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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Feb 18. 2023

학교 보내지 마랍니다.

캐나다 겨울밤 하늘만 보는 아이들

초등학교. 아니다. 국민학교에 다녔다.

그 당시 방학 하던 날 그 당당하던 나의 발걸음은 개선장군 같았다.

 

내손엔 개근상이 들려 있었다.


죽을 것 같이 열 나서 아파도. 다리가 부러져서 걷지 못해도.

학교를 하루 빠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를 빠지지 않았으니 넌 성실한 애야!라고 학교에서 인정해 주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하기만 했었다. 성실성이라는 건 어떠한 일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간 됨됨이에 대한 지표였던 시절. 한 학기 다니면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증표인 "개근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장중 하나였다.


 "이겨낸 자" "굴복하지 않은 자"가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잘난 놈" 표딱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개근상을 매번 받던 나는 이미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랑이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던 날.

부모님께 드리는 당부의 말을 전하던 교장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아이가 아프다 하면 제발 집에서 쉬게 해 주세요.

억지로 보내면 아이의 신체적 정서적 교육에 해가 됩니다.

아이 입장에서 아이를 생각해 주세요.


이게 무슨 낯선 이야기란 말인가.

적응하기 힘든 혼란함이 느껴졌었다.


그 자랑스러움이 사실 진짜가 아니었다...

이 얘기?


개근상으로 나는 이미 훌륭한 사람이었었다.

분명히. 그때는.


내 나이 40이 되던. 그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쇠망치로 뒤통수를 내리치던

교장선생님의 한마디가  혼란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캐나다 토론토.


결국 이곳에 와서 나는 그 어릴 적 느꼈던 개근상 받은 "훌륭한 어린이로 자람"에 대한 마지막

자긍심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했다. 


겨울이 되면 아이는 아침마다 하늘을 본다.

눈이 많이 올 것 같은 날에는 전날부터 하늘을 본다.

그리곤 끊임없이 물어온다.

눈 와?

눈 온데?

많이 온데?

고드름 나무에 열린데?


눈을 좋아하는, 겨울 하늘을 사랑하는, 얼음고드름을 기다리는

감성 풍부한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눈 오는 겨울밤 군고구마 먹으며

눈에 대한 시와 눈 노래를 들으며 겨울밤 하늘을 보며

아빠와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리라 노력하던 그때.


아이가 겨울밤 눈을 기다리는 이유를.

아침 햇살 받고 반짝이던 나뭇가지의 얼음 고드름을 보며

그리 환하게 행복하던 이유를.


개근상이 평생 자랑스러웠던 아빠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손발이 부러져도 깁스하고 목발 짚고 학교를 가야만 하던 아빠와 달리.


 눈 많이 오면 길 막힌다고

길 미끄러우면 위험하다고

전날 저녁이나 아침 일찍 학교에서 보내오는 한통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부모님께.

 애들 보내지 마세요

이유요?


눈이 오니까. 스노데이

길 미끄러우니까. 프리징데이


학교 문 닫습니다.


캐나다 토론토 다운스뷰 파크.


아프지도 않은 아이들이

 눈 많이 오길 기다리며

나뭇가지에 그 예쁜 얼음고드름 주렁주렁 열리길 두 손 모아 빌면서

창가에 매달려 하. 늘. 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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