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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15. 2022

영.알.못이 해외서 외국인과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

손자병법에도 없는 이야기.

"저건 분명 Fu** you였다!"


토론토 욕데일몰 입구 작은 사거리.


앞차 백미러 앞으로 그 길고도 퉁퉁한 흰 백색의 오른 가운데 손가락 하나가 길쭉하게 내밀어져 있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여기까지 하다 그치면 좋았을 텐데


왼쪽 창문을 열고 혹시 내가 못 봐서 자기 손가락만 힘들었을까 걱정되었는지 이번엔 왼쪽 손가락 가운데를 길쭉하게 내밀며 그 험한 욕이라는 "F*** you"를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익숙하지 않은 서양 욕이라서 그런지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젊은 친구들이야 워낙 서양문화가 낯설지 않아 기분 나쁘고 모욕적일런지 모르겠지만. 중년을 넘기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이 욕은 사실 놀이에 가깝게 느껴진다.


영화나 주말의 명화 정도에서만 서양의 관습이라는 것을 담 넘어 보듯 어렴풋하게 보아 다. 내가 해본 적도, 나를 향해 누군가 진짜 화나서 날려본 적도 없는 제스처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그리 모욕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백미러로 계속 나를 째려보던 50대 백인 아주머니는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데 5초가 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리 한 짝 내리고 몸을 비틀어 나머지 다리 하나 내리고 운전석에서 내리다 다시 주저앉더니 한쪽 손은 문짝에 다른 손 하나는 유리 창쪽 전방 프레임을 잡고 버둥거린다.


도와주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그녀의 힘듦을 가볍게 해주고 싶었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드디어 차에서 "나옴"과 함께 "일어섬"에 성공하더니 나에게로 "굴러오고" 있었다.


이 표현이 조금 과격해 보일는지는 몰라도 분명 그렇게 보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큰 아주 큰 움직이는 무엇인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최소 150kg은 족히 넘어 보였다.


"내가 죽기에 딱 좋았다."


차로를 변경하다 갑자기 끼어든 내가 몹시도 못마땅한 그녀는 그 손가락 욕을 서너 번 했음에도 원하는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자 그녀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방법인 "내림"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분명 사과를 했으나 나의 사과는 내가 손가락 욕이 생소하듯 그녀에게도 낯설고 충분하지 않아 보인 듯했다. 한국식 아주 정중한 고개 인사를 두어 번 했으나 분명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돌진하듯 "굴러오시던" "무엇"께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데시벨의 시끄러움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빠르게. 크게. 무섭게!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내가 그리 이야기를 하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토익의 리스닝 시험 화자의 말이 얼마나 느리고 친절했는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와. 소리 지르는 자.

누가 보면 그녀의 일방적인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귀 기울여 듣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한동안 도저히 들리지 않는 그저 "욕일 것이다"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쏟아내던 그 아주머니는 이 동양인이 자신의 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마지막. 손가락 긴 욕을 한번 하늘에 높이 날리더니 다시 굴러가실 준비를 한다.


그냥 쏘리~~를 할 것인가. 이 악다구니를 들었으니 모자란 영어로라도 나도 반항을 해볼 것인가.


이대로 당하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자. 나도 하자. 결심을 했다.

하지만 단어는 떠오르는데. 주어 동사 목적어 서술어. 문장 구성이 빨리 되질 않는다.

강하고 다양한 욕을 구사하여 나의 이 모멸감을 갚아줘야 하는데 아는 영어 욕이 몇 개 되지 않는다.


뒤돌아서 다시 그 육중한 몸을. 차로 굴리기 위해 씩씩거리며 들숨과 날숨 소리를 그르렁 대던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아주 익숙한 악다구니를 날렸다. 그것도 십오 초 정도나 되는 긴 문장으로.


에라이~~""""""야. 너는 눈****! 이런 ***  *********  미안하다고 했잖아! 너 아까 손가락으로 **  하더니 ****** 이 **** 그렇게 ***** ****! **고. ****이 어디서 ****!!! 미치겠네. 너만 소리 지르냐! 환장하겠네. *****. 뒤***.! 어쩌고 저쩌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 옛날 막걸리 한잔 마시고 장기 두다 장기판 엎으며 멱살잡이 하던 시골 동네 어르신으로 빙의해버렸다.


오리지널 한국말로. 시원하게 쏟아부었다.


혼자 생각했다.


참 찰지고 찰지다. 시원하다!


마법이 일어났다.

절대 그럴리 없는데 다 알아들은 것 같았다. 꼭 그녀의 표정이 다 이해한 것 같았다.


돌아서던 그녀가 멈칫한다.


그러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가 잘못하지 않았냐 얘기를 한다.

그녀가 흥분을 가라앉히자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정식으로 "아임 쏘리"를 몇 번이고 해 줬다.


이제야 만족한 듯 그녀는 두 손을 허공에 젓더니 다시 그 어려운 탑승을 시작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이긴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날 그 일이 큰일 없이 마무리된 뒤 내가 느낀 한 가지.


외국서 싸울 일 있다면. 정말 화가 나고 못 참겠다면. 억울해 죽겠고 미치겠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유창한 영어가 안돼 화병 생길 것 같다면.

(단 상대가 먼저 과하게 욕을 했고, 그다지 큰 싸움이 아니라면.)


한국말로 찰지게 몇 마디는 해보자. 거다. 통하더라 이거다.


예를 들어 내가 시험 삼아해 본 곳이 국숫집이었으니.

항상 그릇 안 국물 속에 엄지 손가락을 담가서 서빙하는 베트남 쌀 국숫집 베트남 아줌마도 "에이 이게 뭐 하는 거야"라고 한국말로 혼자 짜증을 내자. 손가락을 빼며 미안하단다.


신기하다. 들리나 보다. 느껴지나 보다.


맥도널드에서 주문한 음식이 너무 늦어지고 순서가 바뀔 때 혼잣말로 "아이고 왜 이리 늦어. 저거. 내 거보다 늦게 시켰는데..!" 이렇게 한국말로 투덜거리자. 금발의 아르바이트생도 눈 웃음을 지으며 곧 나온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사과하더니 미안하다며 애플파이 하나를 더 얹어주더란 말이다.


시비를 걸면 안 되겠지만.

정당하다고 느껴지는데 외국서 영어가 안돼서 억울하다면. 당신도 욕만 먹고 있지 마시고 아는 욕이 있다면 한국말로 시원하게 한 번쯤 해보시라!


세상 신기하게 "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있다"라는 공포감을 영어 없이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단 이것을 꼭 기억하시길!

찰. 져. 야.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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