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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Feb 27. 2023

내가 굴을 소금에 찍어 먹는 이유.

 

"일요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작은 접시에 놓여 있는 굴을 보며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꼭 일요일 점심시간. 겨울이 다 가기 전. 그때 그곳에 겨울 굴을 한 줌 올려놓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 시절 식탁 위의 그 모습은 지금 우리가 굴을 먹을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겨울철 일요일에 굴을 집에서 먹는다면 떠올리는 모습.

시뻘겋게 버무려진 김장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수육을 나무 도마에 올려 그 돼지비계까지 숭덩숭덩 썰어낸 그 기가 막힌 조합을 떠올리지만...


그랬다.

아버지의 부름과 발견 그리고 앉음과 확인의 과정을 거치며

그 당황했던 낯섦의 기억을 나는 기억한다.

비릿한 굴을 어린아이가 좋아할 리도 없거니와 그 시절 그 귀한 굴을 먹는다는 호사를 어렵게

각인시키며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면 의례 갖춰야 할 그 순서 혹은 방법.


김장김치와 수육의 유혹으로 꾀인 다음

"먹게 함"의 기술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마치 입에 쓴 비싼 보약을 먹어야 하는 그 거룩한 의식처럼.

무겁게. 침착하게. 그리고 성스럽게. 우리를 부르셨다.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일요일 점심. 겨울. 식탁 위의 모습은 이랬다.

우리 집서 가장 귀했던. 그래서 반가운 손님이 오셔야만 찬장 저 위에서 조심스레 꺼내놨던

"본차이나"라고 불렀던 그 흰 접시 위에 놓인 굴. 기름소금 한 종지. 젓가락 네 개. 그게 끝이었다.


김치? 수육? 마늘? 고추? 상추? 그런 건 아예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초장이나 쌈장 그것도 아니면 고추장 같은 것들이 아예 없다. 왜냐고? 나도 모른다.

그저 참기름에 살포시 적셔진 소금 한종지만이 놓였었다.


일요일. 그렇게 어머니는 애써 외면하며 부엌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그 사이. 아버지. 형. 누나. 그리고 나의 성스러운 일요일.

굴과 소금을 입에 넣어 씹는 의식이 겨울철. 아버지와. 우리의 식탁. 에서 펼쳐지곤 했다.


아무 말 없이 한점 한점. 미사시간 영성체를 입에 넣는 천주교 교인처럼 우리는 그것을 받아 모셨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 한창 사춘기를 지나던 그 고약한 심술보를 매일 내보이던 큰형도,

살갑게 아버지에게 애교 부리며 할 말 다 하던 누나도,

왜 고추장이나 초장을 찍어 먹지 못하냐고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했으니.

어리광을 부려봤자 고작 어머니에게만 통하던 이 집 가장 "어린놈"이  

그 궁금함을 "물어봐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이가 들어 겨울이 되고 일요일이 되며 또 한 아이의 아비도 되었건만.

나는 왜 내 아버지가 그러했듯 그 굴과 함께하는 그 경건함을 내 아이에게 주지 못하는 걸까?

왜 초장 없는 단 한 접시의 굴과 소금의 의식을 아이와 함께 나누지 못하는 걸까?


아니다

어쩌면 초고추장이라도 있어야 먹을 수 있다고 고집부리는 아이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인지 모른다.


그 부족함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굴을 마주할 때면 그 빛나던 본차이나 접시에 대한 추억 속 예의로 오직 소금을 찍어 먹는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른다.


왜 아버지는 굴을 드실 때 소금만을 식탁에 올리셨는지.

어머니는 왜 부엌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그 머리 좋던 형과 누나는 묻지 못했는지.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는지.

그 비릿함을 왜 참아내며 먹어야 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나는 오늘도 굴을 먹을 때면 당신께서 그러하셨듯 기름소금장 한 종지면 족하다.


누군가 겨울이 되어 굴을 마주할 때면 오직 소금만을 필요로 하는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먹어?

나의 대답은 그저 하나다.


당신께서 그러하셨음으로 나도 그러할 뿐이라고.


oh My Darling Clementine Song by Magnus Car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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