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쯤 강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연재를 하지 못했다. 시간적 여유도 그렇지만 속도 나지 않는 글쓰기는 아이들의 방학, 핑계면 핑계일까. 그동안 강아지는 폭풍 성장했다.
눈뜨면 달려와 아이들의 얼굴을 깨물고 손을 깨물던 장난꾸러기 같던 유아시절을 지나 강아지는 중형견이 되어갔다. 쉬야도 이불에 패드에 실수를 하던 강아지가 어느샌가 화장실에 쉬야를 누고 변을 보면서
집안일은 다행히 반으로 줄어갔다.
그래서 더 예뻤던 것일까, 배변습관이 길러진 강아지는 매일이 감사하고 사랑스럽다.
흥건한 오줌을 치울 때면 강아지를 째려보곤 했는데 이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니 웃어주는 날이 더 많아졌다. 만져주고 싶고 사랑스러웠다.
여자 강아지다 보니 생리도 하게 되었다. 첫 생리를 하기 전에 중성화를 해야 한다는데 시기도 시기지만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강아지는 폐경기가 없다고 한다 1년에 2번 정도 할 것 같은데 친정엄마께서는 교배를 한번 해보라고 권하셨지만 내 강아지가 임신한다는 사실이 밑기지 않고 요즘 워낙에 강아지도 많이 버려지고, 끝까지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이 되었다.
아주 추운 날에는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웬만하면 바깥공기를 쐬어주며 같은 발걸음을 했다. 처음엔 정신없이 냄새 맡고 사람보다 먼저 가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걷고 뱅글뱅글 돌며 실내배변도 참 잘한다.
강아지 배변은 처음에 줍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민폐를 보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세우고 검은 비닐에 강아지 응가를 담기 시작했다. 더럽지만 다른 사람들이 밟으면 더 기분이 나쁠 것이기에 강아지를 응가를 줍게 되었다. 손으로 들고 다니며 사람들도 인식이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응가를 주으면 뭔가 뿌듯했다. 배설물을 치워 그래도 깨끗해진 곳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도 개선이 되니까
나한사람이라도 지켜야 하는 건 맞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강변에 강아지 배변이 널려있다.
정월대보름날 끈을 놓쳐 개를 잃어버릴 뻔한 사건도 잊지 못한다 뭐가 좋은지 주인도 모른 체 팔짝팔짝 뛰던 개가 아이들은 개 잡으라고 울며불며 "이슬아 이슬아" 넋 놓아 울고, 개는 아주 행복한 듯 날뛰고 있었다.
그때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거기에 비숑한마리가 있어 개 냄새 맡더니 그 자리에서 잡혔었다. 강아지의 날렵함은 사람도 말릴 수 없다. 하마터면 잃어버릴뻔한 이슬이를 많이 원망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로 강아지의 목줄은 2개가 되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산책을 힘들게 시키겠다는 의지.
힘이 얼마나 센지 같이 달리기 하자며 목에 힘을 준다. 달리기도 안 하던 내가 같이 달린다. 그것도 못쫓아아오니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개를 보니 어이가 없다
강아지는 폭풍성장한 후 기존에 사료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름기 없는 고기 삶고, 닭가슴살을 먹이고, 고기는 잘 먹는데 사료를 주니 안 먹어서 다시 새로 바꾼 사료에 통조림을 주니 싹싹 비워내었다. 새끼 때는 정신없이 퍼먹던 사료도 이제 슬슬 중형견의 입맛이 되는지 입이 짧은 개가 되어간다. 아무거나 먹음 되는데 안 먹고 배가 꺼져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좋은 거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어쩔 수 없는 사랑인가 보다. 아이 사랑에서 개사랑으로 가고 있다. 산책도 내 전담이고 힘이 달려서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어쩔 수 없는 개엄마가 되는 내 신세 그래도 힐링이다.
오늘 비가 개었으니 오후에 산책 한번 가야겠다. 나 혼자 뛰는 것보다 같이 뛰며 산책하니 의지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다.
바다에 놀러간 강쥐 , 너 호강하는 구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