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그렇게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어 할까? 내가 앞으로 목표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나는 그 일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사람들은 내가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섣불리 하면 안 된다고 해. 힘들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그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말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이런저런 걱정에 또다시 휘청이게 돼.
그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후회를 하고 있으면 어쩌지?, 짜증을 내거나 푸념을 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나와 버리면 어쩌지?. 내가 선택한 길인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끼는 동생의 마음 깊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희생.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희생이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이라고 쓰여있네. 그걸 하러 가는 거야? 네가 그게 아니라면 그냥 누군가 너에게 '희생'이라는 말을 얹으려 할 때 과감하게 "난 아니야!"라고 말해면 돼.
언니가 생각해 봐도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결코 쉽지는 않을 거야. 네가 가고자 하는 그곳은 지금 우리가 어떤 의식도 없이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작은 하나도 너무나 귀하고 희박한 곳이니까. 하지만 네가 그곳에 가려는 목적과 가치는 '희생'이 아니라 네가 하고자 하는 방향성이고 니 결단 그 자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희생'이라는 단어가 마치 부정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해. 희생은 고결함과 높은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남들이 너에게 던지는 그 두 글자에 묶여서 너의 행보를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후회할까?
당연히 후회하겠지. 집에서 따분하게 한낮을 보내다가 너무 나른해서 문밖으로 한 발짝 나왔는데 이마에 땀 한 방울이 흐르는 순간 사람들은 바로 후회를 하지 '아, 괜히 나왔네. 그냥 집에나 있을 걸'하고 말이야. 이렇게 사람들은 그냥 크고 작은 후회를 흘리면서 살아가는 거잖아. 그건 일상적인 일이고 더 큰 일 앞에서는 더 크게 결단을 했으니까 후회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크고 대단한 일 앞에서는 왜 사람의 마음도 똑같이 크고 대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큰 일을 받치며 가야 하는 그 길이 고되고 힘겨우니 더 많이 휘청거리고 더 많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있는 그 순간들이 대단한 것이지.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온전히 좋은 마음으로만 가득 채워서 해야만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마음이 한 결로만 흐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잖아. 후회, 짜증, 푸념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하는 것은 괜찮은 척하지 못하는 너의 표정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천천히 가고 있을 너의 모습인 것이지.
누군가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할 때, 또는 누군가의 낯선 변화를 보게 됐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과 단어 속에서 자신들이 보고 있는 상황들을 정의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외부로 향하는 자신의 관심을 길게 끌고 가지 않기 위한 심적인 정리의 의미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결국 그들이 선택하는 단어는각자의 눈에 비치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또는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의 방향으로 딱 그만큼의 폭으로만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그러니 사람들이 던지는 말들에 흔들리지 말고 지나가는 그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뱉은 말들까지 함께 묶어서 흘려보낼 수 있는 무심함도 조금은 가졌으면 좋겠어.
마흔의 중반에 들어서니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둥둥 떠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건, 지나가버린 시간에 내가 하지 않고 놓쳤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공허감의 영역이야. 그러니 서른의 중반에 걸쳐있는 너는 그 아쉬움의 영역이 조금은 천천히 찾아오도록 지금의 순간들을 힘차게 채워나갔으면 좋겠어.