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 하면 무료 헤어 쿠폰을 준다

있는 힘껏 밍기적

by DONA



달리 한 것도 없으면서 여덟 시나 되어 늦은 저녁밥을 챙겨 먹었다. 뭐든 하면 는다더니 꾸준히 늘어지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잠깐 쉬고 정리해야겠다 생각한 지 네 시간이 흘렀다. 까무룩 잠들 줄 몰랐던 건 아니다. 시간은 겨우 열두 시 지난 무렵. 어찌저찌 하루를 넘겼다. 그걸로 한시름 놓는다.


부랴부랴 양치도 하고, 상 훔치고, 설거지를 한다. 옆집서 물을 쓰면 물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데칼코마니 구조니까 내 주방의 맞은편 집은 주방이고, 반대로 화장실의 맞은편 집은 화장실일 텐데, 늦은 시간 앞뒤로 물 쓰려니 눈치를 안 살필 수가 없다. 뒤늦게 수압을 바짝 낮추는 모습이 꼭 저자세인 나 같다.



우리 아파트 단톡방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개설되었을 테지만 ‘xx동 중층 구간 뒤꿈치 떼고 걸어 주세요’ 같은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한번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단톡방을 나가랬다.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 주의하는 게 맞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전부 사이클 맞춰 움직이는 게 아닌데 뭔 수로 제지하냐고. 귀담고 싶은 입장에 투영하면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괜히 말대답해 본다. 뭐요. 오후에나 한가한 사람은 세탁기 언제 돌리라고요.


바싹 말라버린 그릇을 벅벅 닦으면서 괜히 열을 올린다. 변명에 도가 트나 보다.



삼분카레 포장 박스, 햇반 그릇, 얇게 헤진 수건을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손을 모두 털어도 겨우 열두 시 삼십 분이다. 뭐라도 해 보려고 영어공부 앱을 켠다. 오 분 할 것도 재미 붙으면 거뜬히 이십 분 해낸다며 생색을 생색을 낸다. 비록 유튜브는 두 시간 넘게 봤지만 거기 할애된 시간에는 쪼잔히 군다. 남들 다 이 정도는 해! 하면서.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 하루의 시작을 하루의 마무리로 바꾸기 위해 두 번째 잘 준비를 해 본다. 그러려면 ‘마지막 담배’ 한 대 태우는 것이 흡연자의 더럽게 성실한 루틴이므로 털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단지 밖까지 기어나간다. 연기가 무겁게 흩어진다. 눅눅한 새벽 냄새가 연초 향을 이긴다. 저장된 메모리에서 이 눅진 냄새를 시작의 냄새로 출력한다. 바로 옆 공사장은 인부들로 인산인해고, ‘진짜’ 시작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단지 밖으로 빠져나온다. 나는 또 생색만 낸 사람이 됐다.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포춘 쿠키 기능이 있다. 신빙성은 없고 어떠한 코드에 의해 짜였겠으나 꽤 그럴싸한 메시지가 나오면 그날은 뭐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 보란다. 엄마밖에 없는데.


그래서 냅다 사랑한다고 보냈다. 무료 헤어 쿠폰이 떨어졌다. 코드의 나열뿐인 싸이버 쿠키가 가져다준 소소한 행복이다.




총명한 쿠키.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맞는 날에는 더 큰 액션을 수행하자. 풋살을 갈까 글을 쓸까 고민하다 글쓰기로 굳힌다. 마침 당일에 열린 습작 모임이 있어 참석을 눌렀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글을 쓰는 게 일 년은 더 된 듯해서, 그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이 걸음을 채근했다. 빨리, 빨리. 필요한 짐만 챙겨 또 한 번 문 밖으로 나선다.



피드백이 필요한 시점이 있다. 며칠 전 재미 삼아(진짜로) 봤던 타로에서 끌어주는 사람 없어도 아득바득 해야 한댔는데. 본업이 아니라서 그런가. 충분한 조력자에게 그간 나의 무릎까지 삼켜 버린 늪에 대해 털어놓는다.


“글 시작이 안 돼요.”

“오랜만에 펜을 잡는 거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 봐요.”


주변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사각형 테이블, 외국어로 대화하는 옆사람, 송골송골 물기 맺힌 다회용 컵, 나란히 앉은 커플, 술기운 때문인지 목청 큰 아저씨. 아니면, 새벽에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본 풍경이나 그때 느낀 감정 같은 거. 송파구, 서울시, 대한민국, 아시아, 지구, 우주부터 차근차근 갈 수도 있고. 매일 새로운 이벤트가 무조건 꼭 하나씩은 생기니까 그걸 써도 좋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중의 나와, 나 아닌 ‘나’들을 위한 기록. 자신에게 사려깊은 사람이 되기 위한 타임머신 메시지 같은. 그런 말이 있던데, 내가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작은 기적이 밍기적이라고. 고깟 밍기적의 힘을 믿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