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말이다,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 영화를 한 편 봤다. 마더 앤 차일드. 인형같이 예쁜 나오미 왓츠가 나오는 영화라는 것만 기억날 뿐이어서 그냥 제목이 끌리니 보기로 정했지. 너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을 푹 빠져서 봤다.
어린이집에서 너를 데려오고, 손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퍼즐 놀이를 같이 하고. 네가 만화를 보는 사이 간식을 챙겨주고 소파에서 좀 졸다가 저녁준비를 하고 그때부터 정신없다. 너의 수발을 드느라 내입으로 밥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저녁을 먹고 설거지에, 씻기고 입히고 청소하고 이부자리 챙기고 빠듯하게 움직여야 너의 잠시간을 지킬 수 있다. 너를 재우고 나서 바로 피곤도 잊고 낮에 보다 만 영화를 마저 봤다.
'루시'는 아이를 가지지 못해 입양을 결심하고 무진 노력하는 인물이다. 입양을 위해 애쓰는 중에 자신의 친자식을 원하는 남편과 헤어짐을 불사하며 입양하게 될 아기를 위해 공을 들였는데 아기 친엄마의 변심으로 입양실패를 겪은 후 절망하다 드디어 운명같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엄마가 되고 싶다는 환상과 욕심에 육아가 이다지도 환장할 일인 것을 미처 몰랐던 거지. 아이를 원할 때 그토록 똑 부러지고 이성적이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밤에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SOS를 받은 루시의 엄마가 달려오고 할머니의 손에 아기는 겨우 잠들었지만 루시는 여전히 패닉상태로 울면서 아기에 대한 원망을 토로한다. 난 도저히 못하겠어! 아무것도 못하고! 종일 자기만 봐달라고 울부짖고!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관록이 묻어나는 웃음과 제스처로 그저 좀 지친 거라고 딸을 위로하던 루시의 엄마는 이쯤 되자 철딱서니 없는 딸을 향해 따끔한 충고를 날린다. 도대체 너란 아이는! 그럼 아이 키우는 게 어떤 줄 알았는데! 그리고 검지손가락 끝으로 딸을 겨누며 말하지.
Be Mother!
엄마는 정확히 반대의 경우였어. 엄마는 아기를 갖길 꺼려하고 두려워했었다. 자신이 없었거든. 내가 지금 누리는 이 모든 자유가 어느 한순간 깡그리 사라진다? 내가 한 인간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이 세상에 아이를 소환하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되지 않을까? 엄청난 무게의 짐을 스스로의 어깨에다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늦은 나이의 결혼에도, 아이를 원하던 너의 아빠의 의지에도, 차일피일 아이 갖기를 미룬 것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나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이기심과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다는 회피 때문이었어. 그게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모두 자신의 의사와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거고 누구도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간섭할 수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아기를 갖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후에 혹시 있을지 모를 후회가 걱정되어서야. 그러느니 더 늦어서 시도조차 불가능하기 전에 해보자, 결심한 거지.
엄마는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서 거동이 불편해지고 엄청난 치골의 통증과 전신이 부어 신발도 안 들어가고 밝히기 꺼려지는 가지가지의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그냥 좀 더 아기가 뱃속에 있었으면 좋겠더라. 막달되면 몸이 너무 힘드니 얼른 출산하고 싶다는 다른 엄마들과 달랐지. 엄마가 엄마 되기에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는지 조금은 알겠니?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옳다고 끄덕여지는 말들이 있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고통을 잊기 때문에 또 출산을 한다는 말도 그래. 물론 엄마는 하나면 충분하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둘째를 가질 생각은 않아. 그러나 네가 아주 아기일 때 엄마는 분명 미칠 듯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 고통이 구체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니까. 엄마도 분명 루시처럼 이기적인 저 피조물에 일시적 증오를 느꼈겠지만 왜 이런 선택을 해서 고생을 사서하나 하는 후회도 분명히 했겠지만 지금은 너의 눈을, 입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웃기게 생긴 발가락을 보면서 그저 소중하고 기특하고 애틋하고 한마디로 너 같은 보물이 도대체 어디서 왔나, 나도 모르게 되뇌기 바쁘다.
