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표현이 어려울 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 중 인구 밀도 13위, OECD 국가 중 1위로 밀집도가 상당히 높다. 이 좁아터진 땅 위에서 관계주의로 한 데 묶인 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굳이 한 다리도 건널 필요 없이 SNS가 사방팔방 엮여 놓았다. 덕분에 의사를 표명하는 기본적인 일조차 눈치를 봐야만 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렵다. 옳은 줄 알았는데 누구는 또 아니란다. 이건 괜찮나? 입질 같은 주위 반응에 기복이 날뛴다. 그럼 이건 어때? 별로? 됐고, 그냥 나도 너희처럼 살게.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용인지, 피드용인지 면밀히 분류해서 올려야 한다. 멋모르고 스토리에 올렸다가는 DM으로 '이건 피드용이다'라는 피드백만 한가득 쌓인다.
끊임없이 남 눈치를 살핀다. 목적은 상실한 채로, 항상 주어진 방향이 있었던 것처럼 움직인다. 수많은 선택으로 빚어진 결과물, 그로 예기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에게 미어캣 같다 표현할 게 아니라, 미어캣에게 사람 같다고 말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해를 입을지 모르니 항상 언행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이 왜곡되어 이의나 논쟁에 부정적,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한다. 이를 반발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니, 정당한 주장도 괜한 아집 같아 함구하기 십상이다.
건네는 마음도 세련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단호하고 명확한 거절은 에두른 반발이나 무시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내가 모르는 한 방이 있을 거라며 마디마다 헤집어 뜯고, 비언어적인 행태에서 다른 의미가 내포되었을 거라며 지레짐작하는 건 너무 올드하다. '허, 쟤 지금 내 부탁 무시한 거야?' 이런 느낌.
들어먹을 귀가 없으면 다정한 문장을 갖출 이유도 없으니까. 격식 차린다는 게 대단히 고고한 것도 아니며, 다름 앞에 자신을 낮추고 끄덕여 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스스로 미흡하게 여길수록 적이 많다. 기꺼이 내밀어 준 손에 나를 향한 칼자루를 직접 쥐여 준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그러니까 수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왜곡으로써 자해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걸 자격지심이라고 부른다. 이땐 여유를 가지고 '내 제안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도와주고 싶지만 내 여건이 마땅치 않아, 네 말을 들으면 내가 피해를 입을 것 같아, 너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웠어. 이런 건 싫은 소리가 아니라 자기주장을 전달하는 것.
그 바지 입으니까 다리 더 짧아 보인다, 하는 짓이 한심해 보여서 조언하는 거야, 전보다 살이 더 찐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는 거야. 이런 '뭐 어쩌라고' 싶은 말들이 진짜 싫은 소리다.
싫은 소리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직접 들었을 때 '그런가? 하하' 하며 웃어넘기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언을 빙자한 공격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어릴 적 학습한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사회성이라 쓰인 엿과 몰래 바꿔 먹지 않았는지.
거절은 상대에게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경계'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받아준다고 해서 가치가 상승하거나 대우받는 일은 없다. 예정된 불편함에서 잠시 피신시켜 둘 뿐.
싫은 소리 하기 싫단 말이 싫은 이유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이 타인에게 착취당하고, 자존감을 갈취당할 때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해서다.
그렇게 어렵다던 거절 표현이 염려해 주는 사람에게만 유독 쉬운 것처럼 느껴진다. 신경 꺼, 나는 이게 편해. 금방 털어내니까 괜찮아.
또 하나는 실컷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 책임이 전가되어 올 우려가 있고, 그렇게 두려워하던 '미움받는 일'이나 관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하고 싶어서 해 준 거 아니었냐, 싫으면 싫다 하지 그랬냐 등.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니, 최소한 넋 놓고 당하지만 않았음 한다. 감사 인사 올리고 당장 썩 꺼질 것인지, 발로 차 줄 테니 보따리와 함께 도로 빠질 것인지에 같은 맹랑한 선택지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호의의 결과가 원치 않는 결말이라도 당신은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니까.
두려운 일은 싫은 소리 때문에 오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아껴 주는 이의 염려를 무시한 채 스스로 돌보지 못했을 때,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그들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가장 무서워해야 한다.
자아 상실이나 주체성 인지의 괴리 같은, 부정하기 위해 부정해야 하는 사고를 걱정해야 한다. 불편하고, 무례하고, 언짢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 전적으로 당신의 판단이 다 옳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할 이유, 희생을 감내해야 할 이유, 그 대상이 당신이어야만 하는 이유 중 그럴듯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부딪혀 보면 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구나.
물론 단번에 성격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별안간 천지가 개벽하듯 '그냥.. 기분이 별로 안 내켜서..'라고 답할 가능성은 0% 이거나 0% 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고,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긴밀한 대화를 나눠 봐야 한다. 파악이 끝나야 각자의 요령에 맞는 아웃풋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
유미의 세포들 속 웅이처럼 난처한 상황에서 당신을 구해 줄 마법의 문장 몇 개만 암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그럼에도 나의 거절에 상대가 격양되거나 다소 분개한 듯한 양상을 보인다면 아래처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