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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Jan 31. 2023

공감하는 마음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열한 번째 편지



요즘엔 이도가 '뽀로로'에 심취해 있어서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퍼즐을 맞추다가 "뽀요 만화~!" 한다. 뽀로로는 너의 할아버지 말마따나 은근히 재미가 있어서 엄마도 가끔 같이 보기도 하지. '로디야 사랑해'라는 에피소드를 보는데 엄마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네! 겸연쩍기도 하고 네가 볼까 봐 얼른 닦아냈어. 그런데 친구를 구하다 망가진 로디를 밤새도록 고치고도 작동하지 않자 그 로디를 붙잡고 우는 애디의 울음소리는 엄마를 울리기에 충분했어.


엄마는 또 '짱구는 못 말려'를 좋아해서 예전에 즐겨봤었는데, 운동회였나? 친구들이 다 같이 달리기를 하는데 훈이가 결승점 앞에서 빨리 통과하려고 얍! 하며 꽁꽁 용을 쓰는데 그 클로즈업된 표정에 엄마가 울컥하면서 코끝 찡해지고 눈물이 막 쏟아지려는 거야. 지금도 모르겠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꾸 코끝이 매워지는지. 애써보는 그 마음이, 잘 해내고 싶은 꼬마의 간절함이 내 어릴 적 훈이와 비슷했던 어떤 모습을 툭 건드렸던 걸까.


주로 어릴 때의 기억에 중첩되는 에피소드에나 어린 생명과 연관되는 데에 엄마는 좀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으니 아직 혼자 설 수 없는 약한 존재, 약한 생명이 겪는 어려움에 우리는 많이들 공감하잖니. 엄마가 지하철로 작업실을 다니던 시절에, 10년이 넘었지, 그때는 지하철에 구걸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 한 여자는 자는 남자아이를 등에 업고 구걸했다. 돈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는데 계속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일부러 돈을 챙겨가 몇 번인가 준 기억이 있다. 조카도 없고 아들도 물론 없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할 정도였으니 자식 낳고 산 부모들의 마음을 많이 샀던지 등의 남자아이가 꽤 커져서 힘겨워 보일 때까지 업고 구걸을 다니더구나. 꽤 큰 아이가 저렇게 움직이는 등에서 저렇게 곯아떨어져 잘 수 있나 하는 의심이 들 즈음 더 이상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보편적 측은지심뿐 아니더라도 우리는 할머니가 생각나서, 엄마 같아서, 동생 같아서. 자식 생각에 남을 돕는다. 나와 동떨어진 먼 일이 아니라 내 가족의 처지로 상황 이입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지.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거다. 타인의 불상사나 어려움에 공감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기에, 외면하지 않는 용기가 있기에 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하려고 부지불식간에 뛰어들고, 불구덩에 뛰어들고, 생면부지의 이들에게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다른 이의 아픔에 적어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타인의 어려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돕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진짜 보배다.



수 백명의 희생자가 난 시월의 참사에서 책임 장관이라는 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원칙대로 했다". 절규하는 유족들에게 일원어치의 공감도 보여주지 않는 얼굴을 보니 정말 뭐랄까, 오히려 슬픔이 느껴졌어. 저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다. 나도 모르게 낮게 흘린 말에 옆에 있던 너의 아빠는, 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위만 듣고  아래를 무시하는 그 태도는 본인의 지위에만 연연하는 지독한 욕심이 분명하고 결국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거나 무시할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전직 검사였다는 그는 진심으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아온 삶이면  그럴 수 있을까 충분히 짐작된다. 그렇더라도 응당 이루어져야 할 자리에서의 적절한 처신은 애초에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을 테지. 꼬리 자르기로 일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어서 빨리 잊힌 사건이 되기만을 바랄 테지.

비슷한 시기에 뉴스에서 시끄럽던 택시기사와 애인을 살해한 남자에게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렸다. 나는 감히 말하지만 저런 위정자들은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 권력의 최상위부에서 본인 이득 하나를 생각해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들을 봐. 국가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젊은 시절을 지옥에서 보내고 평생을 한으로 산 사람들을 등지고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대법원장을 봐. 극악무도한 성범죄자들을 이상한 사유로 다 감형시키고 내보내주는 공감능력 절대부족한 판사들의 꼴은? 피해자들의 의사는 제쳐두고 또 일본과 과거사 협상하겠다고 들고 나오는 정치인들은 제정신일까. 아무 직책도 없는, 최고 권력자의 비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이 사회의 고급 공무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 나라의 일류대학을 나오고 엘리트라 칭송받으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누구보다 똑똑한 이들은 왜 이다지도, 다수의 시민들보다도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질까? 그것은 지독한 엘리트 의식 때문이다.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 생각하고 또 이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대접해 준다. 개인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승리의 노획물인 돈과 권력 당연시 여기고 패자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능력주의 사회는 성취를 '개인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거기서의 패자도 승자의 노획물을 인정한다는 것, 이게 무서운 거다. 승자가 오만할 소지를 주는 거지. 어떠한 운이나 운명을 배제한 능력주의 세상에서 승자는 패자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심지어는 멸시한다. 자기의 출세에 도움이 될 초엘리트 집단에만 고개를 숙이면 자신은 계속 승자로 남을 테니까. 온갖 세상의 좋은 것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마땅히 그렇게 된 양 오직 위만 있고 아래는 없는 이들에게 어떤 '마음의 나눔'을 바랄 수가 있을까.



쳐다보면 가슴 답답한 사이코패스 같은 권력자들을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양산하지 않으려면 또 그들이 '공부 잘해서 된 훌륭한 사람'이라는 산업화시대의 무의식이 더 이상 당연시되고 용인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더 이상 참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권력의 칼날을 휘둘러야 하지 않을까.

의식이,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법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말하자면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조차 바랜 저질의 승자의식 따위는 발 붙일 데 없는 촘촘한 의식과 제도의 틀이 갖춰지려면 보통의 노력과 시도로는 어림없을 거야. 정말로 지난한 변혁을 겪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 들여다보면 산적해 있다.

우리 이도가 사는 내일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람의 마음을 같이 공감해 주는 제도들과 법들과 인식들이 기초공사라도 좀 시작돼 있으면 좋으련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그것은 네가 더 살아보면 알 거야. 

엄마가 외면하지 않고 이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려고 애쓰는 것도 내가 사는 세상에, 어쨌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실천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우리 본바탕의 인간다움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일게 하고 기꺼이 내미는 손길이 되듯이.

 

동정을, 공감을, 나눔을 더욱 독려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남자아이라도 눈물 잘 흘리는 감수성을 탓하지 않는 엄마가 될 거야. 눈물을 약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뀐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기꺼이 울고, 웃고, 불의에 분노하고. 사람에게 동물에게 자연에게 공감하고 안식하고 감정을 나누는 인간성으로, 진정한 교감을 나누며 이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어. 너의 그런 솔직한 삶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건강한 씨앗이 되겠지. 내일, 너의 좋은 세상을 위해 오늘, 엄마도 노력하마.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사이코패스 용의자를 향한 형사 유명한 대사다.

너 같은 인간도 일상을 영위하냐는 의미의 애드리브라고 밝힌 배우 송강호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엄마도 밥 맛 떨어지는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분노의 일침을 날리고 마무리할게.


밥은 먹고 다니냐, 이것들아!




JAN. 2023. 엄마의 열한 번째 편지.


책 읽는 이도와 아빠.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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