너의 할머니는 종종 너를 예뻐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너희가 끝까지 아이를 안 낳았더라면 어쩔 뻔했냐 하신다. 그러면 엄마는 모르고 사는 거지 뭐. 한다. 그렇지, 뭐. 모르고 사는 거지. 아이를 기르는 기쁨 외에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재미와 기쁨이 있니. 자기에게 집중하는 작가집단에 있다 보니 엄마의 주변엔 기혼인 딩크족이 많아. 물론 미혼도 많고. 엄마는 어쨌든 결혼은 했으니 비교적 자유롭게 엄마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실컷보고 가끔사람들이랑 밤새 술 마시며 수다 떨고 언제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아니면 밤새도록 안 자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고, 내키는 대로 말이야. 작업하고 전시하고, 내 밥벌이 그냥 소소하게 하면서 엄마는 그럭저럭 살던 대로 살았을 거야. 어쩌면 내 속으로 아이 하나 낳아볼걸, 하는 후회를 한 이십 년 후쯤? 해볼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엄마는 그때의 선택에 따라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어. 이제 엄마에게서 너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엄마가 첫 번째 편지 말미에 밝혔듯 나의 인생 반은 너의 것이니까. 지금은 합체에 가깝고 네가 성인이 되면 분리가 되더라도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니까.
마더 앤 차일드의 또 다른 인물 '카렌'은 14살에 아이를 낳아 바로 입양 보냈지만 초로의 나이까지 단 한순간도 아이의 생각을 놓지 않고 산다. 그녀는 매일 입양 보낸 딸에게 편지를 쓰고 생일엔 선물도 사며 모든 순간이 아이에게 초점 맞춰진 삶을 살지. 자신에게 남자로서 다가오는 직장동료에게 자신의 모든 주파수는 얼굴도 모르는 딸에게 맞춰져 있다고, 그런 자신을 감당할 수 있냐고 약간의 패닉상태로 고백하는 장면은 자식을 낳은 여자의 인생이 어떤 건지 잘 말해주는 듯했어.
어찌 보면 지독스러운 족쇄이고 또 동시에 엄청난 경험이기도 하다. 나의 자유와 편함과 욕구를 일시적으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미칠듯한 감정기복을 그래도 잘해보려는 의지로써 다잡아보는 것은 엄마 된 자만이 겪는 엄청난 시련이고 또 성장이야.
별것 아닌 일로 너에게 소리 지르고 너를 떠밀듯하고 그러고는 자책하면서 아직 아기잖아, 뭘 바라는 건데. 라며 나에게 다시, 또다시 가르쳐주고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다, 다짐하고 내가 그렇게 까진 못하는 건 아닐 거야, 위로한다. 이도가 화낸 걸 까먹을 수도 있다, 바라보고 네 무의식에 박혀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한다. 그런데 한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화는 통제하기가 정말로 정말로 힘이 드는,정말이지 지독한 까르마다.
너의 애착인형 티거를 네가 좋아하는 '틈새 사이에 밀어 넣기'를 해놓고는 안 빠진다고 칭얼거리자 엄마는 그걸 찾아주면서 온갖 짜증을 냈지. 아, 도대체가, 나란 인간은. 자려고 같이 누워서 또 감정의 오락가락을 시전하고 있는데 네가 살짝 안겨왔다. 엄마는 아빠는 왜 늘 너보다 못할까. 엄마가 아까 티거 뺄 때 소리 질러서 미안해 하자, 웃으면서 응~ 괜찮아. 아, 이도야. 엄마는 언제나 엄마가 될까.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한다고 잘 알고 있는 인식, 즉 이성과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화, 그러니까 무의식, 그 괴리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나를 잘 다스려 너에게 감정적 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가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화를 그대로 받아내고만 있는 약하디 약한 새끼이기에 더 그런,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는 고통이고 고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더디지만 네가 나를 변화하게 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네가 좋은 사람이 될지,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네가 건강한 사람이 될지 생각하게 해 주니까. 노력하게 해 주니까.
더불어, 이 세상이 잘 돌아간다면 그 원동력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앞을 내어주는 배려와 양보, 남에게 다가가는 친절, 따뜻하게 보듬는 품, 나를 생각 않는 희생과 용기, 변하지 않는 사랑, 또 잘하려고 전전긍긍하는 서툰 노력을 더해서 이 모든 것은 엄마들의 모습이잖니.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가 훨씬 많으니 세상이 돌아가는 거지, 안 그래?
고백하는데 엄마는 네가 너무 좋아서 늘 네 생각만 한단다. 아직도 네가 신기하고 말할 수 없이 예쁘다. 조금씩 커나가는 게 하나하나 습득하는 게 대견하면서도 지나가는 순간들이 아쉽기만 하다.
엄마의 보물, 하나밖에 없는 내 보물. 너를 껴안으며 엄마가 하는 말이잖아.
내일 조금 더 성장하는 내가 되는 것. 그럴 수 있는 꾸준함과 용기. 네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일어난 반전이다. 그러니 다른 것이 보물일까, 오로지 너만이 그것이지.
엄마는 내일, 더 진짜 엄마에 다가가 있을게. 잘 자고, 내일 보자,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