔 성심당 튀김소보로 에어프라이어에 뎁혀 먹어야지.
-라는 생각이 드니까, 한국이 좋은가... 싶다. 편하구나, 싶다. 입맛에 맞는 거지.
어허, 성심당을 말하는 게 아니라- 물론 성심당도 입맛에 맞지만-
전국 맛집을 한눈에 정리해 둔 네이버지도하며, 싸고 깨끗한 대중교통, 또 뭐더라,... 사실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내 입맛에 맞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 가 보니 느껴진다. 아, 이건 아닌데, 하며 입맛이 갈 곳을 잃으니까. 그제야 알았다. 한국이 내 입맛에 제일 맞을지도 몰라. 당연하지. 여기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확신하고 싶지는 않다. 제일이라는 게 어디 있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게 어디 있어. 고기는 고기라서 맛있고, 비빔밥은 비빔밥이라서 맛있고, 튀김소보로는 튀김소보로라서 맛있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입맛에 안 맞는 건 저리 두고 맛있는 걸 잘 찾아가면 되니까. 이게 또 찾는 재미가 있당게.
출장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이렇게 안 맞는 나라라니.
"느낌 하나도 없어!"
마트에는 신선한 야채칸 대신 냉동식품이 즐비해있었고(심지어 조식뷔페에서조차 샐러드 한 조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이 나라는 감자튀김을 채소라고 생각한단다. 세상에.) 헬스장에는 러닝머신과 실내자전거가 전부였다. 길거리가 예쁘지도 않았고, 커피숍에 가서 카페라테를 시켰더니 웬 흑설탕액기스를 주었다. 치안이 미국에서 하위 20%에 드는 동네라 홀로 저녁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물론, 냉동식품 중에 고든램지 밀키트를 발견해서 맛있게 먹었고, 헬스장이 좋다고 해서 나의 삶이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고, 날씨가 참 좋아서 아무 길이라도 햇살에 비치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눈 마주치면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배려 가득한 미국 사람들까지.
그러니까 딱 2주 정도 지내고 돌아오기 좋았다. 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서 뭘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이 더 좋았다.
해외에 가면 보통 조증 상태니까, 당연스럽게 여기서 살고파~ 하는 마음이 드는 줄 알았다. 근데 또 그건 아니네?
갑자기 이전에 여행에서 만난 나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나라들 중에 입맛에 맞는 몇 나라를 골라서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말고!
시차적응에 실패해서 새벽 3시에 엄청나게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엄청나게 이른 아침인가.
출근하기 싫다... 하지만 앞으로도 튀김소보로를 먹으려면 일을 해야겠지... 평생 안 먹고 살 수 있을까?
묻어둔 퇴사 고민이 빼꼼 인사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