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메드 아저씨
시차가 바뀌고 기온도 바뀌고 언어로 바뀌고 인종도 바뀌어 버린 모로코, 그리고 Anassi란 도시에서 하루 반나절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머릿속의 시간 개념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느낌이다. 30분이 1시간 같고 1시간이 3시간 같은 몽롱한 기분..... 이 도시 안에서 각자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이들의 모습에서 수줍음이 느껴지면서 좀 더 긴장감도 수 그러 들고 친근함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 걸으니 조그만 구멍가게가 나타났다. 가게를 운영 중인 노년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영어를 사용해보지만 아랍어만 사용하시는 아저씨... 내가 아는 아랍 말 몇 마디로 내 이름과 한국인이라 소개한다. 나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하는 이 아저씨와 손짓 발짓 의사소통을 하다 핸드폰을 꺼내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려는데 가게에서 물건을 사던 한 손님이 다가온다. 다행히 영어를 한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왔냐, 어디 구경하고 싶은 것이 있냐.... 이 가게의 손님 또한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관심 있게 내게 다가와 많은 것을 물어본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 소개를 하고 날이 더워 어디 앉아서 차를 한잔 하고 싶다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본인의 집으로 오라며 초대를 한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초대였다. 집이 가게 바로 앞 3층짜리 아파트였다. 이름이 무하메드라는 이 아저씨는 오늘 직장이 쉬는 날이라고 한다.
층계를 조심스럽게 올라 3층의 무하메드 아저씨 집에 가니 아내와 중학생 아들, 3살짜리 딸이 있었다. 응접세트와 티비가 있는 가족룸으로 안내를 해 주신다. 아내분은 외부인과 인사만 할 뿐 손님이 있는 가족룸으로 들어오거나 부엌에서 나오질 않는다. 모로코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이다. 여성의 경제적 활동을 제한하거나 얼굴이나 목살을 드러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지만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는 그나마 환경이 나은 편이다. 모로코는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하면 많이 개방되어 있는 편이지만 무하메드 아저씨 댁 역시 이슬람만의 기본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차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주방에서 내 오시는 무하메드 아저씨...
모로코 전통 호밀빵인 홉스, 크림치즈, 대추, 그리고 민트티... 간식이라 하기엔 두둑할 만큼 풍족했다. 처음 마셔보는 민트 티는 향기가 일품이었다. 잔을 비울 때마다 티를 계속 채워준다.
이 집에도 삼성 티비와 냉장고가 있을 정도로 삼성가전제품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다. 삼성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아저씨. 남한에서 왔다고 하자 북한은 미사일만 쏘는 문제국가라 한다. 서로의 직장과 가족, 이슬람의 문화, 모로코와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의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들 아랍 말만 사용하는 이곳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구글번역기를 사용하며 이 중년의 모로코 아저씨의 생각과 사회와 문화에 대해 멈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외지인이나 손님을 집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하면 알라가 복을 내려준다는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여행객을 집으로 초대해 향기로운 민트티와 음식을 제공해준 무하메드 가정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춘기 중학생인 이 집의 아들은 인터넷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한국문화를 이미 많이 접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알고 한국 노래들도 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먼 타지에 나와보니 한국의 높아진 위상이 느껴진다. 남북으로 아직도 분단된 조그만 반쪽짜리 나라에서 만든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그 문화예술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건설업체가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는 한국의 자부심이 더욱더 느껴진다. 세 살짜리 이쁜 딸과 그 사이 친해져 내 옆에 앉았다. 표정연기를 하자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두 시간 가까이 무하메드 아저씨 댁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부근 도시로 돌아가야 할 시간. 마침 가방에 챙겨 온 작은 수채화물감 도구로 꽃을 하나 그려 선물해 주었다. 수채화물감을 나름 다뤄왔지만 즉석에서 짧은 시간 내에 그리려니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 이쁜 가정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 행복과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름답고 고마운 가정이었다. 그리고 귀한 만남이었다.
두 시간 모로코의 한 가정에서의 체험이 이 낯선 나라에서의 긴장감을 누그러 뜨려 주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 직장인인 평범한 모로코 중년과의 만남은 지구 반대편 나라 다른 문화권임에도 묘한 동질감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진심으로 인사를 할 때 심장 쪽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를 한다. 나 역시 진심 버전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작별인사를 한다. "쌀람".... 집 밖까지 나와 버스 타는 방향을 안내해주는 무하메드와 그 아들. 나는 무슬람을 믿지는 않지만 이 가정에 축복이 있길 맘속으로 기원하며 집을 나섰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앙증맞은 클래식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다. 둥글둥글 낡았지만 귀여운 차. 오랫동안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었을 이 피로해 보이는 낡은 차는 깊은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르지 않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흔히 보는 길거리 낙서들... 사람들은 빈 공간을 어떻게든 자신의 방식대로 채우려는 심리는 똑같은가 보다.
버스가 지나는 대로변으로 내려와 구멍가게에 잠시 들렀다. 밤에 모기가 있어 스프레이 모기약을 사려는데 다시 아랍어의 언어 장벽에 부딪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간신히 물어본다. 천장까지 꽉 채워 쌓아 올린 물건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70~80년대 구멍가게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다시 33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모로코의 오늘도 바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