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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Aug 28. 2023

황혼 육아의 덫

환영은 짧았고 고단한 삶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누가 뭐래도 남보다는 가족이 먼저다. 하지만 요즘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맞벌이하는 딸이 안쓰러워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던 그녀는 손주를 돌봐주기 위해 낯선 도시로 이사를 결심했다. 딸이 사는 아파트의 바로 옆 동으로 이사를 했다. 추운 겨울 날씨만큼 낯선 도시의 겨울은 더 시리고 매서웠다. 3살, 4살 연년생 손주 둘을 낳은 딸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사위는 공무원이다. 사위는 말은 없는 편이나 묵묵히 살림과 육아를 제법 많이 도와주는 편이라고 딸이 말했다.

     

딸은 연년생을 낳은 후 2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혼자 육아에 허덕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그제야 한숨 돌린다는 딸이 그저 안쓰러웠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딸이 사는 집에 들러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딸이 좋아하는 육개장도 한 솥 끓여 한 봉지씩 담아 냉동실에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가을부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그때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도 숨 좀 쉬자.” 이 한마디에 그래 너도 쉬어야지 하며 넘겼다.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손주를 돌봐줄 시터를 알아보고 있는데 마땅한 사람을 못 구했다며 딸아이는 푸념 섞인 전화를 자주 했다. 그 말이 꼭 ‘엄마 좀 도와줘.’라는 소리로 들렸지만, 선뜻 엄마가 봐줄게라는 답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황혼 육아만큼 힘든 일은 없다며 서로 손사래를 쳤다. 아무개는 손주 봐주고 딸아이와 사이가 멀어졌네, 또 누구는 손주를 안아주다 디스크가 터졌네 등등 황혼 육아를 하는 이야기 중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구한 시터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딸은 복직했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딸아이의 울음 섞인 전화를 또 받고 말았다. 첫마디가 “엄마, 너무 힘들어”였다. 맞벌이의 숙명인 건지 아니면 여자의 숙명인 건지 퇴근 후 돌아오면 사위는 아이를 돌보고 자기는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다시 자기 몫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시터가 갑자기 그만두어 다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매일 이런 삶이 이젠 지친다며 딸아이는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퇴직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사실 사위보다 월급이 많은 딸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쉽사리 퇴직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 속을 알고 있기에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에 나도 점점 마음이 기울어졌다. 어미로서 이제는 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엄마가 갈게.”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시터를 구하기 전까지 혼자 딸아이 집에 머물 생각이었는데 남편이 이참에 그냥 딸이 사는 도시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은퇴한 남편은 딱히 하는 일이 없었던 터라 이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훗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너무 아팠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딸이 사는 신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딸과 사위는 너무 고맙다며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환영은 짧았고 고단한 삶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요즘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딸아이 집으로 향한다. 조금이라도 딸이 더 자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용히 사위와 딸이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손주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마친 딸 부부는 이내 회사로 향하고 이제는 손주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딸아이 집으로 넘어오라고 한다. 손주가 먹을 음식에는 간을 덜해야 한다기에 나는 또다시 주방에서 두 번째 요리를 한다. 실컷 만든 음식을 두고 손주들은 장난을 치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어느새 8시 반. 남편과 나는 손주들을 하나씩 맡아서 세수를 시키고 옷을 입혀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간다. 정확히 9시가 되니 노란색 버스가 온다. 아이들에게 “안녕 잘 갔다 와.” 인사를 하고 남편과 함께 다시 딸아이 집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벗어 놓은 옷과 손주들 장난감으로 집은 어지러워졌고 남편은 말없이 청소한다. 나는 주방으로 향해 가득 쌓인 설거지더미를 보고 한숨을 쉬어보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직 아침을 못 먹었네.”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다시 몸을 움직인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두 번째 설거지를 마치고 드디어 한숨 돌린다. 남편은 아이들 하원할 때까지 집에 가 있겠다고 하며 훌쩍 떠난다. 나는 손주들이 돌아오면 찾을 간식거리는 없는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먹을 간식을 만든 뒤 소파에 누워 오늘 아침 못 봤던 아침드라마 다시 보기 버튼을 누른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고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3시 반. 갑자기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손주 하원 시간이다.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1층 맘스테이션으로 나오라고 한다. 손주들이 집에 오면 깨끗했던 집안은 다시 난장판이 되고 딸아이와 사위가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손주들과 놀아준다. TV를 최대한 보여주지 말라는 딸아이의 부탁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노부부의 체력은 손주들의 성장과 반대로 점점 약해져 간다.  

    

손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딸 내외는 더없이 바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멍들어가는 나와 남편은 컴컴한 저녁이 되어야 온기 없는 집으로 향한다. 서로 말이 점점 줄어든다. 더는 딸과 사위의 고맙다는 말로 내일을 버텨낼 방도가 없었다. 손주들의 재롱은 좋지만, 육아는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원치 않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딸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 더는 누구를 위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안의 나가 없어지니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이 밤이기를 바라고 고단한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 말할 수 없다. 한동안 나의 초점 없는 눈을 눈치챈 남편이 넌지시 딸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지금 많이 힘들다. 더는 아이들을 봐줄 수 없으니 다시 시터를 알아보라고. 손자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고 손에 잡힌 주름은 더 깊어졌다. 무릎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고장 난 몸보다 마음에 찾아온 불치병은 나를 더 괴롭혔다. 생채기 난 마음으로 나는 남편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평안함을 찾았다.   

  

익숙한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난날을 곱씹어 보았다. 단 한 번도 편안하게 살아본 적 없었던 내 삶이 괜히 서글퍼졌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나는 늘 조연인 듯 살았다. 가족은 시작과 끝일뿐 굳이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살아야 함에도 나를 돌보지 않은 삶은 결국 불행할 뿐이었다.

      

‘딸아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 또한 인생이란다. 언젠가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때 너무 애쓰며 살지 말걸. 너무 아웅다웅하며 살지 말걸.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살지 말고 그냥 살걸. 결국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을.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살걸.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며 살지 말고 지금 눈앞에 있는 오늘을 살아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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