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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블 Nov 20. 2024

세상이란 참 만만하지 않아_
선인장 요거트 (1)

항상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직장 편)_1

 "이런 씹..."


 사방이 빡빡하게 책상으로 차 있는 공간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낸 사람은 장소에서도 이질적이었다. 사람들이 책상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는 데 반면 그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엔 김웅천이라 적혀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그의 입이 일그러지더니 다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 xx.... 젠장..."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김웅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단정하지 못했고 턱에는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단정하지 못한 것은 그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셔츠도 대충 다려 입은 듯했고 신발 뒤축도 구겨신은 채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의 신발 상태를 확인하다가 시선을 위로 올려 그가 바라보는 곳을 같이 보았다. 그리고 책상의 무언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앞만 보고 걸어갔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그의 책상에는 흰 봉투가 놓여있었는데 그 봉투 위에는 검은색의 다섯 글자가 가지런히 적혀있었다.


  해 고 통 지 서


 김웅천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요즘 안 좋은 일이 연달아서 일어나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화룡점정을 찍는구나 싶었다. 

 몇 달 전 그는 삼 년이나 사귀었던 여자친구한테서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안 좋은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집에 도둑이 들었었다. 집 문이 열려있어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값비싼 시계나 가방, 그리고 노트북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전부 없어져 있었다. 그게 이번 연도 마지막 최악의 일일 줄 알았는데... 


 까마득해지는 그의 시야에는 갚아야 할 대출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런 망할 거지 같은 세상.."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뱉었다.


 그는 단언컨대 이제까지 삶을 대충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열심히 살아왔었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결론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고웅천은 기획자로서 경력이 벌써 8년이나 되었다. 이 회사에서도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고 꽤나 기획일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것은 그를 찾아온 진상 고객 때문이었다. 그 고객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고 사업 방향성에 대해 같이 기획해 주길 바랐다. 

 사업 아이템은 새로운 영어 앱이었다. 잠재적 고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새로운 여러 가지 기능을 넣어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연기를 하며 노는 기능, 동시에 AI가 발음을 교정해 주는 기능, 마지막으로는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해서 캐릭터의 탈이 씌워지는 기능들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객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아이디어가 하나에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있다. 좋은 사업이란 목적성이 뚜렷하게 고객에게 전달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하지만 그의 고객은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객은 화가 났고 본인이 돈을 주고 지금 의뢰를 맡겼으면 본인의 아이디어를 최대로 살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웅천은 고객의 완고한 태도를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가 원하는 방향에서 가장 이상적이게 사업기획을 짜나갔다.


 그가 짠 포트폴리오를 받고 고객은 만족스러워했고 그것을 들고나가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안 좋은 방향으로 풀려버렸다. 그리고 책임을 사업 상담을 해준 고웅천에게 돌렸다. 회사에 지속적으로 전화를 했고 컴플레인을 했다. 

 처음에 회사에선 고웅천을 보호해주려고 했으나, 지속적인 고객의 컴플레인에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졌고 더 이상 회사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고웅천에게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고웅천은 책상 위에 있는 해고 통지서를 집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탓, 날씨가 더러운 탓, 본인이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탓... 열심히 열심히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 세상의 탓. 모든 것이 답답했다. 삶이 지겨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열심히 살아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열심히 살아라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그 후엔 열심히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 그러면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는 그 말들을 들으며 항상 눈앞의 것을 허덕이며 헤쳐나가기에 바쁜 삶을 보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세상이 정답이라고 하는 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인생이 풀려가기는커녕 점점 꼬여가는 것 같았다. 열심히 살아도 항상 다른 사람과 경쟁하면서 더 바쁘게 뛰어가듯 살아야 하는 인생...


 "하아..."  크게 한숨 쉬었다. 


 모든 일이 다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저 모든 것이 피곤하고 지칠 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편안하게 지내다가 오고 싶었다. 

  본인 스스로가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잠시 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본인이 가려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가던 중간 그는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포스터는 온통 초록색 잎이 뒤덮여 있었고 그 사이엔 오두막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엔 오두막이랑 풀 그림을 피해 작게 글이 쓰여있었다.


 '어서 오세요, 숲의 카페에.'


 그 밑에는 그 장소 위치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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