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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l 14. 2023

비와 도시락

공짜 도시락에 담은 것들

도시락 2개를 얻어와 늦은 저녁에 아내와 같이 먹었다. 평소보다 1시간 남짓 늦은 저녁 식사다. 회의에서 얻어온 2개의 도시락은 아내의 저녁 준비 시간을 없애주었고, 우리 2명에게 맛있는 도시락을 매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주었다.


10,000원도 채 되지 않은 도시락으로 보였다. 나와 같이 회의에 참여한 동료는 집에서 아내와 먹으라고 본인의 도시락을 나에게 건넸다. 마음은 너무 좋았지만, 체면을 차리기 위해 한 번만 거절하였다. 다행히 동료는 한 번 더 제안하고 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받았다.


오후 5시에 끝날 회의가 30분 늦어지면서 집에 도착할 시간이 1시간 늦어졌다. 때마침 장마철로 비가 많이 내려 집으로 가는 도로에 차가 즐비하였다. 강한 빗소리는 차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과 연결되었으나, 뒷자리에 고이 모셔둔 2개의 도시락에 미소가 번졌다. 매일 아기를 보느라 고생하는 아내와 같이 도시락을 먹을 시간을 기대하면서.


퇴근 시간은 꽤 길다. 집은 파주에 있고, 직장은 인천이다. 매일 자유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인천대로를 달린다. 거리는 매우 길지만, 시간은 비교적 오래 걸리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종종 경제 뉴스 관련 팟캐스트를 틀어놓는다. 꼼꼼하게 듣진 못하지만, 핵심을 알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내 뒷자리에 2개의 도시락이 있어 집중해서 들어야 할 경제 뉴스를 그냥 흘려보낸다. 아내와 같이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는 시간을 기대하니 딱딱한 경제 뉴스가 일종의 소음으로 들렸다. 채널을 바꾸어 빗소리와 도시락에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 음악을 틀었다.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밥 준비를 하지 말라고. 내가 근사한 도시락을 가지고 가니 오늘의 저녁 시간을 즐기자고. 평소에 아침과 점심 식사를 대충 때우는 아내는 저녁을 비교적 잘 차려놓고 나와 같이 밥을 먹는다. 직장에 다니는 나는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으니 잘 먹는 편이다.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아내와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는데, 오늘은 도시락으로 아내의 부족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로 즐거웠다.


도시락의 밥과 반찬은 간소했다. 자극적인 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충실하였다. 무엇보다 이 조그만 도시락 안에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동료가 나와 아내를 생각하여 도시락을 2개로 만들어준 마음, 장마철의 비로 인한 차량 사고의 두려움, 나의 경제 지식을 채우지 못한 공백, 피아노 음악 소리, 마지막으로 즐거운 저녁 시간의 기대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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