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보는 이유는 미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확증 편향과 불안 해소 비용

by DONA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신점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 동료 분들이 실제로 방문했던 곳인데 재미로 보기에 용한 면이 있으니 경험 삼아 추천하는 정도랬다. 엄마는 항상 신점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지만 외할머니가 대단히 신실한 교회 권사님이셨고, 혹시나 큰 액운이 끼어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허무맹랑한 기우가 팔 할이었다.


삼월 초쯤 본가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미리 예약해 둔 미용실에서 엄마와 머리를 하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설 이후부터 그리 많이 쌓이지는 않은 근황을 털어내는데도 둘 다 근심이 많아 보였다. 엄마도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돌아서면 전부 근심이고 걱정인 기분이다. 나는 이직과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했고, 엄마는 아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올해 초에 나눈 신점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 우리도 신점 한번 보고 올까?"



내가 중간이 없는 건 엄마를 닮았다. 우리는 지체 없이 다음날 오후 두 시로 예약했다.




집에서 장소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 안 됐다.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뭘 물을지, 무엇이 답답한지 조잘조잘 정리했다. 지난번 타로 봤을 때 타로 마스터가 해 준 이야기가 있었다. 맞히는지 테스트해 보려고 마음을 닫아버리면 서로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해야 한다고. 다행히도 모녀 사이가 긴밀하여 내색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장소에 도착한 후 엄마를 먼저 올려 보냈다. 흡연자 딸을 둔 엄마의 암묵적 룰이랄까. 재 털고 올라가는데 엄마가 엘리베이터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왜 안 올라갔어?


"갔는데 무서워서 내려왔어..."


다 큰 소녀를 모시고 점집에 들어갔다. 기운이 강하거나 위압감에 눌릴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푸근한 인상의 선생님이 계셨다. 내어 주신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한 시간 정도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내 이야기를 물었고, 엄마는 오빠 이야기를 물었다. 아무래도 첫 경험이라서 그런 건지, 전날 산으로 기도 다녀오셔서 그랬던 건지 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 계셨던 것처럼 술술 설명하셨다. 우리는 연신 어머, 어머, 하면서 호응했다.



귀가하는 길에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카페에 들렀다. 엄마 가슴께를 누르고 있던 근심이 어느 정도 덜어졌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결혼할 거고, 딸 좋은 데 시집 잘 갈 거고, 힘든 거 다 지내느라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홀가분할 것도 같았다. 기도빨이 좋으신가 보다. 어쩜 정확하게 짚으시네. 엄마는 첫 신점 결과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의아할 법도 하다. 내가 신점 이야기를 풀어서 쓴다 한들 우리 집 이야기를 모른다면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런 걸 믿지 않는 입장이라면 누구든 해 줄 수 있는 말(아무리 용해도 면전에 딸이 혼자 살다 죽을 팔자고 가세가 기울어 길바닥에 나앉는다 하진 않을 거니까)을 굳이 돈 내고 들으면서 용하다고 판단하는 척도가 모호할 수 있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정성으로 확답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를 지불할까? 점괘를 믿는다는 개념보다 불안을 해소해 준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면 복채라는 명목하에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있을 것이다. 뭐, 그 정도를 지불할 의향이 있을 정도로 간절한 사람들이 찾아가겠지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본인 통제력이 있다거나, 외부 영향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거나, 불확실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확증 편향에 대한 대가(지불=근거는 공신력 있다는 확신)만으로 얻는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해소 방법도 더 커야 한다는 거다.



귀가하는 길에 생각해 봤다. 너희 아들 딸이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왜 아직이래? 가볍게 던진 질문들은 엄마에게 불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두 자식 모두 연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불확실성이 구체적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고, 팔이 안으로 굽은 엄마는 '내 자식이 왜 연애를 못해?'라는 질문의 간극을 납득하지 못해 손 쓸 수 없는 통제 불가 상황에서 아주 큰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는 그걸 복채 5만원에 해소했다. 선생님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괜찮아, 아들 엄청 잘 돼. 딸도 잘 풀려. 자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어, 했다. 그때 본 엄마 표정은 병이 다 나았으니 더 이상 병원을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환자 같았다. 본인은 믿어 의심치 않았겠으나, 공신력 있는 누군가가 당신의 믿음에는 근거가 있다며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 준 셈이다.



이직이 잘 안 돼요.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곧 잘 풀릴 거다, 좋은 기회 올 거다, 힘든 일 지나간다 했으면 오히려 신뢰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그랬다. 올해는 어딜 가나 다 성에 안 차고, 스트레스받고, 이끌어 줄 사람 없으니 기대 품지 말고 계속해서 정진하라.


겨우요? 그래서 뭐 어떻다고요?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대 말고 정진하라'는 말에 위안을 얻었다. 딴생각 말아야지. 힘든 시기가 온 척 주저앉지 말아야지. 내 삶은 계속해서 이래왔고, 모두 아득바득 사니까. 다독이는 말이었다면 같잖게 퍼져있을 뻔했다. 엄마가 준 성실함으로 그냥 해라. 계속해라.



나도 안다. 누군가 같은 말을 했다면 어쩌라고, 내가 알아서 할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불확실성 해소, 확인 편향, 불안감 감소를 위해 상담 비용을 제공했기 때문에 들어먹는 거다. 심리 상담과 결이 다르지만 결괏값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고 본다.


점을 치는 이유는 주식이 언제 오를지, 전쟁이 언제 터질지, 엄마가 몇 월 며칠에 곁을 떠날지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목적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아주 오래 품고 있는 근심에 대한 부담감 분산과 자기 확신 강화.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나는 껍데기만 여자인 남성 기질로 껍데기만 남성인 여성 기질을 만나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 아주 잘 살고, 자식도 >아주< 잘 키울 거라고 했고, 사는 동안 걱정할 일이 없다고 했다.


근거? 없지. 모르지. 그럴 거라는데 반기 들 이유는 없지. 될 거라는 믿음으로 노력하고, 어디로 가든 잘 살 거라는 안일함으로 살짝 엎어져 본다. 뭐 어때. 그러려고 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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