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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Oct 07. 2023

산산조각으로 살아가기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인상 깊어서 필사했던 시가 있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다.


산산조각/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어떠한 일이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심이 세서,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바에는, 그리고 실패할 바에는 시작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굳게 믿었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놓친 기회들이 몇 개일까? 실패할까, 넘어질까 두려워 시작조차 두려워하고 있던 나를 다독여준 구절이 바로 저 구절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산산조각이 나도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게 아니며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그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해주는 이 시가 고마웠다. 그래서 감명 깊은 시를 떠올릴 때면 이 시가, 이 구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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