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가난이 온몸에 주렁주렁 달리는 바람에 내 그릇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작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좀 살만해져서 가난을 하나, 둘씩 털어내고 나니 그 작은 그릇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밤길을 걷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회사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점점 내 얼굴이 모니터앞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느껴졌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아니면 영양이 좀 부족한가?' 하는 생각으로 동네의 약국에서 영양제를 사다가 먹곤 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점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떨어트리면 찾는 게 힘들었고,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길을 걷다가 작은 턱에 걸려서 넘어질 뻔하기도 하고, 파스텔계열의 옷의 색깔이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망막색소변성증입니다. 수년에 걸쳐서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에는 실명하게 될 거예요. 유감스럽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치료법이나 진행을 늦추는 약물이 없습니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무슨 실명이란 말인가? 팔다리의 힘이 모두 빠지는 듯했다.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귀와 머릿속에는 '실명'이라는 단어만 하염없이 둥둥 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 가슴에 꽂혀 내 몸소 어딘가에 깊숙이 스며들어버렸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내 감정은 없었다. 나는 그저 엄마와 오빠가 나 때문에 슬퍼할까 봐 슬펐다.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다는 듯이 그냥 병원 밖으로 나와버렸다. 나는 또 나를 잃어버렸다. 아빠가 떠났을 때도, 엄마가 언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내 마음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슬퍼서 슬퍼야 했는데.. 내가 아파서 아팠어야 했는데.. 나는 아빠가 외로울까 봐 내가 외로웠고, 엄마가 힘들까 봐 내가 힘들었다.
병원 밖으로 나와서 보니 검사를 한답시고 열어젖혀놓은 동공 덕분에 단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지금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러는데 병원 앞으로 좀 와줘.."
오빠는 항상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 그날도 일을 하다 말고 차를 돌려서 나에게 와주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실명선고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아무렇지 않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좀 행복해지려 했는데.. 엄마와 오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만 괜찮은 척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가위질을 계속하다 보면 손가락에 물집이 잡힐 때가 있다. 그 물집이 터지고 또 생기고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굳은살이 되어 더 이상 물집이 생기지 않고, 덕분에 아프지도 않게 된다.
내 가난은 그런 물집 같은 것이었다. 굳은살이 이미 자리를 잡은 탓에 '실명'이라는 놈이 파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아니 내가 애써 굳은살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날 줄 몰랐던 가난도 이렇게 서서히 끝이 보이지 않냐 말이다. 아마 실명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의사는 장담했지만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냐며 내 경우는 다를 거라 믿고 싶었다.
그냥 외면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은 나중이다. 지금은 그 무시무시한 '실명'이라는 단어조차도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