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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Apr 30. 2024

자발적 아웃사이더

Voluntary outsider


외톨이다.

왕따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은 결혼하여 아이들도 셋이나 있고 아이들과 떠들고 웃는 것을 좋아하는 아줌마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서 일을 하거나 명상 또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도 어떤 상황들을 가정하고 영어로 상대방과 대화하듯 혼잣말을 하는데, 그러면 영어로 대화할 때 말실수를 할 확률이 줄고 상황대처 능력도 느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워낙 오랜 유학생활에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항상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던 터라 외로운 게 싫어서 결혼을 일찍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미국에 처음 도착하여 중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때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이어야만 했다. 우선 선생님들과 친해지려고 했다. 사실 7학년(중학교 2학년)이라는 나이로 미국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내가 한국에서 공부하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쉬웠다. 일단 유학생이었기에 영어는 English as Second Language (ESL)이라는 수업으로 대체해서 들었다. 그 수업은 미국 온 지 얼마 안 된 영어가 서투른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수업이라 모두가 다 영어를 못했다. 이 외에 과학, 역사, 체육, 수학 등 과목을 매일 들었고, 정해진 시간에 해당 교실로 학생들이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항상 아침에 등교하여 1교시 과학을 갔고, 2교시 역사를 간 후에, 홈룸(homeroom)을 갔다. 홈룸은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내 출석을 체크하는 지도 선생님이 있는 곳이었고 여기서 주로 책을 읽었다. 그다음엔 아침시간으로 시리얼이나 네모난 작은 피자랑 우유등이 나와서 간단하고(?) 느끼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다음에 3, 4교시를 ESL에서 영어를 했는데 내가 들었던 수업 중에 가장 쉬웠던 수업이었지만 가장 싫었던 수업이었다. 정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고 그래서 선생님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항상 수업시간에 주어진 workbook(문제집)을 풀고 내가 가져온 책을 읽었고, 모르는 단어나 문장들이 있으면 선생님께 여쭈었다. 그렇게 나의 친구는 내 또래들이 아닌 선생님들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면 5교시 역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인 체육이었다. 체육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하지만 체육 선생님은 나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내가 할 일은 해놓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작 때 운동장 1 마일을 달린다. 1 마일은 1.6 km 정도로 운동장의 5 labs (다섯 바퀴)였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다. 한 바퀴 달릴 때마다 매직으로 도장을 찍어 줬었는데 내 손등 위에 검은 점이 두 개 있어서 항상 나보고 먼저 찍어 온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셨었고 한 번은 그 점 위에 엑스 표시까지 하는 장난도 쳤다. 나의 기록은 항상 여자들 중에서 1등이었고, 나는 나의 task를 가장 먼저 마친 후 유유히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고 가끔은 체육선생님과 대화도 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내 점이라고요... 찍어온 점 아니라고요..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학 시간. 이 시간에는 나의 유일한 또래 친구가 있었다. Quana(콰나)라는 친구였는데 처음에는 친구라기보다 라이벌에 가까웠다. 수학 교실에는 애플의 옛날 데스크톱인 아이맥이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업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경쟁 구도를 만드셨고 그걸로 아이맥을 이용하셨다. 가장 먼저 주어진 문제들을 다 풀었을 때 아이맥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항상 문제 양이 너무 많아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와 콰나. 솔직히 나에게는 쉬운 문제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에 분수의 곱셈, 기본적인 대수학을 배운다니.. 내가 한국에서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었나 하고 억울하기까지 했었다. 물론 이런 기초가 탄탄하게 하기 때문에 나중에 고등학교 가서 더 어려운 수학문제가 나와도 쉬울 수 있구나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말이다.



I인 나는 필사적으로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콰나도  필사적으로 수학을 풀어야만 했다. 나는 어렵지 않게 문제들을 풀고 30분가량 게임을 즐기며 놀 수 있는 꿀 같은 수학시간이었지만 콰나에게는 그 시간이 오롯이 그 친구가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꿈같은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needs가 확실했다. 나는 문제들 중 한 문제만 남기고 모두 풀고나서 콰나를 몰래 기다려주었고, 콰나가 다 풀면 그제야 마지막 문제를 풀고 제출하였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내 또래의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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