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과 주스를 함께 먹으면 어린이가 된다

우리가 김밥을 사랑하는 이유

by DONA



독립한 지 대충 3년 지났다. 시도 아니고 겨우 구만 바뀌는 서울 땅에 위치한 본가는 언제든 갈 수 있지만 분기마다 한 번 정도 방문했다. 만나는 사람이 생겨 게을리할 때에는 명절도 생략했었는데, 당신들과 똑 닮은 나의 얼굴을 잊어먹겠다는 둥 논리상 불가한 말로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번 설 쇠고 돌아가던 날 엄마는 늘 하던 대로 명절 음식과 밑반찬, 까다로운 내가 먹을만한 과일 몇 가지, 새 수건, 김장 김치 바리바리들을 현관 앞에 쌓아두었다. 그 많은 짐을 차에 옮겨 싣는 건 아빠 역할이다. 나는 기껏 느적대며 양말이나 신는다. 원래 내 방이었던 작은방에 들어가 외투를 걸치는데 그날따라 코가 아팠다. 어디 세게 부딪히면 찡- 도는 것처럼 이목구비가 아려와 인상을 팍 썼다. 3년 넘는 중 처음 경험하는 생경한 통증이었다.


차에 타고, 시동 걸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아빠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며 다음 주에 또 오라고 했다. 엄마는 먹고 싶은 거 다 해 주겠다고 했다. 바퀴가 구른 지 1분도 안 지났을 무렵이었고 그때는 정말 코가 너무 아파 참을 수 없어서 울어야만 했다.


당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도울 수 있는 모든걸 도와주겠다고 했다. 네 편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보다, 가족보다 더할 수 없다고. 엄마 아빠도 항상 기댈 부모가 필요할까? 하는 절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 영원히 누릴 수 없음에 대한 실감이 눈물의 사유, 통증의 원인인가 보다. 그래서 다음 주에도 갔고, 그다음 주에도 갔다.




이후 닷새가 지났다. 딸 끼니 걱정마저 일과인 엄마가 어김없이 묻는다. 그냥, 챙겨준 반찬 먹었어. 엄마 김밥 먹고 싶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이번 주에 오면 해 줄게.


다시 본가에 간 날, 마트에서 사흘 먹고도 나 챙겨줄 반찬 재료를 산다. 김밥 재료도 담는다. 호흡이 잘 통하던 엄마는 과일 사지 말란 말에는 일절 답을 안 한다. 혼자 사는 입장에서 과일을 마다할 리 있겠냐만, 엄마 혼자 가진 부채감이 여름 포도, 겨울 딸기를 사는 것으로 발현되는 걸 알기에 말릴 뿐이다.


몇 년 전 여름, 집 냉장고를 열었는데 자두가 있었다. 가장 좋아했던 과일인데 알레르기가 생기면서 몇 년 못 먹고 앓던 참이었다. 아~ 자두! 진짜 맛있겠다. 허공에 날린 혼잣말이 날아가 설거지하던 엄마 어깨에 앉았나 보다.


"어머, 어뜩해. 너 오기 전에 버린다는 걸 깜빡했다... 미안해, 얼마나 먹고 싶을까..."



해당 사건을 계기로 엄마가 사 둔 과일은 배가 터져도 먹게 됐고, 내가 살지 않음에도 그 집은 자두 복숭아류 일체가 반입 금지되었다. 그때가 생각나 엄마에게 물었다. 부모 마음이란 정말 뭘까. 딸기 사 두면 덜 미안하고 그래?








다음날 오전 열한 시쯤 눈 떴을 땐 이미 예쁘게 말린 김밥 열 줄이 있었다. 원래라면 엄마 옆에 딱 붙어 말아주는 족족 집어먹었을 건데 그날은 늦잠을 잤다. 깨자마자 식탁에 앉아 썰어놓은 김밥을 집어먹었다. 엄마는 한입 가득 우적이는 나를 보더니 냉장고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꺼내왔다.


"짜잔~ 이렇게 먹으면 소풍 온 것 같지롱~"


나는 엄마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과정도 도란도란해 좋지만, 먹는 순간 단체복 입고 소풍 가던 어릴 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고소 짭짤한 김밥 맛과 액상과당이 섞일 때 행복했던 기억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나 보다. 이 이야기를 십 년 넘게 엄마가 김밥 쌀 때마다 옆에서 떠들어댔다.


냉장고에 달려가 오로나민씨를 꺼내 왔다. 이런 건 탄산이랑 먹어야 진짜거든~! 하면서.


오늘따라 김밥 두께가 너무 두껍소



그날은 오후 일정이 있어 일찍 넘어가기로 했다. 지난주 꽉꽉 채워 보낸 반찬통들이 깨끗하게 돌아왔으므로 새 반찬을 다시 채운다. 내가 좋아하는 참치김밥도 두 줄 챙겨 준다. 준비하면서 집어먹다 반절 남은 김밥까지 돌돌 말아 넣었다.



어김없이 아빠 차를 타고 돌아간다. 고작 일주일 지났지만 분위기 환기가 꽤 됐다.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씩 샀다. 바람이 강했고, 날이 시렸고, 눈송이가 흩날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차 안은 종일 소풍 떠나는 분위기였다.


집에 도착하면 아빠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본인만의 어떤 규칙이 있나 보다. 잘 가고, 다음 주에 또 와. 운전석에서 빼꼼 내민 아빠에게 손을 흔든다. 데려다 주어 고맙소!

엄마는 나보다 관절도 안 좋고, 아귀힘도 없으면서 꼭 우리 집까지 직접 짐을 옮겨 준다. 냉장고 정리를 해 주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 김에 속 구경을 하는가 보다. 아빠가 창문을 내리더니 더 무거운 걸 엄마더러 들으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그걸 내가 들고 간다.


정리를 끝낸 후 집 나설 땐 현관 앞 쓰레기를 모두 챙겨 나간다. 박스며, 플라스틱이며, 비닐이며, 내가 먹고 버린 걸 두 손 빠듯하게 들고 간다. 나오지 마. 잘 있어. 오늘 일찍 들어가라. 엄마 간다. 그렇게 쌩하고 이별해 버린다.



우리 때는 다 뿌요 소다 마셨다



원래처럼 홀로인 집에서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먹다 남긴 반토막짜리 김밥이나 해치워 볼까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보이질 않는다. 나 옷 갈아입는 잠깐 사이에 새 김밥으로 바꿔 넣은 건지 온통 묵직한 김밥뿐이다. 첫 일주일은 머리든 몸이든 한 군데는 분명 아프다 확신할 정도로 식음을 전폐했었다면 이후 몇 주간은 또 이래도 되나 싶게 퍼먹기 바빴다. 폭싹 속았수다 속 금명이 나레이션이 떠올랐다.



속이 다쳐온 딸을 위해 그들은 또 하나만 해댔다. 기어코 또 나를 키웠다. 편하고도 불편한 그 요새에서 나는 충전하는 겨울 곰처럼 잘 잤다. 솜씨 좋은 수선집에서 새 옷이 돼서 나오는 것처럼, 누더기로 내려갔던 나는 풀 먹여 올라왔다.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사이가 우리였다.



부모 마음이 뭔지는 내가 알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맘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만 더 키워 줬으면 해. 나는 내 편이 아주 오래 필요하단 말야.





이전 02화혼술바에 가면 의외로 혼자 술을 마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