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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Oct 19. 2023

달착지근하게 진해져 오는 가을


지난 주말. 남편, 아이들과  엄마를 모시고 속초를 찾았다.  나는 울긋불긋 물든 산. 단풍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엄마는 노랗거나 , 붉은색으로 물든 산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설악산 울산 바위가 가까이 보이는 리조트에 숙소를 둘 참이다.


2023년 설악산  단풍시기는 10월 23일경으로 발표되어 있다. 그렇다면 대략 이주정도 앞당겨진 일정이었으리라. 비록 절정의 단풍은 눈에 담지 못할지라도. 약간의 단풍구경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는  가당찮은 생각을 하며 떠난 여행. 지금 와서 보니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올법한 일이었다. 어쩜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했던 건가.



다행이 엄마는 우리가 묵을 숙소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설악산과 울산바위뷰도 좋아했지만. 그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드넓은 잔디와 유달리 잘 다듬어진 조경을 바라보며 특히 기뻐했다. 정원수들은 소담하기도 , 충분히 화려하기도 했다.


넓게 조성된  골프장,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듯한  수영장까지. 우리가 단풍을 보지 못한 섭섭함을 잊기엔  이미 충분했다. 또한 라운지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창으로 바라다보는 설악산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치였다.


숙소에서 엄마의 가방 짐을 풀 때에 , 나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주머니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물건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가방엔.   마당에서 기르는 토종다래 무려 두  봉지, 마찬가지로 엄마가 키운 일명 가을 찰옥수수,  음, 이건 분명 엄마가 출발하기 전 가마솥에서 쪄내왔을 테고. 마당 한 편에 심어둔 사과대추까지. 미처 헤아려 보지는 않았으나, 족히 100알 가까이 되어 보이는 엄청난 양이었다. 내가 본 사과대추 중 가장 많은 부피었으니 , 도무지 세어볼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생으로 아작아작 씹어먹는 대추의 맛은 오묘했다. 그건 어쩌면 순전히 사과대추라는 것을 알고 맛보아 그런 걸까. 베어물 때마다 어쩐지  사과냄새가 나면서 달달한 대추 맛과 향이 입속으로 진하게 전해졌다.


주말여행을 마치고 아온 날.

서둘러 동네 친한 언니에게 사과대추를 크게 한 봉지 담아 나눠 주었다. 며칠을 먹어도 사과대추는 끝이 나질 않았고, 나는 이걸 빠르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방법을 약간의 고민 끝에 생각해 냈다. 양상추, 로메인, 적근대, 적양배추, 청치커리 , 당근, 양배추 구성으로 이루어진 샐러드채소믹스를 준비. 깐메추리알 양껏. 아이들이 좋아하는 샤인머스캣도 취향만큼. 냉장실에서 잠자고 있던 아몬드, 호두 약간. 새콤달콤한 크렌베리까지 장만해 둔 참이다. 오늘의 주인공 격인  사과대추도 대강 썰어 담는 것으로 마무리.


이젠 적당한 그릇을 내어 취향대로  요리조리 담는다. 사실 나는 샐러드보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이나 , 칼칼한 찌개류를 좋아한다. 하니 내가 준비한 샐러드엔 은근 무언가의  부족함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엄마가 전해준  사과대추로  성의껏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뿐 . 제법 향기롭고 달콤하게 진한 가을을 맛본 저녁.

내일은 달착지근하게 푹 익어가는 가을을 가만히 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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