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니 갑자기는 아니지 않나? 이미 완성작품은 정해진 퍼즐처럼 우리는 여태껏 퍼즐조각 하나하나를 맞추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대구에 온 이후로 15년간 구내식당을 비롯해서 그 복잡하고 혼잡한 중앙로의 분식집까지힘들다고 소문난 식당일은 다 해보신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식당일이라면 뭐든 해낼 준비가 완벽하셨다. 심지어 젊은 나이에 결혼한 탓에 나이까지 젊었다.
그리고 오빠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뛰어났고 손재주가 좋아서 군대에서도 이발병이 아님에도 이발을 해주는가 하면, 행사에 필요한 간판들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제대 후에는 새로 짓는 아파트들의 휀스를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나.. 음.. 퍼즐 중에는 그림 부분이 있고 그 외에 배경 부분도 있다. 사실 나는 그런 배경 부분에 불과하다. 그다지 잘하는 것도 대단한 것도 없지만, 활화산 같은 엄마와 그녀와 똑 닮은 활화산 같은 오빠의 충돌을 막아줄 사람은 나뿐이 없다고 하겠다
김밥집 창업에 있어서도 두 활화산의 의견은 수시로 충돌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중간에서 두 사람을 설득해야 했다. 오빠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쏟아냈고 엄마는 오빠에 대한 불만을 역시나 나에게 쏟아냈다. 결론적으로 내가 봤을 때는 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어미에 그 아들이랄까?
어쨌거나 우리는 창업을 준비해야겠다는 답을 내놨다. 통장에 있는 오천만 원이면 김밥집 하나쯤은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엄마가 모든 요리를 다해낼 수 있었고 김밥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훤히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주방장이나 도움은 필요 없을 듯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테리어는 오빠가 하기로 하고 주방은 엄마가, 홀은 오빠와 내가 보면 될 것 같았다.
평일에는 여전히 하던 일을 열심히 했고 주말이 되면 오빠와 나는 가게를 알아보러 대구시내 전체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찾는 김밥집의 조건은?
1. 지하철 역세권이며 유동인구가 많아야 할 것.
2. 권리금과 보증금의 합이 5천만 원 이내일 것.
3. 임대료가 너무 비싸지 않을 것.
사실 역세권이고 유동인구가 많은데 권리금이나 보증금이 적을 리가 없었고 임대료가 적당할리가 없었다. 기준부터가 무리한 것이었다.
첫 번째로 알아본 가게는 우리 집에서는 거리가 꽤나 멀었지만 지하철 바로 앞의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조건 중에 1번은 합격이었지만 1억이 넘는 보증금과 한 달 200만 원이나 하는 임대료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좌절을 겪고 나니 과연 우리가 원하는 그런 곳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알아본 곳은 원래 피자집을 하던 곳이었는데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피자집이었다. 1번 조건에 맞는 역세권이긴 했지만 건물의 코너에 위치한 탓에 눈에는 좀 뛰지 않을 것 같았고 가게 모양자체도 길쭉하게 생겨서 쓸모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보증금과 권리금,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었다.
김밥집은 뭐니 뭐니 해도 눈에 잘 띄어야 하고 누구나 손쉽게 들어와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두 번째 본 곳도 패스..
그 뒤로 몇 군데의 가게를 보았지만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들 사이에 자리 잡은 한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은 3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는데 최근에 새로 지었는지 건물 전체가 텅 비어있었다.
또한. 지하철 역세권이긴 했지만 아파트 안쪽으로 좀 들어와야만 보이는 그런 곳이었고 언뜻 보았을 때는 사람들이 그다지 붐비는 곳도 아니었다.
조건을 대입해서 보면
1. 역세권은 분명했지만 유동인구는 확실하지 않음.
2. 새로 지은 건물이라 권리금은 0원, 보증금은 5천만 원으로 적당.
3. 한 달 임대료가 130만 원으로 인근 도로가만큼이나 비싼 편.
이 건물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옆에 이마트만큼이나 큰 단층마트가 자리하고 있었고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건물과 마트를 지나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도로가까지 나가기 귀찮은 사람이라면 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바로옆의 김밥집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었다.
사실 모든 게 추측일 뿐이었고 현실은 어떨지 몰랐다. 그냥 차라리 집접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매일 퇴근한 후에는 저녁도 먹기 전에 바로 그 건물 근처로 갔다. 노트와 펜을 하나 들고 서서 오가는 사람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 한적해 보였던 곳이 막상 체크를 하다 보니 꽤나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평일 저녁시간이라 퇴근하는 사람과 장 보는 사람이 겹쳐서 그런가 싶어 주말에도 다시 찾아와 보았다. 그러나 역시나 꽤나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주변 아파트들 역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그 아파트들에 사는 사람의 1%만이라도 우리 가게에 들른다고 가정해 보아도 임대료만큼은 내고도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