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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25. 2023

소비단식으로 일궈낸 5천만 원의 기적

반가워 옥탑방~

학교 특성상 반의 절반정도의 아이들은 취업을 했고 나머지 절반의 아이들은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나야 당연히 취업을 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고졸이라는 학력이 부끄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했고 나는 돈을 벌어야 했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목표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 20만 원씩 들어가는 월세는 너무 빨리 다가왔고 일 년이면 240만 원이라는 큰돈이었다. 월세를 아끼고 싶어졌다. 각자가 벌은 돈을 따로따로 모으지 않고 함께 모으기로 했다. 아마도 이때 따로 쓰고 모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서울에 살 때 동네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생각이 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가 딱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다 보니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엄마와 함께 전셋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 집은 빨간 벽돌의 2층 양옥집이었다.


'우와~ 이런 집에 우리가 진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야?'


1층과 2층에는 빌라에서나 보았던 단단해 보이는 현관문이 닫혀있었고 2층까지 올라가서 보니 꽤나 큰 평수로 보였다. 속으로 내심 설레고 기뻤다. '이 집에는 방이 도대체 몇 개일까? 이제 주방과 욕실이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갑자기 그 옆의 작은 계단이 보였다. 부동산중인과 우리는 그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이위에도 집이 있단 건가?



집이.. 집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옥. 탑. 방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연 이 옥탑방은 집을 지을 때부터 계획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살다가 주인이 세를 내주고 싶어서 급작스럽게 지은 것일까? 어찌 되었건 오늘 우리가 보기로 한 전셋집이 이 옥탑방이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1300만 원짜리 전세가 그렇지. 뭘 기대한 거야. 하아..'


그냥 2층이길 바랐었다. '엄마 제발 다른 집도 알아보자고요. 제발..'이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집보다 더 저렴한 전세는 없어요."


"네. 계약할게요."


역시나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집안에 주방과 욕실이 있었고 창호지문이 아닌 제대로 된 방문이 달려있었다. 물론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모양이 제각각인 것을 보니 여기저기에서 뜯어온 것 같아 보였다. 어쨌거나 창호지문보다는 따뜻해 보이는 것은 확실했다.



나중에 이사를 하고 보니 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집이었다.  삼면이 모두 건물에 가려서 햇빛조차 들지 않는 2층에 비해 우리 집은 가리는 것 없이 따뜻하고 밝은 햇볕이 하루종일 비춰주었고, 바로 옆 옥상에서 고개를 들어 파랗고 높은 하늘의 하얀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을 모두 가진 기분까지 들게 해 주었다. 심지어 창고처럼 생긴 외관 덕분에 하루종일 문을 열어두어도 도둑하나 들어올 것 같지가 않은 것이 방범에도 훌륭한 집이었다.



물론 단점은 더 어마무시했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땡볕 덕분에 한여름에 온몸에서 육수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고, 추운 겨울이 오면 허슬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창문 덕분에 사방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문틈사이로 파고들었다. 심지어 주방의 바닥에는 보일러가 깔려있지 않아서 밥을 해서 먹을 때마다 온몸을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소문대로 옥탑방은 덥고 추웠다.



이사오기 전의 집도 빨간 벽돌의 2층 양옥집이긴 했다. 다만 그 주인이 살고 있던 1층에서 한쪽방과 그 방에 붙어있는 욕실만 우리가 사용을 했고 거실로 연결되어 있는 방문은 거실 쪽에서 열쇠로 걸어 잠가두고 우리는 뒷문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마치 다른 사람의 집에서 얹혀사는 모양 같다고나 할까? 그땐 오빠도 군대에 있는 상태였고 엄마의 건강도 좋지 않아서 수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그때 가지고 있는 돈이나 벌고 있는 돈에 따라 집이 조금씩 다르긴 한 것 같다. 우리의 경제상태가 곧 집이었고 집이 곧 생활수준이라 겠다.



그 어둡고 쓸쓸했던 뒷방의 단칸방 살이에도 봄은 찾아왔다. 인터넷에서 개인 라디오방송을 하던 나와 그 회원들의 모임이 있던 날, 그와 나는 처음 만났다. 회색티셔츠에 안경을 쓴 그는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것같이 보드랍고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그였다.



살면서 엄마를 제외하고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만큼 이 사람에게서 보상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있기만 해도 마냥 즐겁고 편안했었다.



뭐든 바닥을 치고 나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 차라리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해롭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옥탑방은 단칸셋방에서 해방을 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전세세입자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월세가 매달 나갈 일도 없었고 심지어 방이 두 개나 되어서 오빠에게 따로 방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을 사겠다는 목표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제 좀 더 나은 전셋집을 향해 달렸다. 연애를 하는 중이었음에도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을 했고, 버스로 세 코스정도의 거리에 있는 회사의 출퇴근길을 항상 걸어 다녔다. 그리고 한 달에 6만 원 정도만을 나를 위해 사용했다. 우리 셋은 모두 지독하게 아꼈다. 소비단식이 이런 것이 아닐까? 버는 돈은 있는데 쓰는 돈이 없었다. 사실 사고 싶은걸 다사고 먹고 싶은걸 다 먹는다절대로 모을 돈이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다시 단칸셋방살이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정말 그것만큼은 싫었다.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만 생각하고 싶었다.



얼마나 아꼈는지.. 그 유명한 대프리카에서 살면서 그것도 뙤약볕이 바로 내리쬐는 옥탑방에서도 한여름의 더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분명 에어컨 하나쯤은 살 수 있는 돈이 통장에 있었음에도 여름 한철을 위해 큰돈을 주고 에어컨을 사고 매달 전기세로 몇만 원씩 나가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육수같이 흘러내리는 땀을 뒤로 한채, 밤이면 옥상 한편에서 자기도 하고 어떻게든 버티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런 노력 끝에 어느덧 통장에는 5천만 원이라는 돈이 모여있었다. 분명 옥탑방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통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왔었다. 지금이라도 더 나은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한없 겸손했다.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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